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과의 식사와 대화
지난 월요일부터 다음 주 수요일까지 일 때문에 타주로 오게 되었다. 10일이나 되는 일정이 조금은 길어 출발 전부터 부담감이 느껴졌다. '주말까지 타주에서 있어야 한다니.. 이건 좀 싫은데'라는 생각을 했지만, 이미 정해진 일정이니 짐을 싸서 왔고, 벌써 일주일의 시간이 지나 토요일이 되었다.
이번 한 주를 돌아보면 생각보다 만족스럽긴 했다. 물론 몸은 엄청 피곤했다. 아침 8:30부터 5시까지 꽉 들어찬 일정을 끝내고 나면 몸이 녹초가 되어버렸고, 저녁 10시만 되면 잠이 쏟아져서 참지 못하고 쓰러져 잠이 들었다. 재택근무를 2년 넘게 해 오던 나의 몸은 예전에 출근하던 생활에서 이미 멀어진 지 오래였고, 아침부터 어딘가에 가서 하루종일 일정이 있는 생활을 아주 피곤해했다.
몸은 피곤했지만, 만족스럽다는 생각을 하게 해 준 부분들은 동료들 덕분이었다. 같은 곳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총 5명 함께 오게 되었기 때문에, 매일 5시에 일정이 끝나면 다 같이 숙소로 돌아와서 각자 조금씩 쉬고 7시에 만나 저녁을 먹으러 갔다.
같은 팀으로 일한 지는 꽤 되었지만, 대부분이 자택으로 일하는 곳의 특성상 일을 하기 위해 줌으로는 자주 만났지만, 이렇게 개인적인 일상을 나눈 적은 드물었다. 지금처럼 모여서 해야 하는 일이 생길 때만 가끔씩 만났기 때문에 2번 정도 다 같이 저녁식사를 한 적은 있었지만, 가까이 앉게 되는 사람들과만 얘기를 하게 되니, 그렇지 않은 사람들과는 여전히 서먹했다.
첫날엔 저녁을 먹으러 같이 가는 것도 어색했다. 그렇다고 같이 안 가기는 더 이상했다. 혼자서 편히 유튜브나 틀어넣고 먹고 싶다는 생각을 뒤로하고 함께 나가 식사를 했다. 어떤 사람은 국적도 몰라 어디서 왔는지부터 시작해서, 여러 질문을 오고 가며 조금씩 그들을 알게 되었고 조금씩 편해졌다. 그렇게 5일이 지나니 이제는 당연하게 저녁 7시는 저녁을 먹으러 가는 시간이 되었고, 일하는 중간중간 마주치게 되면 오늘은 뭐를 먹으러 갈지를 얘기하고 있었다.
어제저녁엔 코리안 바비큐와 Hot Pot을 하는 곳에 다 함께 다녀왔다. 내가 주도해서 주문을 하긴 했지만, 한국에 대한 관심이 전 세계적으로 많이 올라갔기에, 이미 이곳을 와봤던 다른 미국인은 요구르트 소주를 시켰고, 자신이 좋아하는 메뉴들을 추천해 줬다. 자연스럽게 K-drama, K-pop, K-spa, K-food... 이야기가 오고 갔고, 두 손으로 소주를 딸아 주고 두 손으로 받아야 한다는 걸 알려주고는 소주잔에 소주를 채우고 '건배'를 외쳤다.
예전에 읽었던 '행복의 기원'이라는 책에서는 행복을 진화론적인 관점으로 설명한다. 진화론적으로 인간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생존과 번식이었고, 이 생존과 번식을 하게 만드는 방법으로 행복이라는 감정을 이용했다고 한다. 이 행복이라는 쾌감을 주는 감정을 계속해서 느끼기 위한 방향으로 사람은 진화를 해왔고, 그렇게 그 감정을 느끼기 위해 행동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강한 한방의 행복이라는 감정도 중요하겠지만, 소소하게 자주 기쁨을 느끼는 사람들이 자신은 행복하다고 더 많이 느끼게 된다. 그리고 이렇게 소소하게 자주 행복감을 느낄 수 있는 방법은 사람들과 밥을 먹을 때 와 대화를 할 때이다. 그래서 책에서는 좋아하는 사람들과 맛있는 식사를 자주 하는 사람이 더 행복해질 수 있는 법이라고 말한다.
당연하게 내 주변에 있던 사람들 덕분에 항상 행복할 수 있었지만, 어쩔 땐 그걸 느끼지도 못하면서 살아왔다. 나의 집에서는 남편과 아들이, 이곳에서는 동료들이 있기에 작은 행복을 매일 느낄 수 있었다.
이곳에 오기 전에 남편은 3주간 한국일정이 있어서 들어갔고, 방학인 아들은 아빠를 따라 한국으로 갔다. 혼자만의 시간이 생겨서 쾌재를 부르던 나는 주변에 아무도 없다는 사실에 (그 동네로 이사간지 얼마 안 되었고, 자택으로 근무하기에 아는 사람이 아직 한 명도 없다.) 3일 만에 심심함을, 7일 만에 외로움을 느껴버리게 되었었다. 3주라는 끝이 있는 일정이었음에도 외로움은 쉽게 가시지 않았다. 오랜만에 한국에 들어가면 할 일이 많기 때문에 바빴던 남편과 아들의 연락은 뜸해졌었다. 당연한 걸 아는데도 서운함까지 더해져서 조금은 힘든 3주를 보냈었다.
사실 이런 결핍이 있었기에 주변에 있는 사람들의 소중함을 느끼게 되었고, 그런 외로움, 고립감, 서운함이라는 감정이 언제나 찾아올 수 있음을 지금 느껴볼 수 있었던 건 다행이다 생각한다. 끝이 없는 일정으로 이 감정을 느끼게 되었다면 헤어 나오기 힘들었을 것이다.
또다시 복작거리면서 살면 주변사람의 소중함은 부담감이 되어버리기도 할 것이다. 발란스를 잘 맞추면서 사는 것은 언제나 어렵다. 시소 타기처럼 감정이 내려가고 올라가는 것 없이 살 수는 없겠지만, 이런 시간을 통해 배우며 균형을 맞추기 위해 노력하다 보면 언젠가는 지금보다는 조금 덜 내려가고 빠르게 올라올 수 있게 되지 않을까 기대해 본다.
사실.. 아직도 내가 모르는 감정이 더 남아있을 것이고, 더 크게 내려갈 수도 있고, 더 오래 그곳에 머물러야 할 수도 있겠지만, 어쩌겠는가? 처음 마주하는 감정은 어떻게 다스릴지 닥쳐봐야 알게 되는 것을.. 그리고 자주 닥쳐도 적응 안 되는 감정도 있고, 피하고만 싶은 감정들이 있는 것을..
그렇게 하나하나 경험하고 느끼면서 올라갔다 내려갔다 하면서 사는 것이 인생이려니 해야겠다. 지금은 속 편하게 말하고 있지만, 내려가 있을 당시엔 조절이 참 안된다.
사진: Unsplash의Kevin Curti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