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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땅콩 Nov 02. 2024

이럴 땐 뭐라 해야 하지?

비좁고 드높은 계단을 통과하는 방법




간밤에 코를 너무 골아서 한참 동안 잠을 설쳤다고  투정하는 아내는 늦은 저녁 울리던 휴대폰 신호음을 들었냐고 내게 물었다

나는 모처럼 흐뭇한 안주에 거나하게 걸치고 누운 막걸리의 잠자리뿐이라는 항명을 마쳤을 때

아내는 인근의 도시로 나간 아들에게 전화가 왔었다고 했다


이번에는 내 차례구나!


대체로 살면서 올망졸망하고 재미있는 대화거리는 아내이자 엄마의 몫인 반면 좀 칙칙하고 어둡거나 자세를 잡고 반듯해야 하는 내용을 다뤄야 할 때는 주로 나였다 어느 날부터인지 흐트러진 마음을 단정히 추스르고  진중하게 접근해야 하는 문제들은 주로 내 차지가 되어 있었다

지난 일이지만 아이들이 어렸을 때는 단순하고 쉬웠다 그러나 물음들은 이내 복잡하고 졌다 어쩌다 보니 그들보다 이 세상에 먼저 도착한 나의 말들은 요즘 들어 아스라이 멀어지는 느낌 마져든다


어쩌겠나

허송세월의 시간이 길었던 것을!


사실, 나는 그때그때마다 던져주는 삶의 어려움들을 풀기에 힘을 많이 썼다 그리고 느닷없이 닥쳐오는 장애를 겪어내는 당황한 모습도 여전하다 풀어야 할 난제들은 고비마다 숨어있다가 어둔 구석을 노려 여전히 난감하게 한다


한동안 아들은 집에 들르지 않았다

주말마다 시외버스를 타고 집으로 돌아와 농장일을 돕는 그에게 무언가 집중해야 하는 각별한 일이 생긴 것이다

아마도 그 일을 해나가는 도중에 어려움을 겪고 있어서 지난밤 내게 전화를 했던 것인데 나는 잠만 쿨쿨 잘 잔 것이다 그가 원했던 시간이 저 홀로 쓸쓸히 다녀간 것 같았서 조금은 미안해졌을 때

무슨 연구 발표를 준비한다고 그리하여 나름 불꽃 튀는 경연장에 서게 될 거라는 지난번의 예고가 희미하게 떠올랐다


나는 아침을 먹으면서 그에게 해줄 말을 더듬었다 오전의 일과를 서두르면서 그에게 해 줄 쓸만한 말들이 없는지 내 속을 뒤졌다 

군대를  다녀오고 내년이면 대학 졸업반인 에게 무슨 말을 해줘야 말발이 먹힐까를 궁리했다 이제는 제법 혼자만의 생활을 즐길 줄 알고 자신의 소중한 가치에 눈뜬 그에게 내가 해줄 경험의 밑천은 수명을 다한 생선처럼 허연 배를 드러냈으며  바닥에 드러누운 채 일어나려 하지 않았다

오히려 새롭게 밀려드는 정보와 디지털 세계의 격변 속에서 늠름하게 성장하는 그가  당당하게 일어섰다

그가 학습한 지식과 새로움이 내심 부러웠으며 도달하지 못할 아득한 정점으로 멀어졌

나는 점차 뒷방 늙은이 신세로 전락할 것 같아 불안해지기도 했다 이제 할 만큼 했으니 그만 나대라고 다그치기도 했그럼에도 그를 만나뻔한 말들이 길어지고 늘어났다 꼰대의 잔소리였다

한 번으로 끝나야 할 말들을 제자리에서 맴돌게 하면서 말을 끊지 못했다 대화를 마치고 나면 뭔가 예전 같지 않은 아쉬움이 그림자처럼 따라왔다 후회의 함량이 차츰 늘어났다


그런 내가 모처럼 번듯한 말들을 떠올리려 애쓰는데 그날따라 바빴다 나는 여기저기를 오가며 일을 하는 와중에도 그에게 해줄 만한 그럴듯한 조언을 떠올렸으나 그럴수록 마땅치가 않았다

어느새  하루가 지나가고 저녁이 되어서야 아침의 그 자리에 엉거주춤한 내가 나타나서 빈손이냐고 물었

아득했다 마른  수건을 쥐어짜는 것처럼 머리가 띵했다 아무래도 할 말이 동이 난 것 같았다


불현듯 아들의 지난날이 떠올랐다

그가 겪었던 시험과 고비마다 안절부절못하는  모습이었다 마치 드러누운 풍뎅이가  날개를 털어대는 듯이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났다

언 채로 굳어지거나 바들바들 떨고 있는 그를 볼 때마다 대신하고 싶었던 시절이었다


나는 과거를 회상하며 더 깊은 곳으로 내려갔다

아래로 내려가는 계단의 벽에는 색 바랜 모습들이 액자 속에 고스란히 들어 있었다

그날, 그 순간들을 스치다 보니 그 속에 무언가 겹쳐 보였다

배경의 뒤편에는 비닐처럼 투명했으나 그림자처럼 붙어 어른거리는 무엇이 있었다

숨이 쉬어지지 않을 정도의 긴장, 머리로 피가 새빨갛게 몰려드는 흥분이었다 온몸을 사시나무처럼 떨고 있었아주 오래전, 젊고 어린 나였다


아들에게, 지금에 내가 몰랐던 내가 깊숙이 개입되어 있다는 생각에 다다르자 형체 없는 책임감느껴졌  짐이 실리는 묵중 함이었다

나는 아들의 부담을 덜어  신경안정제, 우황청심환 같은 필살기의 처방전더더욱 절실해졌다


그리하여 나는 현관문을 나섰고 산 쪽으로 오르는 오솔길로 걸어갔다 이미 어두웠으나 한적한 곳에 자리를 잡고 앉아서 두서없는 내 안의 말들을 끌어당겨 글을 썼다

지난번 올림픽 양궁 결승전에서 느낀 감동부터 적었다 어깨에 힘을 빼는 그들, 승부에 집착하지 않는 담대함을 고스란히 적었

안에 잠들어 있으되 잠들지 않은 고귀한 영혼과 생명이 가진 초월적인 능력이 너와 함께 한다고도 했으며 멀리 떨어져 있음에온마음을 다해 응원할 거라고 지지를 전했다 그리고 결과에 연연하지 말고 포용의 자세를 가져보자며 마무리를 했다

그리하여 글을 마친 나는 전송의 세모를 눌렀을 때에 홀가분했다 이 정도면 아직은 쓸만하다고 스스로에게 칭찬을 했다


그리고 집으로 돌아오는데 문득 또 다른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원하는 삶에 대한 근원적인 물음이었다

돌이켜 보건대, 나의 삶은 내가 그토록 원하는 삶을 요리조리 잘도 피하며 지나왔다 누가 뭐래도 행운이 따르지 않았고 재수가 없었다는 생각이 지배적이라서 늘 시달렸다

그럴 때마다 나는 안 되는 걸까 하며 한숨을 쉬었다 저 높은 데에 달려있는 성공의 깊이가 원망스러웠다


정말 그런가?


그런 게 아니었다 설렁설렁 대충 보니 그렇게 생각이 드는 것이었다 가만히 그리고 꼼꼼히 살펴보면 확실히 달라서 엉뚱한 데서 헤매거나 착각으로 스스로를 괴롭히고 있는 것이었다

항상 잘되기를 바란다는 것은 누구나 갖는 당연한 바람이지만 지키기 힘든 부담을 걸머지는 것이었다

그것은 온전히 소화시키고 나서 다시 가득 채우는 공복의 순환을 사라지게 만드는 것이었다

허기가 좋은 맛을 느끼기 위해서 양보해야만 하는 기다림인 것처럼 결핍과 인내는 만족과 동행해야 하는 절친이었다 하지만 그늘 속에 들어있어서 잘 보이지는 않았다

문제는 안정적이기를 바라는 마음은 점점 커졌

아주 작았으나 모자라지 않았던 처음을 되돌아보지 않았다 더 큰 소유와 만족을 기대하면서 타오르는 것이었다 

그것은 타성에 젖어가는 욕망, 언덕을 굴러내리는 눈덩어리 같아서 멈추거나 제자리에 서는 것은 허락하지 않았다 건강한 삶은 그저 한 방향으로 쌓아 올려서 부자가 되는 축재의 과정과는 사뭇 다른 것이었으나 그것을 알아챌 수 없었다


그래서인 허기와 가난을, 실수와 실패를, 노력하지 않는 게으른 자의 징표로 여기면서  멸시했고 그것을 피해 가는 삶을 기준으로 삼았다

성공을 앞세워 도전했고 포기하거나 물러서는 것은 나약함의 증표라고 비하했으며 그렇게 될까 봐 쩔쩔맸다 한참의 시간이 지난 후의 일이었지만 어느 날엔가 지치 모자란 내가 풀 죽어 돌아왔다 이제 주인으로 자리 잡은 빈곤감 되려 나와 거리를 두기 시작했기 때문이었나는 처참해졌고 자괴감으로 들끓었다 누가 뭐래도 나의 삶은 늘 그득하게 채워져야 했고 언제나 더를 채우기 위해 충전 중이어야 했다 하지만 그것은 자라나서 덩치를 키웠고 급기야 나를 압도한 것이었

삶을 음미할 여유를 나중에게 담보하고 대신에 내게 이로운 것만을 누리게 하고픈 욕망이 빚어낸 결과였다 서두르고 재촉해서 더욱 빨리 불안으로부터 벗어나려는 조급함으로부터, 그러한 결정을 한 순간부터 내가 바뀌었음을 뒤늦게 알았으나 너무 멀리 와 버렸다 


그제야 확연해졌다 후회가 뼛속 깊이 스며들자 보이기 시작했다 더디고 느려 보여도 단단하게 여무는 씨앗의 길이 있었다

좋은 결과는  좋은 과정과 몸이었고

좋은 결과는 좋은 과정을 조금씩 성실하게 늘여놓는 일이어서 결과는 절차들이 적절했는지 하나씩 소환해서 보여주었다


순환으로 나를 구동시키는 것은 비움이었고 그 기반 아래 채우고 비워졌다 영원하지는 않지만

주인으로서 누리는 특혜를 주었다 그래서 산다는 것은 소유보다는 임대에 가까웠다 다만 그것을 지켜내기 위해서는 좋은 습관이 필요했으며 습관은 또한 생각과 마음을 포함하는 지속적인 의지로 발현되고 었다 배가 고파진다는 것이 건강함을 맛있게 담아내기 위한 준비이며 예의인 것처럼 비움이란 것은 정신의 깊은 곳에 닿아있어서

욕심을 덜어내야 가능해지는 것이었다 소중한 것은 함부로 다루면 안 되는 것이었다 나태와 방만은  훼방꾼이었고 격식과 금기는 장애가 아니라 도움을 주는 내편이었다 결국 비움은 눈과 귀를 집중해야  얻을 수 있는 비밀이면서 평온함으로 이끌어 주는  나침반이 달린 선물이었다


여기까닿았을 밤이 깊었부두로 돌아오는 배가 된 기분이 들었고 그제야 이런 생각들을 전해야 하는지가 고민되었다 

나는 아들과 나를 잠시 포개고 길이를 대보았다

역시 젊음에게는 맞지 않는 옷이었다

이해하라고 강요하는 것은 해서는 안될 억지였다 말이 아닌 체험과 깨달음이 동반되는 아주 복잡하고 오랜 숙성이 필요해 보였다

건드려서는 안 될 인생이었고 그의 몫이었다


이튿날 아침, 덜 깬 잠에 냉수를 한잔 들이켜  순간, 지난밤 못다 한 나머지 부분들이 물음표를 던지며 따라왔다


어떻게 위하는 것이 나를 위하는 거지?


나는 아들에게 평소에는 다정하지 않다 무뚝뚝하고 형편없다 나는 내게도 그랬고 그에게도 그래왔 그러나 그것은 어떤 쳇바퀴 같은 것이어서 벗어버려야 할 이었다 또한 나는 내게 참으라 했고 견디라고 했다 그래야만 나답다고 또한 그것이 뒤처지지 않고 살기 위한 바른 삶이라고 믿어왔고 의심하지 않았다 뿐만 아니라 타인의 시선과 인정 앞에 늘 굳건하고 허물을 보이지 말고 강해지기를 주문했다

그렇게 나는 내게 다정하지 않았고 나라는 중심을 외면하고 바깥의 세상을 향해 눈치를 보면서 시달렸다 아마도 자식을 대할 때도 언제나 그런 식으로 대했음이 불쑥 살아있는 벽처럼 다가왔다


그때 생각났다

부드럽고 상냥하게 둘도 없는 나 자신을 사랑할 수 있다면.... 친절하고 사려 깊게 어루만지고 품에 안을 수 있을 텐데....


불현듯 떠올랐다 아내였다 아주 오래전부터 아이들과 사소한 일상을 대화하는 아내였다

별일 아닌 이야기에도 환하게 웃고 어울리는 사람

언제나 궁금한 것을 즉각 물어보고 끝까지 들어주는 그녀는 사뭇 나와 달랐다

굳이 정답을 말하지도 않았고 대안을 세우려고 애쓰지도 않았다 가볍고 경쾌했으며 안정적이며 평화로웠다

거기까지 생각이 다다르자 내가 도달할 수 없는 아내의 모습이 저만치서 웃고 있었다 배웅을 나오는 듯했다 아내를 몰라본 내가 미안해졌다

힘겹게 몰아붙이고 못되게 굴었던 내가 나에게 두고두고 오랜 사과를 해야 할 것 같았다 


나는 지금 아들이 서야 하는 낯설고 혼자인 오늘과 내가 가야 하는 내일을 상상한다 스스로를 위한 사랑으로 가득해졌으면 좋겠다 그 사랑의 힘이 원동력이 되어

주변의 많은 사람들에게  온전히 발휘되기를 바란다 그것이 어떤 성공과 맞바꾸어도 될 모자라지도 넘치지도 않는 가장 값진 삶이라는 생각을 한다

소중하고 귀한 손님을 모시듯이 온 정성을 다하여 나를 위하고 다른 사람을 위하는 삶,

아무래도 나는 꾹꾹 눌러 담은 장문의 추가 문자를 하나 더 보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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