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와 기록
12월이 되면 어김없이 생각하게 된다. 벌써 12월이라니.. 시간이 왜 이리 빠른 거지? 올해 뭐를 했지? 등등..
시작과 끝이 있다는 것이 새삼 좋다는 생각이 들었다. 연속적인 하루하루에 불과하기도 하지만, 숫자로 정해놓은 초, 분, 시간, 날, 주, 월, 년이라는 개념들이 있기에 우리는 연속적인 시간을 끊어서 생각하게 된다. 그렇다 보니 조금이라도 돌아보게 된다. 오늘은? 이번주는? 이번달은? 올해는?이라는 생각을 하면서..
작년 이맘때 써두었던 글을 찾아서 읽어보았다. 올해 이맘때의 내가 이루었으면 하는 것들을 위주로 적어두었는데, 어떤 것들은 이루었고, 어떤 것들은 아직 진행 중이었지만, 지금 현재 내가 주로 생각하는 생각들과는 전혀 다른 생각들을 하면서 지냈던 내가 보였다. 1년 사이에 어쩜 이리도 많이 변했을까에 새삼 놀랍기도 하다.
재작년 전부터 기록을 시작했다. 처음 시작은 읽은 책을 좀 더 잘 기억하기 위해서 기록해 두자는 것이었고, 그러다 보니 내가 현재 하고 있는 생각들을 기록해 두게 되었다. 거기다 글을 쓰면 자신을 더 잘 알 수 있다는 말에 더욱 열심히 글을 쓰고 기록하게 되었다. 사실 글을 쓰기는 하지만, 예전의 글들을 다시 들쳐보는 경우는 드물다. 필요하다고 느끼기 전까진 일기장이던, 블로그에 쓴 글들이던 다시 잘 읽어보진 않는다. 지금처럼 12월이라는 특정한 달이 시작하며 작년의 내가 써두었던 글이 생각나 찾아 읽어보게 되는 일은 드물게 일어나지만, 기록해두지 않았다면 아예 읽을 것도 없었을 것이고, 그러면 내가 작년에 어떤 생각을 했는지 단편적인 기억들에만 의존을 했을 것이다. 그리고 작년의 나와 지금의 내가 많이 변해있다는 사실을 알지 못하고 넘어갔을 것이다.
나에게 기록은 그런 것이다. 나의 변화를 알게 해 주는 척도. 쓰다 보니 보이기 시작했다. 나의 생각들이 어떻게 바뀌어 가는지, 내가 중요하게 생각하고 관심을 갖는 부분들이 어떻게 바뀌는지, 작년의 나, 지금의 나, 몇 년 뒤의 나는 또 많이 달라있을 것이라는 것이 보인다.
글을 쓰면 나를 좀 더 잘 알 수 있을 것이라 기대했는데, 글 쓰는 것이 나를 더 잘 아는데 많이 도움이 되는지는 모르겠다. 어떤 글을 쓰는지에 따라서 달라질 수 도 있을 것 같긴 하지만, 내가 1년 넘게 글을 써오면서 나에 대해서 발견한 것들은 완전히 색다른 것들은 그리 많지는 않다. 아예 없다고도 못하지만, 기대한 것보다는 적어서 없다고 생각하는 것일 수도 있다. 대신, 글쓰기는, 기록은 끊임없이 이어진 시간들을 조금씩 끊어서 그 사이에 공간을 만들어 주었다. 만들어진 공간에서 잠시 서서 생각을 할 수 있게 만들어 주었다. 그렇게 만들어진 생각은 나중에 나의 궤적의 변화를 알아차릴 수 있는 여지를 만들어 주었다.
내가 처음 의도한 것과는 다른 방식으로 삶은 전개되고, 이어가는 경우가 많다. 내가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면서 가보는 것이 인생이지만, 내가 어디를 거쳐 지금 이곳에 있는지는 조금 더 명확히 알고 싶다. 사진을 통해 내가 어디를 갔는지, 무엇을 먹었는지, 무엇을 보았는지, 누구와 함께 했는지를 알 수 있다면, 글쓰기와 기록은 내가 주로 하는 생각은 무엇인지, 무엇이 고민인지, 무엇 때문에 힘든지, 무엇 때문에 즐거운지를 알게 해 준다.
일기장의 권수가 하나씩 쌓여갈 수 록, 저걸 다시 펼쳐 볼일이 있을까? 싶은 생각도 들고, 들쳐보기 싫은 내용들이 있다는 걸 알기에 펼쳐보길 주저하기도 하지만, 언제든 열어볼 수 있는 기록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부끄러운 과거이고, 만족스럽지 않은 시간들일지라도, 이것이야말로 나를 알 수 있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지 않을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