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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출은 아무나 하나, 어느 누가 쉽다고 했나~

10년 차 회사원 '아는언니'의 다섯 번째 딴짓일지 

by 아는언니 Oct 17. 2020

아마추어 뮤지컬 배우를 하면서 행복했던 기억 덕분에 이 좋은 경험을 다른 이들도 함께했으면 좋겠다는 생각까지 꿈꾸게  되었습니다. 배우가 아닌 연출로서 처음 연기반을 꾸려가기로 마음먹고 저는 두 사람에게 도움을 청했습니다. 한 사람은 저와 함께 극을 구성하고 편집할 브레인, 다른 한 사람은 사람들 사이에서 윤활유 역할을 할 수 있는 행동대장. 조직을 꾸려갈 때 저의 머리와 손발이 되어줄 사람을 곁에 두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기 때문에 심혈을 기울여 그들을 설득했고, 그들 나름의 바쁜 스케줄이 있었으나, 함께 하기로 했습니다. 천군만마를 얻은 기분이었습니다. 저는 머릿속의 계획을 하나씩 실현시켜갔습니다.

순조로운 시작
드디어 첫 연기반 모임을 시작하는 날이었습니다. 이야기하는 사람이 앞에 나가고 나머지 사람들은 말하는 사람을 쳐다보는 것보다, 서로서로 얼굴을 보며 이야기하면 좋겠다 싶어서 동그랗게 둘러앉아 자기소개를 시작했습니다. '왜 연기반 활동을 하고 싶은지? 좋아하는 뮤지컬은 무엇인지? 어떤 역할을 해보고 싶은지?'이야기할 수 있는 장을 만들고 처음 보는 이들 간의 어색함을 줄이기 위해 무언의 아이콘택트 시간도 갖았습니다. 순조롭게 첫날을 시작하고, 비가 오면 비 오는 대로 모여서 연기보다는 막걸리 한잔씩 하면서 인생 얘기도 하고, 단체티도 맞춰 입고 으쌰으쌰 하나가 되어갔습니다.


연기반 진행방식, 즉흥연기
즉흥연기에 대한 수업 방식도 모두들 신기해하면서도 곧잘 따라주었습니다. 미혼의 남녀들이 모인 만큼 '연애'에 상당히 관심이 집중되어 있을 것으로 예상해서 온갖 연애에서 벌어질 수 있는 상황을 만들고, 이를 제비뽑기로 뽑으면 그 상황을 즉흥적으로 연기로 만들어 가도록 진행했습니다. 사람들의 시선에서 자유로워지고 무대 위에서 나 자신에게 집중할 수 있도록 트레이닝해보자는 의미로 기획했는데, 처음 연기하는 사람들이 대부분 인대도 아주 신선하게 무대 위에서 자신을 표현했습니다. 매주가 설레고 힐링하는 기분으로 즐겁게 흘러갔습니다.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 리더가 되어 가는 나
저 또한 제가 그동안 많이 배려받으만큼 이번 기회에는 제가 많은 이들에게 베풀고 기회를 주는 리더가 되고자 신경을 썼습니다. 누구에게나 먼저 다가가 따뜻한 말을 건네고 적극적인 리액션을 해가며 제 성격이 더욱 외향적으로 바뀌어 가는 것을 느꼈습니다. 이전에는 술자리가 있으면 '내일 출근해야 해서 먼저 가볼게.'를 외치고 잽싸게 도망쳤다면 이제는 제가 먼저 '오늘 나랑 밥 먹을 사람! 오늘 나랑 놀아줄 사람~'을 찾으며 자리 마련하는 것도 열성으로 진행했습니다.

공연 준비
이렇게 두 달이 순조롭게 흐르는 가운데 저는 연출로서 공연 준비를 진행하고 있었습니다. 공연을 올릴 뮤지컬은 '아이 러브 유'로 옴니버스 형식, 즉 다양한 사랑의 모습이 짧은 에피소드 형식으로 구성된 극입니다. 저는 전체 극을 보고 이 중 우리가 연기하기에 재미있을 7개의 신을 뽑아내었습니다. 대본을 찾아내고, 해당 신에 들어갈 반주 (MR)을 찾아서 준비했습니다. MR 반주를 찾지 못할 경우에는, 해외 사이트를 통해 MR을 만들도록 주문하는 과정도 거쳤습니다.

배역 선정
이즈음 모두의 관심사는 배역 선정이었습니다. 배역 선정을 위해 각각의 신에 들어갈 메인 곡과 미리 공유한 대사를 연기해서 만인이 보는 가운데 공개 오디션을 갖았습니다. 물론 배역 결정은 제가 하기에 각각의 신에서 포인트를 보는 관점을 저 나름의 기준을 세웠습니다. 내레이션을 중요하게 봐야 할 신에서는 발성을, 과장된 연기가 필요한 신에서는 얼마나 철판으로 끼를 뽐낼 수 있는지, 높은음은 어디까지 올라가지는. 저만의 기준으로 배우들을 눈여겨보았습니다. 물론 우리는 프로가 아니라 즐기는 아마추어기 때문에 꼭 잘해야 할 필요는 없었지만, 배역을 최종적으로 선정하기 위해서는 저 나름의 기준이 필요했기 때문에 나름 그런 저만의 관점을 생각했다는 것입니다. 오디션이지만 다들 열심히 준비했음이 보였습니다. 사람들마다 성향 차이가 있어 처음부터 준비된 사람, 혹은 지금은 아주 훌륭하진 않더라도 이전의 모습과 비교해서 사람들 앞에서 꽤나 용기를 내고 있음이 보일 때 저는 참 뭉클해짐을 느꼈습니다. 무엇보다 무대를 준비하는 과정이 저의 주도적으로 계획적으로 진행되는 데에 대한 재미가 느껴졌습니다. 오디션이라기보다는 모두가 보는 앞에서 공개로 연기를 하고, 다 같이 제일 잘한 사람을 투표했기 때문에, 저는 그 결과와 지원자의 의사를 최대한 고려하여 최종 배역 선정을 했습니다.

나한테 왜 그래...
고민의 시간을 거쳐 배역 발표를 했는데 한 명씩 두 명씩 저에게 개인적으로 연락이 오기 시작했습니다. '자신은 이 역을 꼭 하고 싶다고...' 저 나름의 최선을 다한 캐스팅 발표였는데 이런 문자를 받으니 참으로 난감했습니다. 그다음에 누가 봐도 아마추어를 넘어선 뛰어난 친구에게는 특별한 신을 제안했습니다. 그의 상대역은 정말 망가지는 역할이라서 차마 다른 여자에게는 부탁하기도 어려울 것 같아서 제가 그 신을 살려보겠다고 제가 하기로 하고요. 그런데 이번에는 그 연기 좀 한다는 친구가 자신은 이 역할을 죽어도 안 하겠다는 것입니다. 저는 나름 그 신을 엄청 중요한 신으로 극 전체적으로 살려보고 싶었는데, 웬만하면 수락할 줄 알았던 친구가 고집을 부리며 안 하겠다는 것도 참 난감했습니다. 설상가상으로 처음부터 저와 뮤지컬 선정, 신 선택 등을 함께하며 큰 그림을 짜던 친구는 치열하게 연습하고 집중해야 할 시기에 회사일이 바빠져서 시간을 낼 수 없는 상황에 이릅니다. 즐겁기만 했던 연기 연습 시간이었는데, 막상 두 달여라는 시간만에 20분짜리 극을 위한 결과를 향해 치닫다 보니 어느 순간 저에게 이 상황들이 스트레스로 자리 잡게 됩니다.  무엇보다도 제가 짜 놓은 틀에 딱딱 맞아떨어졌으면 좋겠는데 예상치 못한 변수가 자꾸 생기니 종종 멘털붕괴가 되기 시작했습니다.

새로운 캐릭터의 발견
물론 연습하는 과정에서 생각지도 못한 발견을 할 때도 있었습니다. 처음에는 소심하고 재미도 없고 발성이나 톤 변화 없어 그야말로 로봇이 말하듯 하는 친구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이 친구가 그저 성실하지만 극을 살리지 못하는 캐릭터에서 꼼꼼하게 신을 준비하면서 소품을 활용한 연기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예를 들어 소개팅 신에서 남자가 여자 앞에서 엄청 허세를 부리며 잘난 척하면서 노래하는 장면인데, 이 친구가 송판을 준비해뒀다가 무르팍으로 팍 깨면서 힘자랑을 하는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연습이 거듭될수록 이렇게 생각지도 못하게 팡팡 터지는 모습을 보면서 제가 대리 희열을 느꼈습니다. 그리고 여자 친구를 부모님께 소개하는 장면을 연기할 때, 남자 역할이 마땅치 않아 여자를 남장시켜서 올리는 것으로 정했는데, 여기서도 빵빵 터지는 것입니다.


첫 리허설
가장 큰 고비는 우리끼리 제일 처음 리허설을 했을 때였습니다. 준비가 완벽하게 되지 않았지만, 빨리 전체 리허설을 해야 수정해야 할 부분을 빨리 캐치하고 보안책을 세울 수 있기 때문에 감행하였습니다. 그런데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이 20분인데, 리허설을 하고 나니 30분이 돼버리는 것입니다. 총연출과 함께 논의해봤으나 시간이 연장되는 것은 다른 극들도 연장될 가능성을 감안하여 줄여달라는 것이었습니다. 10분을 축소하기 위해서는 각각의 신에서 2분씩 줄이던지 혹은 아예 한 신을 통째로 드러내야만 했습니다. 그런데 모두가 자신의 신에 나름 열정을 쏟아 준비한 터라 2-3분씩 축소하는 것은 너무 큰 혼란을 가져오게 되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이 또한 공개적으로 사람들에게 문제 상황을 이야기하고 긴급회의를 소집해서 의견을 나눴습니다. 누구도 자신의 신을 줄인다고 선뜻 이야기하지 않았습니다. 아니, 쉽게 이야기를 꺼내지 못했습니다. 정황상 제가 야심 차게 생각했던 신을 빼기로 했습니다. 그 신은 잘 살리면 재미있을 신인데, 우선 일이 너무 바쁜 사람과 그 신을 하기 싫은 사람이 있었기 때문에 그들을 머리채 잡고 끌고 갈 수는 없을 거라는 생각에 최종적으로 삭제하기로 한 것이었습니다. 제가 연기하는 신이기도 했기에 그 신을 빼는 것은 정말 살을 베는 듯한 고통이었습니다. 그리고 저와 더블 캐스팅으로 함께 준비하던 친구에게는 너무나 미안한 일이었습니다. 정말 많이 연습했기 때문에 더욱 아쉬웠습니다. 이 일이 있고 나서는 마음의 상처가 너무 커서 사실 더 이상 극을 올리고 싶지 않을 정도로 저 스스로는 상심했었습니다. 제가 준비한 전 과정이 아무 의미가 없어지는 것 같은 속상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그래도 공연은 올라가야 한다
마상(마음의 상처)이 하루아침에 아무렇지 않게 없어지지는 않았지만, 극을 올리기 위해서 재빠르게 마음의 상처 따위는 지우고 다시 무대를 위해 연습했습니다. 여느 때와 같이 공연은 올라갔고, 그날 연기반 공연은 정말 많은 박수갈채와 칭찬을 받았습니다.


공연 끝, 자유!
그리고 그 공연이 끝나던 날 밤 비행기로 저는 해외출장을 갑니다. 보통 공연이 끝나면 너무나 행복한 기억에 잠겨서 여운을 추억하곤 하는데, 저는 막판 2개월 동안 뜻하지 않는 많은 사건을 겪으면서 심적으로 육체적으로 많이 힘들었던 것 같습니다. 오히려 일을 하러 도망치듯 떠나는 길에 '아 이제 모든 것을 내려놓게 되는구나. 드디어 끝이다!'라는 해방감을 느꼈으니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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