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은 하늘아래 있으니 함께 있는 것
우리 집은 딸만 셋이다. 그렇다 보니 온천이나 찜질방을 가게 되면 아빠는 혼자 들어가시고 엄마와 딸 셋은 모두 제잘 거리며 여탕으로 향한다. 시간도 한참 걸리기에 아빠는 매번 기다리시는 게 일이었다. 시간을 정하고 들어가지만 늦는 경우가 대부분이고, 준비하다 보면 항상 정해놓은 시간보다 한참 늦곤 했다. 예전엔 아빠가 혼자 들어가시는 걸 보면서 심심하시겠다는 생각을 종종 했던 거 같다. 요즘도 그랬다. 내가 한국에 들어가면 엄마아빠네 집에 모두 모이게 되는데, 그때도 주방식탁에 앉아서 딸 셋이 수다를 시작하면 엄마는 언제 오셨는지 항상 우리와 함께 얘기를 하고 있었지만, 아빠는 마루에서 혼자 티브이를 보고계시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다가 물 마시러 잠시 주방에 오셨다 "뭐가 그렇게 할 말이 많냐?"라고 한마디 하시며 지나가시곤 했다. 그럴 때도 아빠는 심심하시겠다는 생각을 했었다. 그래서 아빠 옆에 일부러 앉아서 티브이를 같이 보며 대화를 하기도 했다. 그렇게 둘이 대화를 할 때는 아빠와의 대화를 이어갈 수 있지만, 다 같이 여자들끼리 수다를 떨 때는 아빠는 우리가 말하는 주제를 재미있어하지도 않으셨고, 끼려고 하시지도 않으셨다.
그에 반에 나는 아들이 한 명 있다. 아들이 어릴 땐 목욕탕이던 화장실이던 내가 데리고 들어가곤 했지만, 점점 크면서 주말에 다 같이 나가면 아들은 점점 남편차지가 된다. 화장실을 나와갈 수는 없고, 혼자 갔다 오라고 할 나이도 아직 아니기에 화장실을 자주 가는 아들을 따라 남편이 부지런히 움직이게 된다. 작년에 한국에 방문했을 때 나와 남편은 목욕탕을 정말 자주 갔다. 미국에서는 목욕탕을 갈 수가 없으니, 한국만 들어가면 우리는 목욕탕 혹은 찜질방을 정말 시도 때도 없이 가곤 한다. 그럴 때마다 우리는 입구에서 시간을 정하고 남편은 아들과 둘이, 나는 혼자 여탕으로 들어간다. 만약 딸이 있어서 나와 함께 들어갔다면 그것도 괜찮았을 것 같지만, 사실 혼자 들어가는 게 그렇게 심심하거나 외롭진 않는 일이구나를 요즘 느낀다. 함께하는 사람이 있는 것도 좋겠지만, 없다고 해서 더 아쉽지도 않다. 사실 아무렇지도 않다. 어쩔 땐 느긋하게 탕에 들어가고 사우나를 들어가며 원하는 걸 다 할 수 있으니 더 편하기도 하다. 아빠도 이러셨겠구나 싶은 생각이 든다.
예전에 보던 사랑드라마의 대사가 떠오른다. 같은 하늘아래 있으니 함께 있는 것이라는 대사가 그저 오글거리는 사랑의 대화라고만 생각했는데, 아빠와 나도 그 대사와 같다는 걸 알 수 있다. 일시적인 시간 동안 잠시 떨어지는 것이 사람을 심심하거나 외롭게 만들지 않는다는 것을 말이다. 꼭 다 같이 모여서 한 곳에 모여 있고, 대화를 하고, 그 대화에 껴있어야만 가족인 것이 유지되는 게 아닌 것처럼, 우리는 그저 함께 존재한다는 것만으로 커다란 위안과 힘을 얻는다. 나는 지금 미국에 다른 내 가족들은 한국에 있어서 자주 만나기도 힘든 상황이지만, 나는 그들이 있어서 언제나 힘이 난다. 물론 간간히 심심함과 외로움을 느끼기도 하지만, 그것이 함께하지 않기에 생기는 것은 아닌 것임을 안다. 어쩔 땐 누군가와 함께 있기에 심심하고 외롭기도 하니 말이다. 나의 짧은 생각으로 아빠를 외롭게 내가 만들었던 건 아닌가란 생각이 든다. 내가 그렇듯이 아빠도 우리의 존재가 중요한 것이었을 텐데 물리적인 시간에 대한 생각만 해왔던걸 새삼 깨닫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