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얼굴 왜 이래??
웃으면 눈이 반달이 되며 눈이 보이지 않게 작아졌다. 조금은 크고 두툼한 입술은 웃는 모습을 선명하게 보여줬다. 그래서 이쁘게 웃는다는 소리를 자주 듣곤 했다. 나는 그 얼굴을 당연하게도 여전히 갖고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올해는 아빠의 칠순을 맞아 한국 방문을 하면서 4박 5일 일정의 가족 여행을 다녀왔다. 5명이었던 가족은 이제 10명이 넘었고, 늘어난 가족수만큼 카메라 숫자도 늘어나, 내가 찍히는 사진의 수도 많았다. 나는 활짝 웃었고, 예전의 내 표정을 기대하며 사진들을 확인했지만, 내 표정은 웃는 얼굴이 아닌 울상에 더 가까웠다.
처음엔 여행 오기 전에 했던 파마를 탓했다. 머리를 잘못해서, 사진발이 안 받는다 생각하며, 머리를 손질하는데 조금 더 신경을 썼다. 하지만 울상인 나의 표정은 여전했다. 여행 중 쉴 새 없이 먹어서 부은 얼굴 때문일까 싶어 사진을 찍을 때 눈을 부릅떠보기도 했지만, 여전했다. 내가 나온 사진을 확대하며 가족들에게 내 얼굴이 이렇냐며 이해할 수 없다며 푸념을 늘어놓았다. 다들 웃기만 하고 별말이 없었고 엄마만이 언젠가부터 내 표정이 이러더라라고 한마디 덧붙였었다.
내 표정이 언제부터 변했을까 예전 사진을 확인했다. 분명 몇 년 전에는 내가 알던 예전의 내 표정이 있었던 걸로 기억하는데 언제부터인 건지 기억이 나지 않았다. 게다가 언제부턴가 사진을 찍어도 내가 알던 내 얼굴이 아니기에 사진을 찍지 않기도 했었다. 그저 늙어서 그런 것이라고만 생각해 왔었다. 주름이 지고, 얼굴살이 처지니 예전 같지 않은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것만이 이유는 아니란 걸 인정해야 했다.
누군가가 나에게 힘든 소리 하는 걸 듣는 것도 잘 못하지만, 나는 다른 사람들에게 힘든 소리를 하지 않는 편이다. 힘든 걸 이야기하는 것 자체를 싫어하기도 하지만, 내 자존심이 상하기 때문에 말하지 않는 것도 크다. 힘들다고 얘기하는 것이 나의 무능함을 남들에게 인정하는 것 같단 생각을 하는 편이다. 남들에게 나의 힘듦을 이야기하지 못하는 것만큼 나 스스로도 나의 힘듦을 인정하지 않는 편이다. 힘들어도 힘들다 생각하지 않으려 했고, 이겨내고 견뎌야 하는 일들이라고만 생각했다.
지금 돌아보면 나의 최근 10년은 쉽지 않았다. 결혼에, 유학에, 타지 생활에, 출산과 육아에, 취업에, 두 번의 큰 이사 등등 여러 일들이 휘몰아쳤었다. 누구나 이때는 힘들다고들 하니, 그저 버티고 견뎌야 하는 시기라고 생각하며 지나왔다. 워킹맘으로 육아는 나만 힘든 것은 아니니 더 쥐어짜면서 해내야 한다고 생각했다. 타지에서의 출산과 육아였기에 오롯이 나와 남편만이 있어 누군가의 희생은 언제나 필요했고, 나만 희생했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아이가 어릴 때는 나의 희생이 더 많을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나는 힘들지 않다고, 잘 지내고 있었다고 생각했고, 그렇게 하나의 고비가 지나갈 때마다 해냈다고 안도했다. 하지만 나의 표정은 나의 힘듦을 덮지 못하고 그대로 들어내고 있었다. 나는 인식하지 못했지만, 나의 몸은 내가 지나쳐온 여러 풍파들을 고스란히 드러내고 있었다.
올해 한국에 도착하자마자 엄마는 나를 데리고 한의원에 데리고 가셨다. 이곳 약이 잘 든다면서 엄마는 나를 진맥 하게 하시고는 한 달 치 한약을 지어주셨다. 한의사는 나를 진맥 하며 예민하신 성격이시네요라고 말했고 엄마는 거기에 강한 동의를 하셨다. 나는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예민하단 얘기를 들어본 적이 없는데 무슨 소린가요?라고 반문했지만, 엄마는 내가 조그마한 일에도 파르르 떤다며 덧붙여서 말씀하셨다. "내가요?"라고 말하며 엄마를 쳐다봤지만, 확신에 찬 엄마의 얼굴을 보고는 엄마의 생각을 꺾기를 포기하고 "네네" 하고 말았다.
사진에 찍힌 나의 표정을 보고 많은 생각이 들었다. 처음엔 왜 이리 못생겨진 거야였지만, 나이가 들면서 나오는 얼굴은 그 사람의 삶을 보여주는 것이기에, 나의 삶을, 나의 생각을, 내가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을 다시 한번 바라보게 되었다.
힘듦을 인정해야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남들에게 말하지 못한다고 나조차 나의 힘듦을 인정하지 않을 필요는 없는데, 나 스스로도 인정하지 않고 살아가고 있었다. 일하는 곳에서 인정받기 위해, 육아를 잘 해내기 위해, 나의 일도 잘하기 위해 매번 긴장상태였던 나를 인정해야겠다. 나는 내가 예민하지 않은 사람이라 생각했지만, 예민해져가고 있었고, 예민해진 것이었는데, 예전의 내 모습만을 기억하던 나는 나의 변화를 모르고 있었다.
이제는 태어날 때 갖고 태어난 얼굴이 아닌, 살아가며 내가 만들어온 표정이 나의 얼굴을 점점 더 많이 차지해 가는 것 같다. 나이가 들면 표정에 그 사람의 성격이 다 드러난다는 얘기를 듣곤 했다. 아직은 나와 상관없는 말들이라 생각해 왔지만, 나의 표정들이 그렇지 않음을 보여준다. 내 표정과 얼굴에 더 책임을 가져야겠다. 예전처럼 걱정 없이 태평하게 살기엔 책임져야 할 일들이 너무 많아졌지만, 그 안에서 더 많이 웃고, 더 많이 울고, 더 많이 표현하며 무표정만이 아닌 여러 다른 표정들을 지으며 살아가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