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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어떻게 감사할 것인가?

by 나땅콩






명동성당이 내어주는 5월은 화사하고 평화로웠다

광장을 아장아장 걸어 다니다가 떼를 지어 공중으로 날아오르는 비둘기와 둥근 아치에 고개를 빼꼼히 내밀고 꽃망울을 터뜨리는 붉은 장미꽃은 성모의 성월을 수놓는 아름다운 풍경화만 같았다

첨탑 위에 종소리는 시간마다 거행되는 주일미사의 시작을 알리며 여러 곳에서 갖가지 사연들로 모여드는 발걸음을 성당의 오래된 문 앞으로 줄 서게 했다

돌계단을 장식한 영산홍과 벙글어져 갓 태어나는 철쭉꽃 너머로 순백의 모자를 눈썹아래까지 눌러쓴 나이 어린 수녀의 행렬처럼 산딸나무 꽃이 피어나고 있었다


나는 거기서 보았다 그 순간이 그렇게나 오래 남을 줄을 모르고서 문득 그리고 망연하게 서 있었다

저만치 이방인의 행색을 한 여인이 벤치에 앉아 가만히 눈 감고, 마천루와 흰구름 사이 광활한 하늘에서 내려오는 햇빛과 조우하고 있었다

휴일의 마당을 뛰노는 어린아이와 등이 굽은 노인들이 섞여 흔들렸다 커피잔을 손에 들고 무언가를 열렬히 대화하는 사람들과 사제복의 신부가 곁을 지났다


무수한 형체와 소리들이 엉켜서 스며드는 백주 대낮에 오로지 침묵에 걸터앉아 고요하게 멈춰있는 그녀는 유일한 침잠이었고 빛을 머금고 있는 포근함이거나 여백의 품위를 장착한 풍요로 보였다


그녀는 십자가에 매달린 그곳의 주인에게 절하지 않았으며 붉은 벽돌과 권위의 기둥에게 무릎 꿇지 않았다

그런데도 넉넉했고 아쉽거나 안타깝지 않아 보였다 진정한 여행객이며 순례자처럼 느껴졌다


너무 곧게 펴지 않아 편안해 보이는 자세와 하늘거려서 부담스럽지 않은 겉모습은 경쾌하고 수려했다

나는 내게 보이는 것으로 낱낱이 드러나지 않는 그녀의 실루엣이 짐짓 놀라웠다 나도 모르게 숙연해졌으며 경배하고픈 마음마저 들었다


그 중심에는 미소가 있었다, 입술 끝이 살포시 들어 올려져 있는 화사함은 마치 온몸이 바닥으로부터

조금 떠올라 있는 것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켰다

묵상이라 하기에는 구분되지 않았고

눈을 뜨기에는 놓치고 싶지 않은 단맛의 꿈을 꾸는 것 같았다

만족이 거기 있었는데 그것은 내가 누리지 못한 행복이어서 너무나 부러웠으나 신성해서 넘볼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왜 저 사람처럼 눈감지 못하는 걸까?



나는 나의 삶이 불행하다거나 미천하여서 짜증스러웠다 가끔은 분노로 가득 차서 견고함에 닿을 때마다 회의했다 벗어나고 싶은 갈애의 지점에서 몸부림을 치곤 했는데 그녀를 경험한 이후 그녀를 찾았고 흠모하기 시작했다

소환된 그녀는 언제나 아름다웠으며 환희였다

더 가까이 다가가고 싶은 염원은 나 자신을 더욱 작아지게 만들었다


나는 내가 목도한 그 사람이 되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으나 세속의 방법으로는 도리가 없어서

소득 없는 세월을 보냈다

하지만 나는 이 쉼 없고 반복되는 궁리 속에 압도적인 선점의 욕망이 숨겨져 있고

그것은 획득의 발로인 것을 눈치채게 되었다

생존과 유불리를 가늠케 하는 최고의 도구이자 함정인 이기심의 생각이 도사리고 있어서 이미 실체가 아닌 환상을 데려와 의 현재와 견주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나는 소유하고자 하는 목격을 기억 속에서 항상 탐구하고 있었다

나의 목격은 언제나 목격자를 구분 짓고 있었는데 아교보다 더한 접착력을 가진 혼연일체의 고정관념이 대부분을 차지했다

목격하려고 늘 찾아 헤매는 목격자는 목격으로 대상화되어 있어서 잡을 수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밖으로 꺼내서 두 눈으로 확인하고 싶어 했다

나뉘지 않는 것에 대하여 이미 목격자인 일인칭은 애태우며 목격자를 보고 싶어 신열에 들떴으며 안달이 났다

목격자는 목격자의 시선 내지는 시야 전체임으로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고 보이지도 않는 것임에도

끙끙대며 찾아 헤매었다


이 엄혹한 굴레로부터 몸부림치며 벗어나고 싶어서 더욱 빠져들었다 그럴수록 집착해서 이루었던 것들을 포기할 수 없어졌다 자꾸만 옥죄는데 이유를 몰라 답답함이 더해졌다

진퇴양난이랄까 심지어는 온갖 상념으로 무성해지는 어둠에 닿을 적마다 시렸고 애석해졌다

슬픔은 우울로 자주 미끄러졌다


그럴 때마다 언덕으로 향하는 돌계단을 올랐다 거기에는 가시밭길이 있었고 은총이 있었으나 석연치 않았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게 하거나 한사코 그렇게 하는 견고한 내재율이 있는 것 같았다

자주 눈에 띄는 평범함이지만 드러나지 않는 거대함이 마치 공기나 밤하늘처럼 함께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들었다

그 신비를 눈치채기에는 나는 너무 비좁았고 어리석었다

그러한 혼돈에 어지러운 밤이 오면 나는 골목길에 그림자를 늘이며 터벅터벅 빈손으로 돌아오곤 했다


어쩌면 길은 길로 이어진 길로 끝없이 을 것이다

사방으로 뻗어있는 그물과도 같은 길이 도달하려는

길은 한 올 한 올의 순간들에 머물러서

어떤 이유와 조건이 충족되어야 한다는 "때문에"를

달지 않을 것이다


'그냥'인 것이다 '있는 그대로'인 것이다

존재하려는 것 그 자체가 존재로 빚어져서 목격되지 않을 것이다 나는 그 목격을 실시간으로 살아내는 목격자이면서도 그 사실을 여전히 까마득히 모른 채 살아가게 되어 있는 것은 아닐까?


나는 출중한 신앙인이나 범사에 해탈한 도인의 초월적 면모인 감사를 내내 뒤쫓았으나 쫓던 개처럼 늘 그 자리에서 컹컹 짖고 만다

어떤 잠정적 결론도 얻지 못하고 무색하다

그럼에도 나는 여전히 운이 좋은 날이면 어디에서 나 주울 것 같은 감사를 애태우며 찾는다

그 생각놓지 않기에 어딘가 한 군데, 보물상자로 뭉쳐있기를 소원한다

끝까지 욕망을 놓지 않을 모양새이다


얼마 전 거나하게 취한 선배를 모셔다 주면서 들었다


내일 아침에 깨어나지 못할지도 몰라!

그렇다면 오늘 밤이 마지막이야

즐겨~행복하잖아!


감사는 감사할 수 없는 상황과 처지들에 동고동락을 하면서 태어나고 살아가다 죽는다

누군가에게는 또렷하고 누군가에게는 있는 둥 마는 둥, 있으나 마나다


어쩌면 감사란 쟁취할 수 있는 객관의 현실이 아니라 각성하는 마음이라는 생각이 든다

예컨대, 좀 전에 들숨으로 이끌었던 날숨,

그 죽음의 벼랑 끝에서 손을 놓았던 좀 전의 과거가 다시 생으로 돌아오는 건 나의 의지가 아니다 미완의 목숨을 이어가는 것은 나를 포함하며

나를 가치 있어하는 이 세상의 질서가 아닐는지...


생명의 몸짓이 나를 살게 한다

어쩌면 나는 겸손과 가난을 통해서 배우고 익혀야 하는 또 하나의 세계인 것 같다

나는 다만 비워지고 채워지는 순환 속에서의 기억하고 잊지 말기로 한다

생은 순간순간, 감사로 매듭 지워야 한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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