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 차 회사원 '아는언니'의 네 번째 업무일지
10년 차인 지금도 보면 움찔움찔하는 팀장님이 있습니다. 함께 일하던 당시에는 팀장님, 지금은 중남미 지역 담당님. 그분의 첫인상은 코카콜라의 마스코트를 언뜻 연상하게 합니다. 일을 시작하기 전에 그분은 그냥 동네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아저씨였습니다. 그것도 아빠 같은 아저씨. 저의 첫 팀장은 3년을 내리 함께 일하며, 저의 못난이 모습, 발전해가는 모습을 다 보듬어주신 '사회생활의 아버지'이셨습니다. 그분과의 일하는 방식에 익숙해져 있다가 두 번째로 새 팀장님을 만나게 된 것입니다. 편의상 폴라베어 팀장님이라 칭하겠습니다. 폴라베어 팀장님과의 브라질로의 첫 해외출장 때였습니다. 기존의 출장은 저 혼자만 다녔던 터라, 먼 중남미까지 비행기를 타고 이동하는 육체적 피로와 업무상 해외 주재원과의 커뮤니케이션을 주로 신경 쓰면 되었습니다. 그런데 팀장님을 모시고 해외출장을 가게 되면 또 다른 요인의 신경 쓸 거리가 생기는 일이었습니다. 그것은 '상사의 의중을 파악하는 능력'입니다. 처음의 저는 의중 파악이라는 것을 잘 몰랐습니다.
서울에서 브라질 상파울루까지는 직항이긴 했지만, 10시간을 넘는 장시간의 비행입니다. 숙소에 도착해서의 첫 일정은 저녁식사였습니다. 이미 비행기에서 기내식으로 사육된 터라 굳이 저녁을 먹지 않고 쉬고 싶었습니다만, 그것은 저 혼자일 때 가능한 일이지요. 팀장님, 함께 출장 간 3명, 총 4명이 모여 저녁식사를 했습니다. 다음날은 일 끝나고 호텔 밖으로 나가 저녁식사를 하기 위해 7시 정시에 모이기로 했는데, 일하고 너무 피곤하여 10분쯤 늦게 나가게 되었습니다. 팀장님은 다른 팀 사람도 있는데 "늦게 나오면 어떻게 하냐"며 큰소리로 저에게 무안을 주셨습니다. 그냥 그의 우렁찬 목소리일 뿐이었지만, 단순 '지적'이라기보다 체감상으로는 '고함'에 가깝게 느껴졌습니다. 업무상의 일정도 아니고, 주요 회의도 아니고, 출근해서 일을 다 마치고 식사 전, 방에서 치울 것도 있고 씻고 피로를 푸느라 10분 늦어진 것인데, 타지에서 제일 믿고 의지하는 팀장님의 불호령은 마음의 긴장을 주었습니다. 나중에 생각해보니 출장지에서는 안전상의 이유 및 차량 이동의 편의를 위해 모든 일정을 함께 하는 공동생활을 하게 되는데, 제가 여자라고 자꾸 뒤처지고 '예외'를 주게 되면 밉보일까 봐 일부러 더 엄하게 이야기하신 게 아닌가 싶습니다. 그 이후로 출장지에서는 더욱 긴장하여 흐트러짐 없이 행동하고, 특히 시간 약속은 철저히 지키는 것을 익혔습니다.
출장 중 법인에서 시장 데이터 분석 자료롤 다 같이 보며 경쟁사 현황을 리뷰했습니다. 데이터를 받아 분석하는 것을 저에게 지시하셨습니다. 그런데 미팅 후 또 바로 이동 일정이 생겨서 데이터 받은 것을 한국에 돌아와서 추가하여 상사에게 보고했습니다. 팀장님은 "브라질에서 현지에서 보고했으면 얼마냐 좋았겠냐고" 한마디 하셨습니다. 저는 데이터를 받고 제대로 분석할 시간이 없었고, 제대로 분석하지 않은 상태에서 보고하다 실수가 생길까 봐 좀 더 시간을 들여 꼼꼼히 분석 후 서면보고를 한 것인데 상사가 보는 관점은 달랐던 것입니다. 이때 저는 더욱 상사의 의중 파악이 얼마나 중요한지 실감하게 됩니다. 그리고 업무에 있어서는 꼼꼼함과 상세함도 중요하지만 시의적절성, 타이밍, 즉 완벽하지 않아도 빠른 결과물을 내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몸소 익히게 됩니다. 완벽하지 않아도 빠른 중간보고가 상사의 피드백을 받아 완벽을 향해 나아간다는 것을 경험으로 배우고 있었습니다.
그때가 2012년이니 벌써 10년쯤 지난 지금, 테디베어 상사를 전체 회의에서 뵙곤 합니다. 지금은 팀장이 아닌 임원이시며 그때 동고동락하며 함께 일한 것, 그리고 제가 많이 혼이 난 일들은 하나의 추억으로 남아 얼굴 뵙고 인사하는 것만으로도 반갑고 감사한 마음입니다. 이렇게 팀장님과의 출장 에피소드로 배운 것은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 상사가 바뀌면 재빠르게 모드를 전환하여 새로운 상사와 코드를 맞춰가야 한다
둘째, 상사의 의중을 파악하는 것은 직장인의 덕목
셋째, 시간 약속은 엄중히 지킨다
넷째, 완벽한 결과물보다는 타이밍 맞는 중간보고가 상사에게 필요하다.
사회생활을 막 시작하여 어려움이 많거나, 혹은 MZ세대라 상사를 이해할 수 없다면 오늘 글이 회사생활을 이해하고 시행착오를 줄이는데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