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지금 포옹이 필요하다. 많이 지쳤다.
남편은 보통 말이 별로 없는 편이었다. 솔직히 도시에서는 영 재미없는 남자였다. 우리가 만약 일반적인 소개팅 자리에서 만났다면 나는 그에게 매력을 느끼지 못했을 것이다. 우리가 처음 만난 자리는 동해의 어느 이름 없는 바닷가였다. 지도에도 나오지 않는 곳이었다. 차가운 겨울바람 속에 따뜻한 봄햇살이 조용히 숨어있던 무렵이었다. 비수기라 야영객도 없었고 마을 이장님이 성수기에만 열어놓는다는 공중 화장실도 잠겨있었다. 있는 거라곤 철썩- 철썩- 백사장을 살살 쓰다듬는 파도 소리와 따아악-딱! 하고 이따금씩 모닥불 장작 터지는 소리뿐이었다. 처음 만난 사이라 친하지도 않았고 아는 것도 없어서 더욱 할 말도 없었다. 파도가 우리 대신 떠들어줬다.
우리의 공통점은 자연을 좋아한다는 것이었다. 대화를 하지 않고도 편하게 물멍 불멍 산멍 온갖 멍을 다 때렸다. 가끔 낚싯대 끝에 걸린 게 물고기가 아니라 정적일지 모르겠을 정도로 별 말을 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 대화 사이의 공백이 전혀 어색하지 않았다. 우리는 그저 자연이 들려주는 음악을 함께 감상할 뿐이었다. 3년 동안 둘이서 텐트를 하도 많이 쳐서 서로의 역할 분담이 군대처럼 나눠져 있었다. 10분이면 커다란 텐트를 뚝딱 쳐서 아늑한 집을 만들었다. 나는 정말 집 없이 이렇게 살아도 되겠다고 생각했다.
캠핑을 가면 종종 옆 텐트 이웃들과 자연스럽게 대화를 나눌 기회가 있었는데 남편은 거기서도 항상 대화를 잘 이끌어나갔다. 모르는 사람들 앞에서 스스럼없었고 자신감 넘쳤다. 나이 들고 은퇴해서 드디어 캠핑 다니며 둘이서 오붓한 시간을 보내는 중이라는 노부부도 만났고, 서울을 떠나 전남 어디 시골 마을에 정착했다는 번역가와 개발자 부부도 만났다. 비슷한 취향을 공유하는 사람들은 어디서나 서로를 알아봤다. 그렇게 수많은 우리를 만났다. 그들은 우리의 미래였다. 나는 남편과 그렇게 늙어갈 줄 알았다.
결혼을 준비하면서 엄마는 사위에게 시계를 사주고 싶다고 했다. 외할머니가 아빠에게 그렇게 했듯이 엄마도 사위한테 롤렉스 사주는 게 오랜 로망이었다. 하기사 옛날부터 나한테 시집 좀 가라고 애원하던 엄마는 네가 결혼만 하면 사위한테 롤렉스 사주겠다고 노래를 불렀고, 나는 나 사주겠다는 것도 아닌데 내가 뭣하러 결혼하냐고 말대꾸했었다. "요즘 롤렉스는 구하는 것도 힘들대 엄마. 백화점 오픈런을 하든지 업자한테 웃돈 얹어서 산다는데 나는 그렇게 유난 떨면서 사기 싫어." 엄마도 인터넷을 찾아보고 어디서 듣고 왔는지 어느 날 갑자기 롤렉스 대신 예거나 브레게는 저쩌고 내게 이것저것을 물었다. 기껏해야 까르띠에, 롤렉스밖에 모르는 나도 뭐 아는 게 없어서 대답할 수 없었다.
남편은 그래도 남자니깐 시계에 대해서 나보다는 잘 알고 있었지만 본인이 시계에 전혀 흥미가 없었다. 시계 대신 차라리 카니발이 필요하다고 했다. "연주야. 우리 캠핑 다니려면 카니발이 편해 확실히. 짐도 많이 들어가고." 나도 당연히 캠핑을 좋아하니깐 밴에 대한 로망은 있었다. 하지만 엄마한테 "엄마, 오빠가 예물 시계는 싫다고 차 사달래."라고 차마 말할 수 없어서 고민하고 있었는데 남편은 오히려 그걸 당당하고 솔직하게 말했다. "어머님 저희 나중에 한국 돌아오면 차라리 차가 더 실용적입니다. 시계는 정말 필요 없습니다." 엄마는 알았다고 그럼 그때 차를 바꿔주겠노라 약속했다. 하지만 아빠도 내심 계속 마음이 찝찝했는지 내게 한 마디 보탰다. "야 인마, 너네 차는 너네가 알아서 타고 다니는 거고. 예물 시계는 평생 남는 건데. 아빠도 장모님이 해주신 예물 시계 아직도 간직하고 있어. 예물은 그래서 예물인 거야. 차는 타고 다니다가 중고로 팔아버리든지 폐차해 버리잖아. 그게 뭐냐? 예물은 부모가 평생 한 번 선물해 주는 건데 쯧."
나는 또다시 남편과 부모님의 중간에서 난처해졌다. 남편을 설득하는 게 더 힘들어서 결국 부모님을 설득했고, 일단 시계도 차도 보류한 채 나름 평화롭게 결혼을 했다. 어차피 우리는 신혼을 해외에서 보내기 때문에 당장 차를 바꿀 필요는 없었다. 생각해 보면 나는 항상 중재자 역할을 하느라 열심이었다. 결혼 준비를 하면서 남편의 원가족 문제에서조차 내가 시댁과 남편 사이에서 항상 양쪽을 설득하느라 고생했다. 우리 집에서는 남의 집 아들이라 당연히 사고방식도 가치관도 다른 거라고 맨날 엄마 아빠에게 양해를 구했다.
부모님들은 어른들이니깐, 살아온 세월이 있으니깐 어른들의 입장은 충분히 이해가 됐다. 오히려 엄마 아빠와 시부모님도 '요즘 애들이 다 그렇지 뭐'하고 좋게 넘어가주신 게 한 두 개가 아니었다. 객관적으로 다들 이해심 넓고 좋은 분들이셨다. 그러나 남편은 달랐다. 고집이 세도 보통 고집이 아니었다. 논리적인 것 같으면서도 자기 기준에 어긋나면 절대 뜻을 굽히지 않았다. 나는 밥 거부하는 애를 키우는 엄마처럼 어르고 달래고 내버려 두고 포기하고 정말 별의별 짓을 다 했다.
그러다가 항상 남편이 유일하게 온순해지는 순간이 있었는데 바로 자연 속에 있을 때였다. 같은 말을 해도 파도 소리, 풀벌레 소리를 곁들인 상태에서 하면 조금 더 부드럽게 대화가 됐다. 그래서 우리는 거의 매주 캠핑을 가고 차분한 상태에서 이야기를 많이 나눴다. 남편은 완벽히 자연인에 어울리는 사람이었다. 내가 우스갯소리로 "오빠는 나 안 만났으면 나중에 혼자 늙어서 숲 속에 살다가 ‘나는 자연인이다’에 나올 것 같아." 하고 말하면 그는 진심으로 공감하며 자기는 그렇게 사는 것도 좋고 그 사람들이 부럽다고 했다.
환경 보호에 앞장서고 겉은 무뚝뚝하지만 속은 따뜻하고 멋있는 사람인 줄 알았다. 3년간 같은 취향을 공유하고 미래를 그리며 사랑을 나눴지만 모든 게 가짜였다. 그는 자아가 일그러진 괴물이었다.
오늘 퇴근하고 병원 진료가 있었는데 선생님께서 남편이 대학병원 진료를 가면 거기서 나에 대해 뭐라고 이야기할지 궁금하지 않냐고 물어보셨다. "아뇨. 하나도 안 궁금해요. 여전히 지만 억울하겠죠. 계속 제가 밉고요. 치료는 왜 받는지 모르겠어요. 어차피 남편의 세계는 안 깨질 텐데. 가면 쓰고 연기하는데 굳이 병원은 뭘 위해 가나 모르겠어요."
정말로 병원에서 남편의 진료 과정은 전혀 궁금하지 않다. 대학 병원 교수님들이 남편을 어떻게 바라보는지, 치료에 진전은 있는지 호기심으로 조금 궁금하긴 해도. 하지만 사실 내가 진짜 궁금한 건 그가 자연 속에 혼자 있을 때 떠오르는 생각들이다. 남편은 자연에 있으면 비로소 편안해진다고 했었다. 남편의 정신세계에도 분명 실체가 있을 것이다. 자연에서는 그가 꽁꽁 감춰놓고 숨겨왔던 보따리들이 조금은 느슨해지는 걸까. 오늘따라 의자에 앉아 풀벌레 소리를 들으며 상념에 잠겨있던 그의 뒷모습이 생각난다.
나도 오늘은 자연의 품이 그립다. 지친 나를 감싸주고 안아주는 곳으로 가고 싶다. 커다란 포옹이 필요하다. 서울은 너무 삭막하고 지옥 같다.
P.S. 부모님이 사위에게 예물 시계를 사주고 싶어 했던 그 마음은 남편 자신을 스트레스받고 괴롭게 만들었다는 이유로 이혼 사유가 되어버렸다. 미안하지만 그는 아무리 병원을 다녀도 치료가 안 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