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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절대 읽지 않았으면 하는 글

10년 차 회사원 '아는언니'의 여섯 번째 업무일지

by 아는언니

"누나, 저 내일 면접 봐요."

"아, 그래? 무슨 질문 나올지 궁금해서 전화한 거야?"

한창 야근 중에 대학 후배에게서 전화를 받았습니다. 그는 내일 우리 회사, 저희 팀에 새로 들어올 신입을 뽑는 면접 자리에 시험을 보는 날이라고 했습니다. 야근 중이라 그런지, 아니면 그때의 저는 '일하는 사람은 자고로 까칠해야 한다'는 돼먹지 못한 못된 것만 보고 자서 그런지 퉁명스레 전화에 대꾸했습니다.

"아뇨~ 그냥 내일 누나 회사에 가서 면접 본다고요~ 그냥 그거 말하려고요^^"


그를 그 자리에 추천한 건 저였습니다. 팀장님께서 "너희 과 후배 중 우리 팀에서 함께 일할 포르투갈어 잘하는 추천할 사람이 있냐?"라고 물으시길래, 학과 사무실의 선배에게 연락해서 포르투갈어 잘하는 친구를 소개해달라고 하고, 추천받은 후배의 이력서를 팀장님께 전했습니다. 그는 브라질 교포라 포어를 잘하고, 학교 다닐 때 수업도 같이 들었던 적도 있고, 저와 친했던 후배의 남자친구였기도 했던 '그럭저럭 건너 건너 아는' 사이었습니다. 그렇다고 매일 어울리며 친하게 지내지는 않았기 때문에 '그럭저럭 건너 건너 아는' 그런 사이라고 표현합니다. (예나 지금이나 저는 먼저 다가가서 살갑게 구는 성격은 못되었으니까요. 대학 때는 한껏 제 잘난 맛에 취해 도도하고 쿨해야 한다는 생각이 더 강해서 아마, 후배한테 따뜻한 말 먼저 건네지 못하는 낯가리는 선배였을 것입니다.) 잘 알지 못하는 사이기에 더더욱 팀장님에게 추천하는데 마음이 편했습니다.


그렇게 그 친구가 합격했다는 소식을 들었고, 면접 전날 저에게 연락한 것처럼 그 후로도 그는 면접 교육받던 때도, 첫 출근 전에도 먼저 연락하여 과하지는 않지만 후배가 직속 선배에게 깍듯하게 보일 예의를 갖춰 천천히 다가왔습니다. 선배들의 모진 시집살이를 겪어내느라 한껏 삐뚤어져있던 저는 후배가 들어오면 '어디 한번 두고 보자...'라는 못난 마음도 한편에 장착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 자식, 벼르고 별렀는데 사실 그다지 트집 잡을 구석이 없는 것입니다. 선배에게 깍듯하고 일을 꼼꼼하니 참 잘했습니다. 제가 혼자 하기 버거운 것은 먼저 와서 도와줍니다. 무엇보다 늘 회사 메신저로 말을 걸었습니다. 회사에서 늘 외로웠는데, 메신저로 아침 인사도 밝게 해 주고, 기분 안 좋아 보이면 자상하게 안부도 물어주고, 유머로 웃기기도 잘했습니다. 맞은편 자리에 그가 앉아서 일하면서부터 외로운 마음에 친구가 생긴 것 같았습니다. 그렇게 닫힌 마음이 조금씩 열리는 것 같았습니다.


그 후배 녀석은 자기를 입사시켜준 게 제 덕분이라고 참 고마워하며 좋은 레스토랑에 데려가 크게 한턱 쏘기도 했습니다. 처음 후배와 와인을 마시다가 꽐라가 되어 서로 놀리고 장난쳤습니다. 어느 날은 둘이 같이 점심을 먹는데 반찬으로 꽁치가 나왔습니다. 꽁치의 뼈를 슥슥 발라주더니 저에게 먹으라고 하는데 심장이 쿵 떨어지는 줄 알았습니다. 제가 해외출장을 가서 시차적 응이며 업무에 허덕이다 호텔에서 쉬고 있으면, 힘들지 않냐고 안부 문자를 보내는 유일한 팀원이었습니다. 차를 새로 바꾸고 저를 처음으로 집에 데려다주고는 쿨하게 가는 모습이 좀 어른 같았습니다. 저는 그 후배가 브라질로 첫 출장을 갈 때, 잘 다녀오라고 비행기에서 먹을 간식도 챙겨주었습니다. 그리고 일 때문에 바빠서 그가 점심을 못 먹을 때, 주전부리를 사다 주기도 했습니다. 이런 자잘한 추억들이 가끔은 선후배 간의 우정인지 썸인지 헷갈릴 때도 있었지만, 그 친구에게는 여자 친구가 있었으니, 그냥 사회생활을 아주 잘하는 후배라고 생각하는 게 마음이 편했습니다.


한창 제가 활약할 때 입사한 후배는 저의 자신 있고 당당한 모습만을 봤을 것입니다. 그런데 저의 소속팀이 좀 더 큰 조직으로 통합되었습니다. 새 조직의 팀장님은 강력한 카리스마를 가지셨으나 급한 성격과 불같은 열정이 제가 감당하기 어려울 때도 많았습니다. 새로운 팀에서 저는 늘 힘들었습니다. 그 해를 잘 넘겨야 대리로 진급할 수 있다는 생각에 이를 꽉 물고 버텼지만, 내가 왜 이렇게 힘들고 외롭게 버티는지 눈물이 날 때가 많았습니다. 그 모습을 보던 후배 녀석은 '저한테 늘 힘이 돼주던 누나가 이렇게 힘들어하니까 마음이 안 좋네요...'라며 위로해주었습니다. 반면 그는 새로운 팀이 저만큼 힘들어 보이지는 않았습니다. 오히려 새로운 팀에서 점점 날개를 달고 훨훨 날아가는 것 같았습니다, 새로운 팀에서는 그를 이끌어주는 형 (남자 선후배는 서로를 형 동생이라고 부르며 엄청 끈끈해 보이는)이 많았습니다. 그 후배는 '형'이라고 부르며 따를 수 있는 선배들을 저는 '오빠'라고 부를 수 없었고, 시커먼 남자들 무리에서 저만 홀로 하루하루를 외롭게 버티는 외톨이 같다는 생각이 자주 들었습니다. 그 후배는 형들과 친해지면서 저에게 메신저를 보내던 횟수도 현저히 줄어들었습니다. 그는 늘 일로 바빴고, 형들도 챙겨야 하고 새로운 팀장님도 맞춰줘야 하고... 제가 잘 보이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그해에 브라질 바이어들이 방문하는 행사에서 저는 전체 일정을 조율하는 일을 담당했고, 브라질 교포인 후배는 신제품 소개를 하는 업무를 담당하게 되었습니다. 후배가 하는 신제품 소개는 제품의 기능을 제대로 알고 바이어에게 소개하는 것으로, '핵심업무'라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는 브라질어에 능숙한 교포인 만큼 그 일을 후배가 하는 게 맞다고 이성적으로는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저는 정작 핵심업무가 아닌 뒤치다꺼리하는 일이나 맡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 후배가 점점 미워지고 제 마음을 솔직히 표현하지도 못한 채 마음의 문을 닫아버렸습니다. '나도 포르투갈어로 말할 줄 아는데, 나도 미리 프레젠테이션 대본을 다 쓰고 달달달 외워서 그들 앞에서 제품 소개를 할 수 있을 텐데... 저 후배만 없었다면, 그 역할은 내가 했을 텐데...' 저는 마음속으로 한껏 그를 질투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후배와 저는 점점 멀어졌습니다. 마음으로 점점 멀어졌고, 제가 팀을 옮기면서 그 이후로 따로 만난 일이 없었고, 서로의 인생을 살기 바빴을 것입니다. 한 3년쯤 전에 정말 오랜만에 만난 그 후배는 청첩장을 주었습니다. 그리고 해외 주재원으로 나간다고 했습니다. 그때 이후로 다시 볼 일도 없을 것 같고, 또 좋았던 기억은 생각날 일이 더 없을 것 같지만, 끝내 그 말을 못 했습니다.


그때 너 덕분에 회사를 버티던 시간이 있었다고.
하지만, 너를 면접 보게 팀장에게 소개한 나를 미워한 적도 있었다고.
내가 소개하지 않았어도 실력 있는 너는 어디에서든 잘됐겠지만,
내가 있어야 할 자리를 너한테 빼앗긴 것 같은 생각이 들어 한동안 힘들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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