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앙상블 배우가 뭡니까?

10년 차 회사원 '아는 언니'의 첫 번째 딴짓일지

by 아는언니

방탄소년단(BTS)이 빌보드 HOT 100, 핫샷 데뷔로 1위를 차지한 것이 연일 뉴스화 되고 있습니다. 타이틀곡 제목이 다이너마이트인 것처럼 폭발적인 인기를 전 세계에 보여주었는데요, 그 곡을 들어보면 정말 기쁨이 알록달록한 색으로 폭발하 듯한 느낌의 멜로디와 안무로 표현 낸 듯합니다. 30대 중후반의 제 지인들에게 이 곡을 들려주면 다양한 반응이 나오는데 그중 하나는 '이게 좋아? 난 모르겠다.'라는 시큰둥한 반응입니다. 저는 학창 시절 HOT와 젝키 오빠들에 열광하며 보낸 세대입니다. 그런데도 이렇게 시대를 넘어 BTS를 좋아할 수 있는 것은 제 딴짓, '뮤지컬 활동'에서 춤과 노래가 주는 행복을 직접 경험했기 때문일 것입니다.


앞선 글에서 '공부 못하는' 모범생으로 살아온 저는 아마추어 뮤지컬 동호화 활동을 시작으로 인생공부를 시작하려고 마음먹었고, 회사일이 힘들면 힘들수록 저는 동호회 활동을 하늘에서 내려온 동아줄처럼 업무 스트레스를 잊고 활기를 되찾는 용도로 매달리고 있었습니다. 노래와 댄스를 모두 해야 하나 어느 것 하나 잘하는 것이 없던 그날의 저는 '잘해야 하나? 하다 보면 어제의 나보다는 낫겠지...' 하는 용감 발칙한 생각을 하고 있었고 무엇보다 '살기 위해' 이 딴짓에 매달렸습니다. 동호회 활동마저 없었다면 사무실의 제 삶은 너무나 팍팍했으니까요. 제 인생의 '다이너마이트'가 간절히 필요했습니다.


직장인 뮤지컬 동호회를 시작한 그해의 연말 공연은 올 슉 업(All shook up)이었습니다. 올 슉 업은 엘비스 프레슬리의 명곡을 엮어 뮤지컬 극으로 만든 '주크박스 뮤지컬'로, 오토바이를 타고 온 방랑자가 조용한 마을에 도착하며 벌어지는 다양한 커플의 사랑 이야기입니다. 당시 30명이 되는 동호회 인원이 다 같이 주요 역할로 참여할 수 있다는 이유로 이 극을 공연으로 올리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올 슉 업의 뜻이 '사랑에 빠져 미치도록 기분 좋은 상태'를 의미하는 만큼 연습하는 동안 우리 모두는 뮤지컬에 빠져 미치도록 즐거웠습니다.


이번 주말은 9 to 9 이야


연출이 이렇게 말하면 그날은 아침 9시에 모여서 저녁 9시까지 12시간을 내내 연습한다는 뜻입니다. 지금 생각하면 황금 같은 주말을 침대에 붙어 쉬지 않고 공연 연습으로 보낸다는 거 상상이나 할 수 있을까요? 30명이나 되는 인원들이 하나로 모여 연습하는 것은 쉽지 않았습니다. 워낙 인원이 많고 각자의 사생활도 있기 때문에 연습시간을 칼같이 정해 정시에 모이면 제일 먼저 시작하는 것이 '연습 출석 인증샷 찍기'였습니다. 그리고 모든 연습을 마치고도 '인증샷'으로 마무리. 이쯔음에 우리는 누가누가 더 못생긴 표정으로 사진을 찍는지 경쟁하듯 세상 모든 걸 내려놓은 기괴하고 우스꽝스러운 표정으로 사진을 찍고 그걸 보며 좋아라 웃어댔습니다.


끼가 없고 남들 앞에 나서기도 쭈뼛쭈뼛하는 제가 뮤지컬에서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까 처음에는 망설임이 컸습니다. 그런데 이 극을 가만 보자니 주연 배우 너머 저 뒤에 잘 보이지 않는 곳에서 운동한다 치고 좀 움직이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주말 동안 기분전환은 될 것 같아 보였습니다. 그렇게 주말을 보내야 월요일에 출근을 하겠구나 싶었습니다. 그래서 기꺼이 앙상블로 참여를 하기로 다짐했습니다. 듣자 하니 이 극은 단체 군무가 분위기를 살려 '앙상블이 꽃'인 즉, 주연배우보다 앙상블이 결국 주인공이라는 것입니다.


앙상블을 하기로 마음먹다

'앙상블'은 뮤지컬의 코러스 배우로, 주인공 뒤에서 춤과 배경을 만드는 역할을 함
‘함께’란 뜻으로 뮤지컬에서 주연배우의 상황을 드러내거나 사건을 고조시키는 2명 이상의 배우들을 말한다. 이들은 코러스를 넣어주거나 움직임, 동작 등으로 생동감을 더하는 역할을 맡는다.

<네이버 백과사전. '앙상블'의 정의>


그리하여 본격적으로 시작된 연습은 각 신마다 소화해야 할 곡들이 많았습니다. 젤 처음 연습한 곡은 "C'mon Everybody"였습니다. 방랑자가 처음 마을에 도착하고 순진한 마을 사람들이 그의 오토바이를 구경하면서 호기심을 보이면, 방랑자는 '인생을 즐기고 마음껏 표출하라'라고 말하며 굳어있던 마을 사람들의 마음을 열어 끼를 펼치는 순간입니다. 세상에! 안무를 뮤지컬학과 대학생들이 알려줬는데, 진짜 신나는 겁니다. 'Burning Love' 'All shook up'의 단체 군무를 연습하면서 그동안 누군가에 앞에 서면 쭈뼛쭈뼛 얼어버리는 제 자신을 자유롭게 놓아주고 신나게 노는 법을 배웠습니다. 주말 동안 안무를 연습하고 신나서 월요일 아침에 출근하던 길에 안무를 복기하며 신나 있는 제 표정에 흥이 그대로 드러났던지 모르는 분이 저를 보고 웃으며 인사하던 기억이 떠오릅니다.


디테일 연기는 쉴 틈이 없다

지도해주는 선생님은 한순간도 빈틈없이 연기하라고 강조했습니다. 저는 수많은 마을 사람 중 한 명이지만 제 자신을 어떤 사람인지 캐릭터를 저 나름으로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저 혼자 있을 때든, 옆의 배우와 함께할 때든 각각을 상황들을 깨알같이 만들어갔습니다. 주인공 배우가 마을에 도착했을 때, 마을 사람들이 모여 웅성웅성거리던 것, 사랑에 빠진 주인공의 결혼식을 다 함께 축하해주는 장면, 버스 밖에서 고백하는 주인공들을 바라보며 안타까운 마음에 서로 엇갈리지 않도록 응원하는 장면 매 장면에서 깨알 같은 상세 디테일을 설정하고 표현하려고 해 보았습니다. 버스 안에서 콤팩트를 꺼내어 화장을 고친다거나, 신문을 넘기며 기사를 읽는다던가, 귓속말로 수 근수 근대면서 손가락질한다거나 모든 상황들을 하나하나 만들어가는 재미가 있었습니다. 주연 배우들이 정해진 대사를 표현하려고 외우고 익힌다면, 앙상블 배우로서는 디테일을 스스로 설정해가는 과정이 꿀잼이었던 것입니다. 이렇게 연기 연습을 했던 것이 도움이 되어 훗날 뮤지컬 공연을 보게 되면, 주연 배우가 아닌 앙상블들의 연기를 보는 재미가 더해졌습니다.


합창의 감동

'Heart Break Hotel'은 외로운 마을 사람들의 심정을 노래하는 장면인데, 이 곡을 준비하면서 합창의 묘미를 알게 되었습니다. 이전에는 무대에서 단 하나의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주연배우를 동경했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합창은 소프라노, 알토, 메조, 테너, 베이스가 어우러져 무대를 꽉 채울 때 그 울림이 관객을 전율시킬 수도 있다는 것을 연습하면서 몸소 느꼈습니다. 각각의 파트가 따로 연습할 때는 몰랐는데, 하나의 화음으로 다가올 때 폭발력이 어마어마했습니다. 내 음을 내면서 상대의 음을 듣고 그 큰 음이 뒤에서 바다의 큰 파도처럼 밀려올 때 실로 대단하다고 느꼈습니다. 특히 이 장면에서는 노래를 하면서 연기가 많이 필요했는데, 외로워서 술을 마시고, 술을 마시고 취해서 비틀거리며 무대를 이동하여 가만히 자리를 지키고 있는 게 아니라 계속 움직이는 동선을 만들고 심지어 무대 가운데로 이동해서 절규하고 다시 원래 테이블로 돌아와 무리의 마을 사람들과 맥주잔을 높이 들어 부딪히면서 마무리하는 세부 동작들을 만들어가며 장면을 완성하는데, 앙상블의 합창과 연기가 어우러져 가장 울림 있는 곡으로 완성됐다고 생각합니다.


안무가 주는 희열

'A little less conversation' 신은 가장 마음에 드는 안무로 기억합니다. 여주인공 나탈리가 남장을 한채 남주인공 채드에게 사랑을 느껴서 감정의 혼란을 느끼다 결국 키스하여 마음을 표현하는 장면에서 부르는 노래입니다. 나탈리의 감정을 혼란을 표현하는 분신 5명이 함께 안무를 하는데, 남장을 한 채로 파워풀한 댄스를 춥니다. 연습 전부터 이 안무에 대한 기대가 컸고, 실제로 검은 모자와 올블랙의 옷을 입고 남장의 나탈리의 혼란스러움을 표현할 때 짜릿함을 느꼈습니다. 5명의 분신이 하나하나 떨어져 나가는 걸 표현할 때, 제가 가장 긴 동선을 하게 되어 무한 턴을 돌았던 기억은 잊을 수가 없습니다. 맨 앞사람이 한번 턴하면 그 뒷사람은 턴 두 번, 다음 사람은 턴 세 번, 그다음은 4번 이렇게 하나씩 많아지는데 5번씩 턴을 수없이 돌면서도 그때는 힘든 줄 몰랐던 것 같습니다.


그때를 되돌려보려 연습장면을 사진으로 보는데 놀라운 사실을 발견해냅니다. 주인공 역할을 하는 사람들은 연습 신에서도 너무 뽀송뽀송하고 멋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앙상블들은 땀으로 범벅이 되어 어찌나 꾀죄죄한지, 사진을 보며 한바탕 웃습니다. 올슉업 공연은 그야말로 대성공하여 관객과 호응하며 역대급으로 즐겁게 공연한 기억으로 남습니다. 4년 전의 공연인데도 지금 남아있는 영상을 보면 그때 공연의 열기와 전 멤버의 하나 된 마음이 고스란히 전달되는 것만 같습니다. 춤과 노래 그리고 연기에 대해 잘 알지 못했기에 더욱더 열정으로 하나의 목표를 가지고 완성해가면서 제 마음속에 남은 것은 다음과 같습니다.


뮤지컬 앙상블 배우의 역할에 대한 재발견

나를 내려놓아야 무대의 내가 빛난다는 것

군무의 즐거움

설정과 디테일로 채워가는 무대

합창의 감동

폼나는 안무는 쉽지 않다는 진리



keyword
이전 05화그가 절대 읽지 않았으면 하는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