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모두 마음속에 섬 하나쯤은 품고 있잖아요.
그만하여라, 아난다여
슬퍼하지 마라, 탄식하지 말라
사랑스럽고 마음에 드는 모든 것과는
헤어지기 마련이고
없어지고 달라지기 마련이고
그처럼 말하지 않았던가
아난다여
태어났고 존재했고 형성된 것은
모두 부서지기 마련인 법이거늘
그런 것을 두고 절대로 부서지지 말라고 한다면
그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아난다여
그대들은 자신을 섬으로 삼고
자신을 의지하여 머물고
남을 의지하여 머물지 말라
진리를 섬으로 삼고 전리에 의지하여 머물고
다른 것에 의지하여 머물지 말라
-붓다의 마지막 유언 중-
장 그르니에 선집 '섬'을 굉장히 좋아한다. 누가 내게 책을 추천해 달라고 하면 나는 그 어떤 책도 추천하지 못한다. 하지만 제일 좋아하는 책을 물어보면 항상 장 그르니에의 섬과 헨리 데이비드 소로의 월든 중에서 우열을 가리지 못했다. 그래도 끝끝내 고심하다가 장 그르니에의 섬을 더 자주 꼽았던 것 같다.
연애 시절 우리는 섬 여행을 많이 다녔다. 바다를 좋아하는 남편과 산을 좋아하는 내게 섬은 완전한 여행지였다. 섬은 곧 바다요 산이었다. 배 타고 섬에 들어가면 낮에는 산을 타고 밤에는 새까만 바다에 낚싯대를 던졌다. 아마도 남해에 둥둥 떠있는 유명한 섬들은 거의 다 방문한 것 같다. 수평선 너머로 조그맣게 사라질랑 말랑한 육지를 뒤로 바라보면 왠지 자유로워지는 기분이었다.
우리나라에는 섬이 많아서 참 다행이었다. 지칠 때마다 잠깐씩 도망칠 숨구멍을 여러 개 가지고 있는 것 같았다. 지도를 펼치면 이름도 처음 들어보는 작은 섬들이 그렇게나 많았다. 우리 살아있는 동안에 한국에 있는 섬 다 가보는 것도 미션으로 해도 좋겠다. 그치? 심심하면 지도를 펼쳐서 다음엔 어디 갈까 궁리하던 모험가 커플이었다.
우도는 제주도에만 있는 섬이 아니다. 통영에도 연화도 옆에 작게 붙어있는 우도라는 섬이 있다. 남편과 통영 바다에서 낚시를 하고 돌아가는 길에 풍랑주의보가 떠서 급하게 우도에 잠시 내리게 되었다. 풍랑주의보가 해제될 때까지 우도에서 두 시간 정도의 자유 시간이 갑자기 생겼다. 동화 속 마을처럼 낮은 집들이 햇살을 따라 옹기종기 자리 잡고 있었다. 같은 나라에 같은 말을 쓰는 곳인데도 마치 다른 세상에 간 기분이었다.
오빠 우리 여기 들어와서 숨어 살다 나와도 좋겠다. 우도 진짜 예쁘다. 근데 여긴 너무 멀고 작아서 아무래도 무리겠지?
대신 남편은 거제도에 살고 싶어 했다. 혼자 낚시를 다녀온 어느 날 거제도에서 어떤 아저씨를 알게 되었다고, 그 사람도 외지인인데 정착했다며 거제도에 외지인들이 모여서 살기 괜찮은 마을을 알게 됐다고 신이 나서 말했다. 거제도에 KTX도 생긴대. 진짜 거제도는 가서 살아도 좋을 것 같아. 부산도 나름 가깝고. 우리 10년 안에 거제도 가서 살까? 남편은 꿈에 부풀어서 한국에 돌아오면 거제도에 집 짓고 살자고 했다. 너 요가하는 방도 만들고. 나는 바비큐 할 수 있게 엄청 커다란 부엌 갖고 싶어. 나보다 요리에 더 진심인 남편이었다. 외국에서 몇 년 일하면 한국보다 연봉도 더 많이 주고 거주비도 지원이 되니깐 집값도 굳어서 그만큼 돈을 더 많이 모을 수 있다는 게 그의 계획이었다.
남편이 그토록 섬을 그토록 좋아했던 이유는 바다 위에 홀로 떠있는 외딴섬이 아마 자신 같다고 느껴서 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부처님의 유언을 읽고 머리에 종이 울린 것 같았다. '그대들은 자신을 섬으로 삼고 자신을 의지하여 머물고.' 그러고 보니 내게도 섬이 있다. 우리 모두의 마음속에 어떤 형태로든 섬은 있기 마련이다. 그 섬을 꽃으로 가득 채우고 언제든지 들어가서 쉴 수 있는 마음속 정원으로 가꾸는 건 나에게 달렸다.
나중에 시간이 지나면 남편과 갔던 수많은 섬들을 다시 방문해도 눈물 흘리지 않았으면 좋겠다. 바다 위에 반짝이는 윤슬이 지금 흘린 눈물을 대신해 주기를. 매물도에서 바라본 붉게 타오르던 한여름의 노을, 두 손 꼭 잡고 새해를 맞이한 욕지도, 가을에 코스모스와 국화가 그렇게 예쁘다는 두미도, 생일에는 꼭 생일도에 가서 미역국을 먹자던 약속까지. 내 마음속에 묻어둔 그 섬들은 아직 갈피를 잡지 못하고 둥둥 떠다니고 있지만 언젠가 다시 온전히 제위치에서 섬으로 마주할 수 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