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나비야날자 Jul 19. 2024

말은 무겁게 글은 가볍게?

아니! 글은 재밌고 진솔하며 공감되게.. (그러니 발행을 못하지)

20대 때의 나를 생각해 보면 나는 사람 만나는 것도 좋아했고, 만나서 신나게 웃고 떠들면서 활력을 느끼곤 했다. 사람들을 좋아했고, 사람들과 만나고 나서 헤어져서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그날 있었던 재밌는 일들이 떠올라서 피식피식 웃으며 집으로 가기도 했었다. 물론 모든 자리가 다 좋지는 않았겠지만, 친구들을 좋아했었고, 친구들과 시간을 보내는 것들이 즐거웠다.



30대에 미국으로 오면서 많은 것이 변했다. 일단은 언어장벽을 마주하고 말수가 적어졌고, 사람들 만나는걸 예전만큼 즐길 수 없게 되었다. 나에게 익숙하지 않은 문화와 영어에 오랜 시간 노출되어 있으면 금방 피곤함을 느꼈기 때문에 나의 20대처럼 모임자리를 즐기는 것이 쉽지가 않았다. 한국인을 만나는 것 도 예전처럼 편하진 않았다. 한국 커뮤니티가 워낙 작다 보니 소문은 빠르게 퍼졌고, 언제나 루머가 있었다. 



그렇게 10년을 지내다 보니 나의 정체성도 조금씩 변하게 되었다. 사람들을 만나는 것보다는 혼자서 집에서 보내는 시간을 더 즐겼고, 나가서 사람들과 마시는 맥주보다 집에서 편한 옷을 입고 소파에 앉아서 남편과 함께 영화 한 편을 보며 마시는 맥주 한잔이 더 좋았다. 



모임을 나가는 횟수와 함께 말수도 적어졌다. 이제는 어느 모임에 가도 말을 하는 시간보다 듣는 시간이 더 많아졌고, 점점 말을 아끼게 되었다. 여러 가지 상황에 의해 그렇게 된 부분도 있지만, 말을 많이 하고 돌아오는 날엔 뭔가 찜찜함을 느꼈기 때문이다. 내가 한 어떤 말이 누군가를 기분 나쁘게 한건 아닌지, 내가 너무 많은 얘기를 한건 아닌지, 이런 얘기는 뭐 하려 했나?라는 생각들이 집으로 오는 내내 머릿속에서 맴돌고는 꼭 후회를 만들었다. 그런 후회들이 쌓이다 보니 이제는 모임에 가서 말을 아끼게 되었다. 더 많이 듣고 온날은 머릿속이 편했다. 내가 한 말들에 대해서 되짚어 생각하지 않아도 되기 때문에 머릿속이 조용하다. 말을 아끼면서 좋은 점들이 보이기 시작하니, 말을 더 아끼게 되었고 그것이 주는 편안함이 좋았다. 






하지만 요즘 글을 쓰기 시작하면서, 다른 고민이 생겼다. 나 자신을 드러내지 않으면서 쓰는 글들은 한계가 있다는 점이었다. 글은 말과는 다르게 기록이 남으니 주제선정에도 조금 더 신경을 쓰게 되고, 나를 들어내게 되는 부분에는 더 조심히 쓰게 되는데, 그렇다고 글이 솔직하지 않으면 그 글은 힘을 잃고 만다는 것이다. 솔직하되 나도 찝찝함이 없고 보는 사람들도 공감을 느낄 수 있는 글을 쓰는 것은 어렵다. 거기다 아직은 누군가에게 공유할 수 없는 이야기이기에, 너무 주관적인 생각이기에, 굳이 남에게까지 말할 필요를 못 느끼기에 등등 여러 가지 이유로 쓰기만 하고 발행하지 못하는 글들이 쌓여간다. 


말은 무겁게 하고 글은 좀 더 가볍게 써야 할까? 내가 어떤 글들을 좋아했는지를 생각해 보면, 새로운 정보를 주는 글들도 좋아하지만, 사람 사는 이야기를 하는 글들도 좋아한다. 그런 글들 중 재밌으면서, 고개가 절로 끄덕여지며 공감이 되는 글들이 특히 좋다. 누군가에게 말하기 창피하다 느껴서 말하지 못하던 부분을 누군가의 글을 통해 만나게 되면, 반갑고, 그 글을 써준 사람에게 고마움을 느낀다. 나는 내지 못한 용기를 내줘서 고맙다는 마음이 생긴다.


말은 40년 넘게 해 왔고, 글은 이제 쓰기 시작했으니 어려운 것이 당연할 것이다. 발행하지 못하는 글들이 쌓여가고 있지만, 오늘도 한 자 한 자 써본다. 


사진: UnsplashNick Morrison

이전 13화 느리면 어때 끝까지 하는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