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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는 실패였고, 지금은 아니다

10년 차 회사원 '아는언니'의 여섯 번째 딴짓일지

by 아는언니 Oct 17. 2020


연기반 연출을 끝내고 저는 한동안 뮤지컬 동호회 활동을 하지 않았습니다. 뮤지컬이라는 딴짓이 취미가 아닌 일로서 느껴졌습니다. 저에게 스트레스를 주는 일은 하고 싶지 않아 졌습니다. 연출을 했던 시간 동안 행복했던 기억보다 마지막에 질리고 스트레스받았던 기억이 지배해서 상처 받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그때의 기억을 꺼내는 지난 글 쓰는 시간들이 저에게는 쉽지 않은 일이었습니다.

그때 제가 왜 힘들었는지 저를 지배했던 생각을 꺼내어 보았습니다.

첫째, 잘해야 한다는 생각 때문이었습니다. 다른 activity 리더들보다 잘해야 하고, 내가 운영하는 activity가 제일 재미있고, 제일 잘해야 한다는 생각이 저를 지배했었던 것 같습니다. 지금 생각하니 많이 부끄럽습니다. 회사에서 일을 할 때 성과를 내려고 안 달나 있는 팀장 밑에서 일할 때 얼마나 힘들었었는지 스치고 지나갑니다. 그런 리더 앞에서는 차마 이야기하지 못하고 뒤에서 수군댔었습니다. 리더 자신의 승진을 위해서, 그의 목표만을 위해서 팀원들을 부려먹고 괴롭게 한다고... 그런데 아마 이번 activity를 통해 멤버들이 저를 그렇게 생각하지는 않을까 되돌아봤습니다. 20분간의 공연에서 연기반이 빛나야 하고, 내가 이끈 우리의 결과물이 다른 반보다 월등해야 한다는 생각이 멤버들에게 무언의 압박을 하지 않았을까 싶었습니다.

둘째, 소통의 부재 때문이었습니다. 처음 이 활동을 준비할 때는 많은 사람들의 의견을 듣고 도움을 구하고 당신이 꼭 필요하다고 간절한 제 마음을 전했습니다. 하지만, 제가 가야 할 방향성을 확신하고서는 멤버들의 의견을 쳐내기 바빴던 것 같습니다. 저와 다른 생각을 피력하면 저는 그 생각을 받아들이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연출은 나이고 내가 하는 생각이 맞고, 그 색깔을 지키는 것이 연출이 할 수 있는 최대의 권한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멤버들은 저를 꽉 막히고 자기 고집을 내려놓지 않는 불통이라 느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때는 힘든 것을 힘들다고 말하지 못했습니다. 눈앞에 결과물을 앞두고 제가 무너지면 안 된다고 생각했고, 무엇보다도 일이 잘 돌아가게 도와주는 친구들이 너무 많았습니다. 사방팔방에서 간식을 사들고 저희 팀 연습을 응원하러 왔고, 선배 중에서도 베테랑 선배를 초빙해서 지도도 받고 했으니까요. 저를 힘들게 하는 사람만 있는 것이 아니라 도와주고 아껴주는 사람이 많다는 사실을 잊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마지막까지 꿋꿋이 해냈습니다. 지금도 그 인연들을 소중하게 생각하고 끈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또한 한 때 저를 힘들게 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과도 시간이 지나며 다시 얼굴을 마주할 용기를 얻고 웃으며 안부를 묻고 좋은 시간들을 보냅니다.

저와 같은 또 다른 3명의 리더들이 이 시간을 쉽지 않은 시간으로 기억하고 있다는 것을 우리는 모든 발표회가 끝나고 알았습니다. 저의 연기반처럼 다른 리더들이 그들의 안무반, 그들의 합창반 그들의 뮤지컬 반을 운영하느라, 사춘기보다 심한 내적 갈등을 보내고 있었던 것을 너무 늦게 서로 털어놨던 것입니다. 아마 모두 저와 같이 우리 반을 잘 이끌어야 한다는 마음에서였을 것입니다. 혹시 멤버 하나라도 그만둔다고 할까 봐 노심초사 그의 안위를 살폈던 쪼그라들었던 마음이었습니다. 맡은 역할에 대해 불편한 내색을 보인 친구를 위해 그 역할을 주지 못했던 미안한 마음이었습니다. 최선을 다하고 있는 친구에게 더 잘해야 관객들을 사로잡을 수 있다고... 조언이란 이름의 채찍질을 하면서, 모든 리더들은 늘 자신이 부족한 것 같고 멤버들에게 미안했었습니다. 진작에 각각의 리더들은 이런 마음을 털어놓고 서로 더 격려해줬어야 했었습니다, 경쟁이 아닌 윈윈을 위해서. 우리는 나름 바쁘다는 이유로, 내 것 챙기기도 여유가 없다는 이유로 서로를 잘 돌보지 못했던 것입니다. 이것이 지나고 나니 참 아쉬웠습닌다.

제가 이 활동을 통에 느낀 가장 큰 배움은 받아들임이라는 것입니다.


과정이 순탄치 않을 수도 있다. 괜찮다.
그리고 결과도 좋지 않을 수 있다. 그래도 괜찮다.

그때 저는 제 연출이 실패라고 생각했습니다. 결과물로 나온 공연은 칭찬받았지만, 정작 마지막 시간들에 멤버 몇몇이 보인 갈등 상황에서 그들을 모두 끌어안고 가지 못했던 것이 저는 스스로 실패라고 자책했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저는 달리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제가 이전 몇 년간 배우를 하면서 느꼈던 성공의 느낌, 그로 인해 얻은 높은 자존감과는 또 다르게 리더와 연출을 하면서 얻은 이 경험은 또 다른 성공이었구나라고 받아들일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저는 실패한 공연을 올린 것이 아니라, 과정의 힘듦을 이겨내고 성공적으로 연출을 마무리한 것이었습니다. 제일 처음 연기에 관심 있는 이들에게 나와 함께 연기반을 하자고 비전을 제시했고, 10명이나 되는 사람을 모아, 4개월 동안 하나의 공연이라도 올릴 수 있도록 리드했던 것입니다. 프롤로그-본론-에필로그까지 나름의 흐름을 갖춘 연기반만의 공연을 해냈고, 그 안의 6개의 신들에서 우리 멤버들이 각자의 개성을 드러내며 빛나고 있었습니다.

이 글을 쓰고 나니 정말 마음이 편안해집니다. 이제야 정말 제가 그 시간을 받아들일 수 있게 된 것 같습니다. 그 과정을 포기하지 않고 해낸 저와 멤버들이 다시금 감사해지는 비 오는 토요일 아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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