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적 있으신가요?
아침에 아들을 학교에 데려다주고 집에 돌아오던 길, 반대편에서 개 두 마리를 데리고 산책하는 사람이 걸어오는 것이 보였다. 아침에 개와 함께 산책하는 사람들은 워낙 많다 보니 나는 그들을 신경 쓰지 않고, 귀에 꽂은 이어폰에서 흘러나오는 이야기에 집중하며 정면을 바라보며 걷고 있었다. 그들은 내 시야의 정면이 아닌 측면 끝에 있었는데 개 한 마리의 움직임이 뭔가 달랐다. 다르다는 생각이 미치기도 전에 내 시선은 그들을 향했고 평소와 다른 무언가를 찾기 시작했다.
보통의 개들은 네 다리를 박자에 맞춰서 움직인다면 (다다다다:앞왼발, 앞오른발, 뒤왼발, 뒤오른발), 두 마리 중 한 마리는 걸을 때 박자가 어긋나 있었다. 그러다 보니 보통의 개들은 걸을 때 몸이 위아래로 움직임이 덜한데 그 개는 몸이 위아래로 많이 들썩거렸다. ‘다리가 어디가 아픈가? 왜 저렇게 걷지?’라는 생각을 하며 시선이 머물렀고 점점 가까워지면서 왜 그렇게 걷는지를 알게 되었다.
그 개는 앞다리 하나가 없었다. 앞다리로 걸을 차례에는 균형을 맞춰주는 반대쪽다리가 없다 보니 점프하듯 몸을 움직여 앞다리를 옮겼다.
순간 내 동공은 커졌고, 장애가 있는 개는 처음 본다는 생각에 머물렀다. 장애를 갖고 태어나든 사고로 장애가 생길 수도 있는 일일 텐데 장애를 갖고 있는 개를 처음 본다는 것이 이상했다. ‘왜 못 봤을까? 이렇게 개를 키우는 사람들이 많은데 왜 처음 본 걸까?’ 이 생각에 머물자 상품가치가 없으니 장애를 갖고 태어나는 개들은 살 수 없는 것이 아닌가란 생각이 들었다. 마찬가지로 사고로 장애가 생기게 되어도..
자연의 세계에선 어찌 보면 당연하긴 하다. 약하게 태어나면 살아날 가능성은 적어진다. 포식자의 먹이가 되거나 무리를 따라가지 못해 도태되어 짧은 생을 살게 될 것이다. 사람도 몇십 년 전엔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의료기술뿐만 아니라 장애를 갖은 사람들을 바라보는 시선 또한 곱지 않아 밖에 나오는 것이 편하지 않았을 것이다.
시대가 많이 변했고, 요즘은 애완이라는 말 대신에 반려라는 말을 쓰고, 한집 걸러 한집에 개나 고양이를 키우는 사람들을 보듯 많은 반려견과 반려묘들이 있는데 장애를 갖은 반려견과묘가 없다는 사실에 불편한 마음이 들었다.
그리고 그 장애견을 키우고 있던 견주가 대단하게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