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도 나는 알게 모르게 많이 성장했다. 대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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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링크는 나의 글쓰기 여정의 역사적인 첫 시작)
문득 돌이켜보니 글을 쓴 지 어느덧 100일이 지났다. 매일 하루에 한 편씩 글을 쓰고 벌써 110편의 글이 모였으니 거의 4개월의 시간이 흐른 셈이다.
다른 문화권에도 100일과 관련된 이야기가 있는지 모르겠지만 우리나라는 유독 100일이라는 숫자를 좋아하는 것 같다. 곰이 마늘과 쑥을 먹고 사람이 되었다는 단군 신화도 100일이다. 연인들은 사귄 지 100일을 기념한다. 아기가 태어나면 잔병치레 없이 무사히 살았다는 걸 100일 잔치로 축하해 준다. 수능 100일 전이면 전국의 수험생 어머니들은 절이나 교회에 기도를 다닌다. 100일 다이어트 등 각종 챌린지에서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글을 쓰는 100일 동안 나에겐 어떤 변화가 있었나 조용히 지난날을 거슬러봤다. 크게 변한 건 없다. 남편은 여전히 연락 두절이고 이혼을 하겠다는 사람이 정작 이혼을 해결할 능력은 전혀 없어 보인다. 나는 이제 내가 살기 위해 이혼을 준비하는 마음가짐으로 변하고 있다. 마음 깊숙한 곳에선 평생 가져본 적 없는 다채로운 감정의 변화를 매일 실시간으로 느끼고 있다.
남편 덕분에 뜻하지 않게 일종의 남혐이 생겼다. 내가 대학 생활을 할 때는 된장녀 열풍이 불었고, 사회생활을 시작할 때쯤엔 다들 맘충을 욕했다. 약자 혐오가 나날이 심해졌다. 이제는 한남충, 김치녀 같은 혐오가 사회 전반적으로 만연하다. 젠더 갈등이 최고점을 찍은 것 같아서 가끔은 사회가 많이 병들었다는 사실이 안타깝기만 하다.
이유 없이 누군가를 증오하고 혐오하는 마음은 사실 자기 내면의 상처에서 비롯된 거라고 생각했다. 자격지심이나 열등감은 상대방을 끌어내리고 혐오 프레임을 씌우면 비교적 쉽게 해소되는 것처럼 보였다. 여혐이나 남혐을 하는 사람들에게도 자신을 낳아준 엄마 아빠가 있을 텐데 왜 자기 뿌리를 부정하나 궁금했다. 물론 세상엔 부모 같지 않은 부모도 있겠지만 혐오한다고 그 상황이 더 나아지는 건 아닐 텐데. 그런 생각을 해왔던 내게 갑자기 찾아온 혐오라는 감정은 자괴감을 느끼게 만들었다. 이런 기분이 몹시 거북했다. 내 모습이 언짢았다.
세상에 남자 잘못 만나서 인생 망친 여자는 있어도 남자 안 만나서 인생 망친 여자는 없다. 이런 마음이 올라오니 내게 일어난 일을 침착하게 객관화하기가 어려웠다. 애초에 남자 따위 안 만났으면 남편이랑 결혼할 일도 없었을 텐데. 결혼 따위 안 했으면 이렇게 힘들 일도 없었을 텐데. 사기 결혼 당할 일도 없었을 텐데. 그렇게 조금씩 내 안의 균열이 증오와 혐오를 불러왔다. 미움에도 애정이 필요하다는 글을 쓴 적이 있다. 어쨌든 증오와 혐오도 자기 에너지를 쏟아내는 일이기 때문에 더 쉽게 피곤해지고 예민해졌다. 옛날에 '좋은 게 좋은 거지~!' 하던 내 모습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글을 한 번도 써본 적 없던 내게 이제 글쓰기 근육이 조금 붙어서 하루에 하나씩 브런치에 글 쓰는 일은 그다지 어렵지 않게 됐다. 글을 쓴다는 것은 마음을 쓰는 것과 비슷한 일이다. 나는 바이올린 조율을 하듯 내 마음을 천천히 튜닝하면서 그날그날의 기분을 들여다보고 그대로 품어준다. 판단하지도 않고 평가하지도 않는다. 미친년의 내 모습도 나고 부처님 같이 열반의 경지에 오른 것 같은 나도 나니깐.
요즘 내 안에는 괴물이 살고 있다. 괴물이랑 결혼해서 나도 괴물이 되어버린 것처럼 차라리 남편이 조용히 죽어버려서 사별하는 게 내게는 더 쉬운 이별이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가 죽어도 눈물 한 방울 흘리지 않을 테다. 나는 온전히 나만을 위해 울 거야. 눈물도 아까워. 그런 생각이 들 만큼 내 마음이 많이 다쳤다고 생각하니 또 한 번 눈물이 고인다. 고인 물은 쉬이 썩는다는데 그래서 내 마음이 봐주기 꼴사나울 정도로 못나진 건가.
그래도 계속 쓴다. 이렇게 못난 내 모습도 내가 사랑해주지 않으면 누가 사랑해 주겠어. 듣기 싫은 소리도 쓰기 싫은 말도 내가 숨을 불어넣어 주면 무엇이든지 시가 될 수 있다고 믿는다. 나는 내가 시 같은 사람은 아니지만 적어도 시를 쓰는 사람의 마음으로 뭔가를 쓸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겼다.
지옥 같은 한 해가 제발 끝나게 해달라고 빌면서 연말부터 글을 쓰기 시작했다. 작년 크리스마스에는 눈이 펑펑 내렸고 나는 썰렁한 집에서 창밖을 보며 울었다. 손잡고 걸어가는 연인들과 눈사람을 만드는 아이들 사이에 내 자리는 없는 것처럼 보였다. 그리고 남편은 나라는 존재 자체를 잊은 듯 내 생일에 지 친구들과 부산 여행을 갔다. 남편 생일마다 꼬박꼬박 서프라이즈 파티를 열어주고 그를 울렸던 나였는데 내 생일에 남편은 없었다. 대신 친구들에게 은연주라는 새 이름이 써진 생일 케이크를 받았다. 그래도 이 상황을 버틸 수 있게 해주는 친구들과 가족들 덕분에 생일이 왜 생일인지 다시 한번 깨달았다.
겨울이 눈 깜짝할 새 지나고 봄이 왔다. 봄에 결혼한 나는 이제 봄이 너무나도 싫다. 계절을 건너뛰면 좋겠지만 삶은 잔혹하고 현실은 냉정하다. 회사는 여전히 바쁘고 나는 아직도 야근을 밥먹듯이 한다. 성과로 증명하지 않으면 밥줄이 위태로운 살벌한 회사를 다니느라 안 그래도 우울증에 성격이 많이 변한 내가 조금 더 건조해졌다. 말린 건어물처럼 퍼석퍼석한 마음을 지니고 하루하루 살아내고 있다. 일하고 퇴근길에 쫓기든 글 쓰는 일상의 반복. 체력이 많이 떨어졌고 면역력도 당연히 깨졌다. 매주 몸의 부위별로 온갖 데가 아프다. 몸에 장기가 이렇게 많았나 싶을 만큼 새로운 통증이 날 찾아온다. 그렇지만 그건 내가 아직 살아있다는 증거. 내 몸은 살고 싶다고 나 여기 있다고 열심히 존재감을 뽐내는 중이다. 그리고 내 옆에는 나를 호기심 어린 눈으로 쳐다보는 사랑스러운 강아지가 생겼고, 이러니 저러니 해도 나는 나밖에 없다는 결연한 의지를 다질 수밖에.
100일 동안 기적 같은 건 하나도 일어나지 않았지만 그래도 천천히 이 어두운 터널을 빠져나가고 있는 중이다. 예전의 나는 사라지지 않았다. 나는 잠시 길을 잃은 것뿐이고 이 터널을 빠져나오면 더 밝게 빛나고 멋있어질게 분명하다. 글을 쓰는 친구가 내게 말해줬다. 모든 주인공에게는 클라이맥스가 있다고. 나는 지금 그 장면을 걷는 중이라고. 내 이야기의 끝은 행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