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리봉동 오거리였습니다 겨울 삭풍은 가시지 않았고 봄은 깨어날 기미를 보이지 않는 해 질 녘이었어요
나는 토큰을 파는 버스 정류장으로 가서 노선을 물었고 버스에 올랐습니다 아마도 영등포쯤에서 버스를 갈아탔던 것 같습니다 생전 처음인 낯선 풍경을 차창 밖으로 마주하며 헤매지 않고 잘 찾아갈 수 있을지를 몰라 두려움이 앞섰습니다
같은 서울이라 하지만 참으로 다르게 펼쳐지는 도로와 건물들이 빠르게 뒤로 멀어졌고 멈추는 정거장마다 두리번거리며 공장이 밀집해 있다는 그곳을 향해 가고 있었습니다
그맘때 나의 가족들은 뿔뿔이 흩어져 살았습니다 큰돈을 빌려 주었는데 야반도주를 했다는 소식을 새벽잠이 깨면서 들었어요
가까운 지인이라서 믿었답니다 융통한 돈까지 상당한 거액을 빌려 주었는데 한 푼도 받을 수 없는 곤경에 처하게 된 것이었지요 그로 인해 고등학교에 입학한 지 얼마 되지 않은 나는 먹고 자고 학교 가는 것을 스스로 해결해야 했습니다 게다가 가계에 힘을 보태고자 방과 후에는 돈을 버는 일에도 참여하게 됐어요 궁핍한 생활이 하루아침에 시작된 거라 감당하기 힘들었어요 그런 와중에 나를 움츠러들게 한 일이 하나 더 생겼습니다 아침 조회시간에 이름을 불리는 것이었어요 공납금 때문이었어요
급기야는 교무실에 불려 가서 학비가 밀려있으니 해결하라는 담임선생님의 독촉을 들었습니다
버스에서 내린 나는 골목길을 돌아 옷가게와 그릇가게를 지났습니다 신발을 잔뜩 늘어놓은 좌판이 놓여 있는 좁은 통로를 거쳤습니다
김이 무럭무럭 솟아오르는 감자탕의 솥단지와 순대를 파는 식당이 모여있는 식당 어귀쯤에서 길을 물었습니다 호객행위를 하는 민망한 어른들을 지난 뒤에 쪽지에 적힌 이름과 똑같은 입간판 앞에 섰습니다
유리문이 열려 있었고 저만치 먼지 낀 형광들 불빛이 내리 비치는 희미한 실내에는 너댓 개의 허름한 식탁이 놓여 있었습니다 의자에 앉아있는 공장 노동자 차림의 남자가 주문을 하는 중이었어요 앞치마를 두르고 설명하는 목소리가 들려왔습니다 어머니였어요 그 누구보다 익숙하면서도 반가운 음성이 거기에 있었습니다
나는 낯선 어머니의 모습에 혼돈스러웠습니다 언제나 부엌에서 밥을 짓고 국을 끓이시던 그래서 삼시 세끼와 도시락을 챙기시던 그분의 부드럽고 애정 어린 모습이 아니었던 거지요 그래서 그랬는지 뭐라고 내가 왔음을 알리는 인사를 해야 하는 순간이었는데 주춤대며 망설였습니다
어떤 서운함과 원망이 불현듯 벽처럼 둘러 쳐졌고 우리 가족에게 벌어진 비운이 내게 감당할 수 없는 파도처럼 휘몰아쳤습니다 나는 갑자기 더 가까이 가고 싶지 않을 만큼 두려웠습니다
내게 벌어지고 있는 이 어처구니없는 현실로부터 멀리 도망치고 싶어 졌고 급기야 서둘러 벗어나고 있었습니다
허둥지둥 앞이 보이지 않는 그 길을 되돌아 나왔습니다 멍한 상태의 나는 어느 만큼 걸어서 너른 공터를 만났습니다 시장 입구였어요 환해지는 허공에는 겨울의 스산한 먹구름이 가득했습니다 보도블록과 건물들에 눌어붙은 회색의 먼지들이 험상궂은 낯빛으로 나를 노려 보았습니다 매정한 찬바람이 잉잉거렸고 가혹한 겨울날이 저물어 가고 있었습니다
나는 신호등 앞에서 길을 건너려는 인파 속에 있었습니다 무표정한 사람들이 각자의 발걸음을 멈추고 불빛이 바뀌기를 기다렸어요
문득 뒤에서 내 이름을 부르는 목소리가 들렸습니다 나는 뒤돌아 보지 않았습니다 잠시 후 황급히 등뒤로 다가와 내 팔등을 어머니가 붙드셨습니다
먼 길을 어떻게 왔니... 그렇게 그냥 가면 어떻게 하니... 바빠서 너를 보지 못했구나...
순간 설음이 왈칵 솟았습니다 가늠할 수 없는 눈물이 두 눈에서 흘러나왔습니다
나는 어금니를 깨물면서 내 안에서 흐느껴 나오는 울음을 참으려고 입술을 깨물었습니다 그럴수록 눈물은 더욱 뜨겁게 덥혀졌습니다 얼굴이 타고 내리는 눈물이 화끈거렸고 검은 교복 위를 적셨습니다 나는 모자를 꾹 눌러썼습니다
두 눈을 완전히 덮어서 세상이 나의 부끄러운 모습을 보지 않게 하고 싶었습니다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나약한 내가 미웠습니다 짐이 되는 내가 싫었습니다
나는 거기서 하염없이 울고 말았습니다
사람들이 건너가고 다시 기다리는 몇 번의 동안에 한없이 오랜 슬픔이 거기 고이고 있었습니다
삶에 지친 어머니가 오랜만인 나를 그렇게 미안한 마음으로 붙들었고 나는 내 생애 가장 뜨거운 눈물을 흘려보내는 중이었습니다
요즘도 나는 거리를 걷거나 신호등 아래 서면 시야에 드는 사람들을 일별 하곤 합니다 특히나 젊은 학생들의 표정을 살핍니다 공부하기가 힘들고 가정형편이 어려워 풀이 죽은 표정의 그들을 가끔 보기도 합니다만 그때에 나처럼 주체하지 못하는 눈물을 흘려대는 모습은 만날 수는 없었습니다 하지만 만나지 못했다고 없는 것은 아닐 겁니다
분명히 그럴 겁니다
나는 이 글을 쓰면서 그날의 눈물에 대하여 다른 관점의 생각을 갖게 되었습니다 나는 한 번도 생각해보지 않은 어머니의 눈물을 이제야 돌이켜 보게 된 것입니다
나는 그날 내가 흘린 눈물의 양과 온도만을 지금껏 회상하며 살아왔습니다 다만 나를 생각하고 내게 갇혀있던 거였지요 아프고 괴로왔으므로 상처 난 지난날을 나 혼자의 가슴속에서 삭였던 겁니다
하지만 그날 그 순간 어머니는 어땠을까요?
미어졌을 겁니다 가슴 한 귀퉁이가 쓸려나가서 커다란 구멍이 뚫렸을 겁니다
그리고 또 이 글 때문에 더욱 궁금해지기도 합니다
글이, 문장이 나를 끌고 간다고 할까요
그날 이후로 나는 그토록 뜨거운 눈물을 두 번 다시 흘리지 않았습니다
세속에 물들어 가고 무수한 내 마음의 방에 순수의 등불이 사그라든 지 오래여서 당연히 그렇겠지만 녹록지 않은 긴 세월을 지나면서 그토록 뜨거운 눈물은 다시금 나를 찾지 않았습니다
어디로 간 걸까요?
나는 갓바위에 수능을 절하는 수많은 어머니를 입시철마다 보았습니다 어린아이에서 입대한 아들까지를 염려하는 근심 어린 어머니도 내 곁에 있었습니다 장성해 가는 아들을 뿌듯해하는 아내의 눈빛을 가까이서 지켜보며 살았습니다
그래서 말인데요
아무래도 그날, 그 가리봉동 오거리에서 어머니는 내가 살아가며 흘릴 내 뜨거운 눈물을 다 거두어 가신 것 같습니다
너는 너의 눈물과 너의 슬픔만 생각하며 살아라
내가 가져가마, 나는 그래도 괜찮다
나는 함부로 어머니의 마음을 상상하며 흉내를 내봅니다 어쩌면 이렇게 해서라도 흉악스러운 이기심과 모자람을 변명하고 싶은 건지 모르겠습니다
어머니는 이미 서둘러 돌아가시고 나는 그분의 속내를 영원히 들을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가끔씩 나는 이런 생각을 합니다
어느 날엔가 내가 없는 이 세상이 와도 나를 슬퍼하는 사람은 없기를 바란다는 생각, 아마도 그분께서도 그랬으리라고 믿습니다
나 또한 어머니처럼 그 길에 있기를... 나는 나를 바래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