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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북인포레스트 Sep 08. 2024

나비 사랑초의 시간

죽지 않고 살아남은 시간

  보라색 이파리의 나비 사랑초는 아직 죽지 않았다. 어느 주말 오후, 거실 베란다 한구석에 오랜 시간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사랑초를 보며 어머니는 말씀하셨다. “참 신기하지, 며칠 전까지 시들어서 죽을 것처럼 있더니만 또 살아났네. 죽을 둥 살 둥 하면서 여태 살아있다.” 사랑초의 끈질긴 생명력을 감탄하는 어머니의 모습을 바라보며, 나는 신기함과 뿌듯함과 거리가 먼, 감탄과 어울리지 않아 보이는 감정을 느끼고 있었다.

     

  사랑초 화분을 집에 가지고 왔던 건, 난생처음 이사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서였다. 햇빛과 바람이 잘 통하는 창가 곁에 두고 키운 지도 20년이 다 되어 간다. 보통의 식물들은 자기 삶 살기도 바쁜 주인의 무관심 속에 방 한편에서 몇 달이 채 지나지 않아서 곧잘 죽곤 하는데, 이놈의 사랑초는 시간이 흐를수록 잠재된 질긴 생명력을 이파리 전체로 뽐내며, 그 생명의 시간이 점점 인간의 것과 비슷해지기 시작했다.      

  

  특별히 잘해준 건 없었다. 적절히 매끈하고, 짙은 선명한 보라색 이파리가 시들어 검푸른 남색으로 변해갈 때, 그렇게 계절과 계절 사이의 고비를 넘길 듯 말 듯 한 날에만 눈치껏 흙에 물을 뿌려주고 줄기 사이 아무 곳에 영양제를 대강 꽂아주고는 내가 기분이 내킬 때만 마음속으로 좋은 말 하기가 다였다. 사실 그것도 몇 번 되지 않았다. 그러고는 ‘키웠다’는 말 표현이 무색하게 아주 오랫동안 방치를 했었고, 사랑초에 대한 기억은 조용히 사라졌다. 그러다 시간이 흘러 나는 대학교에 입학했고, 20대가 저물어 갈 무렵에 놀러 갔던 서울 혜화역 주변 작은 카페에서 문득 짙은 보라색이 상기(想起)했다.

      

  카페 창문을 투과한 빛이 카페 어느 공간에 있을 법한 사랑초 한 송이를 찾으려 더듬거렸다. 순간의 사라짐은 있었겠지만, 영영 소멸하지 않았다. 여태 죽지도 썩지도 않은 생생한 보랏빛. 그 빛깔은 언제나 일정하고도 규칙적으로 펼쳐지고 떨어지는 일을 반복했었다. 버리고 태어나고를 지속하며, 그렇게 식물의 시간을 초월했다. 인간의 시간과 비슷한 궤도를 거닐다가, 마음 한 편을 떡하니 자리 잡은 보라색 식물의 줄기는 꽤 탄탄했고 가늠할 수 없는 여러 갈래로 사방팔방 뻗어있었다. 어느 줄기에든 의지하며 다리를 걸쳐도 다 견딜 만큼 촘촘한 인드라망 같았다. 인간이라서 품고 사는 것들에 대해 그 어떤 의심을 하지 않고 받아들일 만큼 커다란 품으로 성장해 있었다.

      

  하트모양 이파리에 상처가 날 것을 염려하여 조심스레 쓰다듬었던 지금보다 훨씬 어렸던 검지와 엄지는 모두 지난날의 온기로 남았다. 홀로였던 시간에 이다지도 예쁜 하얀 방울꽃을 싹틔웠고, 죽지 않은 것을 신기해하며 다가오던 순간의 배려와 손길에도 흔들리지 않던 부드러운 강인함. 이 사실을 알고 나니 갑자기 나의 지난 외로움을 털어내는 것이 미안하고도 민망했다. 인간보다 하등 한 존재가 고독과 외로움에 더 강인한 사실이, 존재가 하나의 외딴섬으로 변모한 채 보냈던 그 시간들이, 모두 인간의 무관심 속에서 자란 보랏빛 생명의 시간이었다. 

    

  왜 힘든지 묻지도 않았다. 사람들의 손길은 잘해주다가 말았던 가식이었고, 예쁠 때만 찾았던 찰나의 이끌림이었다. 개인의 삶은 눈물이라서 분갈이를 해 줄 마음의 여력 따위는 없었다. 햇빛만 있으면 충분하겠지, 그게 우리가 아는 전부니까. 하지만 사랑초란, 자신이 이미 사랑으로 가득 차서 그저 살아가는 데 더 집중했던 모양이다. 이리저리 둘러보아도 담아두지 않는, 아니, 애초에 가치가 없어 담을 필요도 없는 말과 행동을 분별할 줄 아는, 그 비밀스러운 미소로 그렇게 온전히 살아남았다.     


  색이 시시각각 변하는 것, 함께하는 것들의 생멸(生滅)의 지독한 변덕을 견디기 위해서는 많이 알아야 할까, 적은 앎이 더 도움 될까. 사랑초의 이파리는 아직도 밝은 보랏빛일까. 여전히 살아서 햇빛과 함께 스스로 충만할까.     


카페에 앉아있는 시간이 더 길어질수록 카페의 커다란 아치형 창문의 빛줄기 밑으로 사랑초 이파리를 대신한 빨간 장미잎이 나부끼다 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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