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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아지의 날'이 대체 뭐길래!

오늘만 날이 아니라 매일매일 강아지의 날이길 바라.

by 은연주

3월 23일, 어제는 강아지의 날이었다. 세상에 뭐 그런 날도 다 있담. 남편의 강아지, 그러니깐 내 마음속 영원한 첫째를 키울 때는 몰랐던 날인데 이번에 처음 알게 되었다. 이제 내 유튜브 알고리즘은 온통 강아지 관련된 영상들 뿐이고 광고도 항상 강아지 용품으로 가득 차있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며칠 전부터 알게 된 것 같다.


대체 강아지의 날이 뭐길래 이건 누가 만든 건지, 정말 실재하는 날인 건지 궁금해서 구글링을 해봤다. 미국의 Colleen Paige라는 작가 겸 반려동물 생활 전문가의 제안으로 2006년에 만들어진 날로 매년 3월 23일이라고 한다. 재미있게도 'National Puppy Day 강아지의 날'은 3월 23일인데, 'National Dog Day 개의 날'이 8월 26일에 또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반려견에 대한 관심과 인식 개선을 촉구하는 의미와 유기견을 보호하고 입양을 권장하는 취지라서 날짜는 랜덤 하게 정해졌다고.




마침 어제는 내 강아지의 예방 접종 날이라서 나도 아침부터 바빴다. 강아지 날이라고 내가 해줄 수 있는 건 그저 아이가 좋아하는 걸 평소보다 조금 더 해주는 것뿐이었다. 산책이나 장난감으로 놀아주기 등 함께할 수 있는 활동을 더 많이 해주는 것. 내 강아지는 다른 강아지들보다 사람을 유난히 더 좋아하고 교감도 잘 되는 것 같다. 산책을 할 때도 혼자 앞으로 줄을 당기며 뛰쳐나가지 않는다. 가르친 적도 없는데 항상 내 보폭에 발을 맞추며 내 눈을 바라보고 걷는다. 나를 바라보는 아이의 눈에는 온 우주의 사랑이 담겨있다. 어디선가 강아지 성격은 자기 주인을 닮는다는 이야기를 꽤 여러 번 들었다. 자식은 부모의 거울이라는 말처럼 강아지도 보호자의 패턴을 그대로 보고 따라 하며 학습한다는 말이었다.


그래서일까. 남편의 강아지는 마치 그를 닮은 듯 사회성이 전혀 없었다. 공격성이 심했다. 아무리 유튜브로 공부하며 사회화 훈련과 산책 교육을 시켜봐도 다른 강아지들에게 입질까지 해서 크게 시비 붙을 뻔한 적도 있다. "우리 애는 안 물어요, 원래 집에선 착해요." 이딴 무식한 헛소리를 하는 대신 최대한 다른 개들을 마주치지 않기 위해 한밤중 몰래 산책하는 수밖에 없었다. 같이 지낸 시간만큼 남편의 강아지가 여전히 보고 싶다. 아직도 녀석 생각만 하면 눈물부터 난다. 하지만 상황이 이렇게 되니 남편의 강아지가 남편의 성격을 그대로 빼닮았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남편의 공격성과 사회성 없는 모습이 그의 강아지에게도 영향을 끼쳤을 것 같다.




몇 주 전에 시어머니께서 남편 몰래 남편의 강아지를 데리고 내 집으로 오셨다. 내가 녀석을 무척 그리워하고 있는 걸 아셔서 아이를 보여주겠다고 하셨다. 어머니는 나 먹일 국이며 반찬까지 바리바리 싸 오셨다. 어머니가 오시기 전에 혹시라도 걔가 내 강아지에게 공격성을 보일까 봐 걱정된다고 미리 말씀드렸다. 어머니는 이제 공격성 없어졌다고, 사회성 많이 좋아졌다고 하셨다.


내가 귀국한 뒤에 남편이 출근하면 혼자 남은 강아지를 케어할 수 없으니 강아지 유치원을 보냈다고 했다. 강아지들의 언어도 사람들의 언어처럼 나라마다 다를까. 처음에는 말 안 통하는 외국 개들 사이에서 쭈구리처럼 있다가 시간 지나고는 친구들도 사귀고 재밌게 뛰어놀았다고 한다. 사회성 훈련이 됐다고 하셨다. 여전히 조마조마한 마음이었지만 일단은 내가 주도권은 확실히 가지고 있으니, 정 안 되면 둘을 분리시킬 생각이었다.


시어머니의 말씀이 무색해질 정도로 유치원 다닌 뒤 괜찮아졌다는 남편의 강아지는 집에 오자마자 내 강아지를 보고 눈깔이 뒤집혔다. 현관에서부터 발작 버튼이 눌렸다. 아무것도 모르는 나의 어린 강아지는 이빨을 드러내며 자기에게 사납게 달려드려는 남편의 강아지를 보고도 그저 좋다고 꼬리를 흔들며 다가가려고 했다. 일단 내 강아지를 안 보이는 곳으로 분리시키고 남편의 강아지부터 진정시켰다. 그 짧은 순간에 얼마나 스트레스받았고 화가 났으면 남편의 아이는 사료를 전부 토했다. 내가 남편과 같이 지내는 3년 동안 아이가 토하는 건 한 번도 본 적 없었다. 슬개골 수술을 한 날에도 링거 바늘을 스스로 뽑아내고 화장실 가겠다고 계단을 뛰어올라온 기력 넘치는 애였다. 토를 하자마자 나를 바라보며 언제 그랬냐는 듯 꼬리 흔드는 남편의 강아지가 안쓰럽고 짠했지만 순간 내 마음속 어딘가에 벽이 생겼다. '너는 네 아빠를 똑 닮았구나.' 강아지 잘못은 하나도 없는데 그런 생각이 드는 나 자신이 놀라웠다.




아이의 예방 접종이 끝난 뒤에는 짧은 산책을 네 번이나 나갔다. 개인기 훈련도 하고 처음으로 간식도 줬다. 입이 짧아질까 봐 성견이 될 때까지는 절대 간식을 주지 않으려고 결심했는데, 그래 오늘 강아지 날이라니깐 특별히 선심 쓰듯 간식을 조금 줬다. 강아지의 날도 기념일인데 왠지 오늘을 기록하고 싶다는 생각도 들었다. 우리 둘의 가족사진을 찍기로 했다. 거울 속에 비친 내 얼굴은 정말 볼품없는 모습이었다. 피부는 푸석하고 머리도 산발이었다. 그러고 보니 거의 1년 동안 미용실에 한 번도 가지 못했다. 하루하루 숨 쉬는 게 버거워서 미용실이고 피부과고 나를 가꿀 여유가 전혀 없었다.


당일 예약이 되는 동네 미용실을 급하게 예약하고 머리를 자르러 갔다. 너저분한 끝만 조금 다듬으려고 했지만, 마치 드라마 속 여주인공처럼 "확 잘라주세요."라고 단호하게 말해버렸다. 허리까지 오던 긴 생머리가 어깨 기장의 중단발이 되는 결심은 1초도 걸리지 않았다. 미용사는 내게 무슨 심경의 변화가 있냐고 무심한 듯 넌지시 물어봤다.


"이제 봄이라서 새 출발하는 심정으로 확 자르시나 봐요~?"

"아뇨, 오늘 강아지 날이래요. 그냥 머리 자르고 나서 강아지랑 같이 사진 찍으려고요."


눈에 띄게 짧아진 단발머리를 하고 강아지와 즉석 사진을 찍었다. '강아지의 날'은 별 게 아니라 그저 반려동물이 얼마나 사랑스러운 존재인지, 나를 위로해 주고 성장시켜 주는 영혼인지 다시 한번 생각해 보는 날이었다. 펫 용품 브랜드는 앞다투어 강아지의 날 기념 할인 행사를 열었지만 그런 건 중요하지 않다. 어제 하루만 강아지의 날이 아니라 매일매일 강아지 날이어야 한다. 세상의 모든 강아지에게 공포와 두려움이라는 감정이 없기를 바란다. 우리는 강아지를 통해 서로 더불어 사는 방법을 배워야 한다. 남편의 강아지도 어제 부디 행복한 하루를 보냈기를.




이 세상의 모든 반려동물이 평온한 매일매일을 보내기를 간절히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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