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에 수능이었다는 소리를 들었다. 수능이 이제는 나와 너무나도 상관없는 일이 되어버렸다는 자체가 사실 놀랍다. 한국에 살 때면 수능날이면 출근도 좀 늦었던 것 같고, 아주 오래전이지만 수능을 치렀던 사람으로서 한국에서 수능이라는 시험이 얼마나 큰일인지 알기에 나와 상관없는 일이 되어버린 수능이라는 단어가 오랜만에 낯설게 다가왔다.
나는 시험을 아주 많이도 쳤었다. 사실 남들보다 월등히 많이 쳤을 것 같다. 일단 가방끈이 길기에 학교생활이 길었고, 유학을 나왔기 때문에, 유학 가기 위해 준비해야 하는 영어점수가 필요해 그 시험을 여러 번 쳤었다. 영어는 정말 자신이 없었기에 학원도 오래 다녔었고, 회사 다니던 중에 준비를 했기 때문에, 시간은 없고, 돈은 좀 있었어서 시험을 여러 번 치는 전략을 세우기도 했었다. 계속 보다 보면, 어느 하나는 점수가 잘 나오지 않을까란 생각이었지만 점수는 항상 정직하게만 나와서 토플회사의 유리창 하나는 내가 바꿔주지 않았을까 싶게 많은 시험을 쳤어야만 했었다.
어린 시절엔 어른이 되면 더 이상 시험이 없으니 좋지 않을까란 생각을 막연하게 했었다. 사실 점수가 나오거나 합격 불합격을 나누는 시험 자체를 볼일은 없어졌지만, 언제나 우리는 시험대에 올라야 하지 않나 싶다. 나 같은 경우는 연구원으로 일하면서 논문 하나가 완성되면 journal에 논문을 투고하는데, 그때마다 이 논문이 가치가 있는지 없는지에 대한 신랄한 평가가 이루어진다. 좋은 journal 일 수록 그 평가는 까다롭고 가끔은 나름 자부심을 갖고 투고한 논문에 신랄한 평가가 이루어지면, 내 연구에 대한 비평에 화가 났다가도 그 정도로 쓸모없다고?라는 생각에 기분이 다운되기도 한다.
박사논문을 쓰고 나서는 defense라는 걸 한다. defense라는 말 그대로 방어를 해야 한다. 논문을 발표하고 교수들이 하는 질문을 얼마나 잘 방어해 내 연구가 왜 가치 있는지를 보여주는 방식이다. 사실 이제는 defense 도 많이 형식적으로 바뀌어서, defense를 한다는 것 자체가 박사의 끝을 보여주는 것이 되어 defense에서 떨어지는 일은 없지만, 아마도 예전엔 정말 defense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안 받고가 결정되기도 했었을 것이다.
회사를 다니는 사람들이라면 매년 연말에 업무 평가를 주고받아야 한다. 자영업을 하는 사람들이라면 자신이 생산하는 제품에 대해서 회사에서의 업무 평가와는 비교불가하게 수입에 직결하는 평가가 이루어질 것이다. 인터넷이 발달하며 음식점 하나하나 모두 점수가 매겨지고, 많은 경우 사람들은 그 점수와 리뷰가 얼마나 많은지를 보고 어디를 갈지를 정하기도 한다.
학교에서 보던 어떤 지식을 얼마나 정확하게 습득했는지를 평가하는 시험이 아닌 실제 삶과 연관된 시험을 우리는 매일 치르고 있는 것이다. 꼭 일과 관련이 있는 것이 아니라 하더라도, 사람과의 관계 안에서도 시험이라는 단어를 사용할 수는 없어도 우리는 매일 옆사람의 평가에 좌지우지된다. 인정욕이라는 말로 바꿔 말할 수 도 있을 것 같은데, 인정받기 위해 우리는 많은 노력을 하면서 살아간다. 옆사람이 나를 좋게 생각했으면 좋겠다는 마음에 나도 모르게 어떤 행동들을 많이 하며 지낸다. 내가 의식을 했던 안 했던 하는 행동들 중엔 많은 경우 내 의지보다는 타인의 의지가 들어간 경우도 많다.
죽을 때까지 평가라는 것을 인간의 삶에서 떼어놓고 생각할 수 있을까?라는 질문에 불가능하다는 대답이 바로 따라 나온다. 인간은 혼자서는 살아가는 것이 불가능하기에 서로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평가하고 평가받게 된다. 이런 상황에서 평가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 방법으로 많은 책들은 자존감을 높이라 말한다. 자신이 자신을 존중하고 본인이 굳건하면 된다고. 하지만, 그렇게 간단한 방법이 아닐 것같다라는 생각이 요즘의 내 생각이다. 한 가지로 해결되는 문제였다면 해결책이 이렇게 많은 방법으로 쏟아져 나오지도 않았을 것이고, 책이나 유튜브에서 온갖 방법을 설명하는 사람도 많지 않을 것이다. 인간은 그것보다는 훨씬 겹겹이 층층이 얽히고설켜서 뭔가의 현상을 설명하는 것은 쉽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
그렇다고 노력을 하지 말라는 소리는 아니다. 엄청 복잡하고 설명이 한 가지로 되지는 않지만, 적어도 내가 잘 살기 위해서라도 나에 대해서 타인에 대해서는 알아야 하지 않을까란 생각이 든다. 그래서 요즘 나는 그리 철학책, 정신분석책에 빠져있나 보다. 한편으로는 사실은 해답이 존재하지 않는 것이지만, 해답 같아 보이는 어떤 것을 붙잡고 싶은 것이 아닌가란 생각도 든다. 실제로 존재하는지 알 수 없는 신을 대신해서 그 신을 상징하는 물건을 만들어 내는 것처럼
사진: Unsplash의Billy Alber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