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이터 인문학
저는 나이를 거꾸로 먹으며 자랐습니다. 세상이 말하는 '어른스러움'이라는 것이 계산과 의심이라면, 저는 기꺼이 철없는 아이로 남고 싶었습니다. 하고 싶은 것을 하고, 사람을 믿고, 먼저 웃어주는 것. 20대 중반, 한 친구는 제게 경고하듯 물었죠. "너, 그렇게 살면 언젠간 꼭 후회한다?"
지금 돌아보면 그 친구의 말은 저를 위한 서투른 예방주사였을 겁니다. 하지만 세상에는 그 예방주사로도 막을 수 없는 바이러스 같은 존재들이 있더군요.
우리는 '신뢰'를 최고의 가치라 배우지만, 현실의 정글에서 신뢰는 종종 약점이 됩니다. 제가 보여준 '한결같은 진심'이라는 데이터는 누군가에게는 '예측 가능한 쉬운 먹잇감', 즉 '호구'로 해석되곤 했습니다. 그들은 제 진심을 블랙홀처럼 빨아들였습니다. 아무리 쏟아부어도 채워지지 않는 그들의 의심과 욕망 앞에서 저는 자주 소진되었습니다.
하지만 이제 저는 그들과 싸우지 않기로 했습니다.
대신, 그들을 정확히 식별하고 피해 가기로 했습니다. 제 안의 온기가 식어버리면, 정말로 저를 필요로 하는 '또 다른 진심들'을 만날 수 없을 테니까요.
제가 수많은 시행착오 끝에 정리한 극히 개인적이지만, '당신의 진심을 지키기 위해 반드시 피해야 할 블랙홀(신뢰 회의론자)의 10가지 행동 패턴'을 공유합니다.
신뢰 회의론자(Trust Skeptic) 감별 리스트
이들은 타인을 믿지 못해 스스로 막대한 '신뢰 세금(Trust Tax)'을 내며, 주변 사람까지 가난하게 만듭니다.
1. 감시 비용의 무한 지출 (The Surveillance Trap)
"참조(CC)에 나를 무조건 넣어!" 결과보다 과정을, 성과보다 근태를 감시합니다. 그들에게 동료는 파트너가 아니라 '잠재적 문제자'입니다.
2. 계약 만능주의 (Paper Safety)
"그거 녹음했어? 각서 썼어?" 밥 한 끼 먹는 약속에도 법적 효력을 따집니다. 종이 위에서의 안전만 챙기느라, 사람 마음의 계약은 찢어버립니다. 계약 진행의 분별력을 무시합니다.
3. 정보의 비대칭화 (Information Hoarding)
"이건 너만 알고 있어." 정보를 공유하면 권력을 뺏긴다고 착각합니다. 팀원을 바보로 만들어야 자신이 똑똑해 보인다고 믿는 사람들입니다.
4. 권한 위임의 부재 (Zero Delegation)
"됐어, 내가 하는 게 제일 빨라." 남을 못 믿으니 모든 일을 끌어안고 자멸합니다. 그들에게 부하직원은 생각이 있는 인간이 아니라 손발인 '아바타'일 뿐입니다.
5. '성악설' 기반의 소통 (Default Suspicion)
"저 사람이 나한테 뭘 원해서 칭찬하지?" 호의를 베풀면 꿍꿍이를 의심하고, 실수를 하면 고의적인 공격으로 받아들입니다.
6. 이중 검증 시스템 (Double-Checking Mania)
"전문가 말 맞아? 다른 데 또 알아봐." 전문가를 고용해 놓고 그를 감시할 또 다른 전문가를 찾습니다. 비효율의 극치입니다.
7. 관계의 가성비 계산 (Transactional Relationships)
"이 밥값 내면 내가 뭘 얻지?" 모든 관계에 손익계산서를 들이댑니다. 그들에게 우정은 적자 아니면 흑자, 둘 중 하나입니다.
8. 플랜 B에 대한 과도한 집착 (Exit Strategy Obsession)
"혹시 모르니 딴 주머니 차야지." 함께 잘 될 생각보다 배신당했을 때 도망칠 구멍부터 팝니다. 그 눈치는 귀신같이 상대에게 전달되어 신뢰를 깹니다.
9. 취약성 노출 거부 (No Vulnerability)
"미안하다, 모른다"는 금기어. 자신의 실수를 인정하면 죽는 줄 압니다. 완벽한 척 두른 갑옷 때문에 소통의 바늘 하나 들어갈 틈이 없습니다.
10. 제로섬(Zero-Sum) 사고방식
"네가 웃으면 내가 손해 본 거야." 신뢰는 나누면 커지는 것이 아니라, 뺏기는 것이라 믿습니다. 반드시 내가 51을 가져야 직성이 풀립니다.
스티븐 M.R. 코비는 "신뢰는 속도(Speed)다"라고 했습니다.
신뢰가 없는 곳에서는 검증하고 의심하느라 모든 일이 느려집니다. 반면, 신뢰가 쌓인 관계는 눈빛만으로도 산을 옮깁니다. 이것이 바로 '신뢰 배당금(Trust Dividend)'입니다.
저는 이제 '블랙홀'들을 미워하는 데 에너지를 쓰지 않으려 합니다.
그저 조용히 거리를 둘 뿐입니다. 그들은 평생 타인을 감시하느라, '조건 없는 믿음'이 주는 기적 같은 편안함을 영원히 맛보지 못할 테니까요.
앞으로 누군가를 만날 때, 위 10가지 중 3가지 이상이 보인다면? 저는 조용히 제 마음의 문을 닫고, 제 진심을 알아봐 줄 다른 별을 찾아 떠날 것입니다. 제 진심은, 그것을 귀하게 여길 줄 아는 사람에게만 허락된 특권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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