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묘한 Jul 04. 2024

기묘한 레시피 ep.058 & 와인 페어링

기묘한 코코넛 쵸컬릿칩 스콘

나는 이미 어릴 적부터 알고 있었다. 

내가 한국에서 정상(?)적으로 사는 건 불가능하다는 것을. 그렇다고 도망갈 용기도 부족했다. 한 번 떠나면 꽤 오랜 기간 돌아오지 않았지만, 그래도 결국 이곳으로 돌아왔으니까. 나만의 반항의 방식으로 한식을 거부했다. 한국말을 하지 않고, 한국 사람을 만나지 않았다.


그렇게 격렬하고 치열한 방황 속 20대가 끝나갈 무렵, 나는 죽음에 대해 다시 생각했다. 죽음을 생각하는 건 삶을 생각하는 것과 같은 얘기인데, 잘 죽고 싶었고, 그래서 잘 살고 싶었다. 그 좋아하던 담배를 하루아침에 끊고, 가공육을 포함한 온갖 가공식품을 끊었다. 미국식 인스턴트 음식과 소스류를 끊고, 난 그렇게 요리를 시작했다.


어릴 적 엄마가 해주었던 음식들, 멸치를 다듬어 깨끗한 팬에 덖어내고 그것으로 육수를 내는 그 아주 기본적인 것부터 시작했다. 누가 가르쳐 준 것이 아니었기 때문에, 내 모든 레시피는 상당히 오랜 시간 많은 경험을 통해 생겨난 나만의 보물이다. 요리를 하다 보니 고기를 내 손으로 만지게 되는데, 그게 크게 유쾌하지 않았다. 굉장한 육식동물이었던 어릴 적 나는 잊힌지 오래다. 므슈가 내게 온 것도 한몫을 했다. 나는 그때, 비건을 생각했다.


물론 그게 오래 가진 않았다. 나름의 큰 성과라고 하면 붉은 육류를 멀리하게 된 것, 좋은 식재료를 찾는 능력을 갖게 된 것, 재료 본연의 맛에 집중하게 된 것 등이다. 비건을 생각했을 그 무렵, 베이킹을 참 많이 했다. 베이킹 실력이 많이 부족했기 때문에 발효빵보다는 디저트류의 빵을 많이 구웠는데, 그때 다듬어진 레시피 중 여전히 내 최애인 코코넛 쵸컬릿칩 스콘은 아주 쉽고 맛있어서 재료만 있으면 뚝딱뚝딱 만들기 참 좋다.


가을에서 겨울로 넘어가는 계절에는 사과파이와 펌킨파이가 당기고, 크리스마스 근처로 오면 난 늘 코코넛과 레몬을 쓰는 디저트들이 당긴다. 따라서 자연스럽게 이 스콘을 굽고 있는 나를 발견한다. 코코넛을 오븐에 구우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게 고소한 향이 온 집안에 진동을 한다. 코코넛과 쵸컬릿은 세계 어딜 가나 사랑받는 식재료이다. 내게는 미국의 맛이기도 유럽의 맛이기도, 또 아시아의 맛이기도 하다. 나의 방황 속 20대와 방랑의 30대를 한껏 머금고 있는 기묘한 코코넛 쵸컬릿칩 스콘을 나눈다. 모두가 고소하고 향긋하고 달콤하고 따스한 연말을 갖기를 바라며...


<기묘한 코코넛 쵸컬릿칩 스콘>


재료: 유기농 우리밀 260g, 유기농 코코넛 파우더 75g, 유기농 쵸컬릿칩 70g (카카오 함량 65% 이상), 유기농 코코넛 밀크 100g+10g, 유기농 코코넛 크림 100g, 유기농 비정제 사탕수수 원당 70g, 소금 한 꼬집, 베이킹소다 2g, 베이킹파우더 10g, 바닐라빈, 레몬즙 15g

- 코코넛 크림을 구하기가 어렵다면 코코넛 밀크로 대체하면 된다.

- 스콘의 생명은 차가운 재료들이다. 코코넛 밀크와 크림은 모두 차가운 상태에서 쓰는데, 겨울철엔 이미 크림의 대부분이 고체화되어 있을 것이다. 아주 완벽한 프렙이니 걱정 말자. 여름철이라면 냉장 보관하여 차가운 상태의 것을 쓴다.

- 코코넛 파우더를 구하기가 어렵다면 코코넛 플레이크를 갈아서 파우더화하여 쓴다. 개인적으로는 유기농 생 코코넛 플레이크를 오븐에 저온으로 구운 뒤, 그것을 갈아 쓴다.


1. 오븐은 200도에 예열한다.

2. 큰 볼에 밀가루, 코코넛 파우더, 소금, 베이킹소다, 베이킹파우더를 체 친다.

3. 2에 설탕을 넣고 섞는다.

4. 다른 볼에 코코넛 밀크과 코코넛 크림, 레몬즙, 바닐라빈을 섞는다.

- 코코넛 밀크 10g은 따로 보관한다.

- 차가운 상태이기 때문에 코코넛 크림이 고체화되었을 것이다. 신경 쓰지 말고 둔다.

5. 3에 4의 고체 상태 크림을 손이나 매셔로 대강 섞는다. 손의 온기가 오래 닿지 않게 주의한다.

6. 나머지 액체를 다 넣고 섞는다.

7. 반죽을 한 덩어리로 뭉치고 납작하게 만든다.

8. 스콘 원형틀을 써서 모양을 잡거나, 7의 반죽을 둥글고 납작하게 만든 뒤 8등분 한다.

9. 오븐 트레이에 반죽을 올리고 4에서 따로 보관해 둔 코코넛 밀크를 반죽 윗면에 바른다.

10. 예열한 오븐은 180도로 낮추고 23~25분 굽는다.

기묘한 와인 페어링: 개인적으로 스윗한 와인을 좋아하지는 않아서 디저트를 먹을 때도 드라이한 화이트와인 혹은 스파클링 와인을 선호하는 편이다. 그런데 기묘한 코코넛 쵸컬릿칩 스콘은 많이 달지 않고, 스콘 자체가 주는 밀가루 본연의 맛과 쌉싸름한 다크 쵸컬릿칩, 향긋한 코코넛의 조화는 조금은 달콤한 와인도 뜻밖의 괜찮은 페어링을 뽐낸다. 특히 그것이 레드와인이라면 그 유니크한 조합에 의문을 가질 수 있지만, 이탈리아의 람브루스코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이탈리아 북부 에밀리아-로마냐롬바르디아 혹은 남부 뿔리아에서 생산되는 람브루스코는 완전한 스파클링이라고 부르기는 어렵다. 암포라(와인 항아리)에서 보관과 발효가 진행되며 자연스레 생기는 약간의 이산화탄소가 우리에게 살짝의 스파클링을 선물한다. 간질간질 약간의 기포와 과하지 않은 달콤함, 높지 않은 알콜 도수가 좋은 밸런스를 이루는 람브루스코는 싱그러운 베리들과 향기로운 꽃향, 과하지 않게 상큼한 시트러스가 어우러져 고기로 만들어진 메인 요리나 따뜻한 슾과 페어링 하여 식전주로도 좋고 기묘한 코코넛 쵸컬릿칩 스콘과 함께 디저트와인으로도 아름답다. 때로는 기묘한 페어링인 듯한 만남이 더 근사한 마리아쥬를 보일 때가 있다. 우리가 의외의 상황에서 인연을 만나는 것처럼- :)

이전 27화 기묘한 레시피 ep.057 & 와인 페어링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