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힘들면 잠깐 한국을 버려도 돼. 떠나고 싶어.
요즘 틈만 나면 강아지를 데리고 이민 가기 쉬운 나라가 어딘지 찾아본다. 이민을 결코 우습게 보고 덤비는 것이 아니다. 남의 나라에서 이방인으로 사는 게 얼마나 뼈저리게 외롭고 서러운지 알고 있다. 남편을 따라간 그곳에서 만약 그 사건이 없었을지라도 타향살이가 절대 쉽지는 않았을 거다. 20대 중반에 해외에서 근무했을 때도 그렇고 대학생 시절 방문학생을 가서도 그런 순간들이 많았다. 지나고 나면 다 추억이라지만 돌이켜보면 가족 품을 떠나 익숙한 것들을 뒤로하고 미지의 세계에 우두커니 혼자 서있는 기분이었다.
이제는 쓰지 않는 옛날 메일 계정을 정리하다가 아빠가 거의 15년 전에 보낸 메일을 발견했다. 나는 그때 유럽으로 방문학생을 떠나는 길이었다. 아빠는 항상 인생의 중요한 시기마다 짧지만 강렬한 글로 내 마음을 흔들었다. 결혼식에 써준 편지는 아직도 나를 울리는데 거의 십수 년간 안 쓰는 메일함에 잠들어있던 아빠의 편지가 나를 오밤중에 또 울렸다.
사랑하는 내 딸.
이 글을 볼 때쯤엔 무사히 도착해 있겠지.
어제 공항 출국장으로 들어서는 네 뒷모습이 사라지는 걸 보면서
아빠는 마음이 많이 흔들렸다.
걱정이 갑자기 밀려오면서, 아니 어느새 다 자라서 이제 아빠로부터 떨어져
홀로 독립해 나가는 네 모습이 한 편 대견하면서도 앞으로 닥칠 험한 세파를 생각하면서.
십수 년 전 네가 초등학교 때 아빠가 파리에 혼자 나가있으면서 사실 아빠도 속으로는 엄청 스트레스가 많았지.
가족과 생이별이라는 상황도 그랬고,
심지어 식당에 들어가서 밥 먹을 때조차 그 상황이 스트레스였는데, 지나고 보면 참 별 거 아닌 거거든.
입장을 바꿔서 생각해 보면 간단하지. 너네 학교에 유학 온 외국 친구들 가운데 어떤 사람이 너에게 쉽게
눈에 띄고 친구가 되기 쉬운지...
네가 먼저 적극적으로 다가가렴. 그러면 주변의 그곳 사람들이 너와의 관계가 훨씬 편하고 쉬워져서
네게 더 많은 관심과 애정을 표현할 테니까.
새로운 친구를 사귀게 되면 항상 네가 그 친구에게 도움이 될 수 있도록 노력을 하고.
먼저 베푸는 삶이 지혜로운 삶이란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네가 앞으로 그곳에서 보낼 1년을 단순히 외국어를 익히기 위한 기간이라고 생각하지 않기를 바란다.
그 시간들은 지난 20여 년 동안 네가 받아들인 것과는 모두 다른 것들이야.
그 다름을 잘 보고 익히고 깨닫는 시간이 되도록 해라.
그들이 사는 방법, 그들이 사회를 작동하는 시스템, 그들이 사유하는 가치관,
그런 것들을 아주 세심하게 관찰해 보아라.
아빠가 파리에서 혼자 있으면서 많은 걸 느끼고 배울 수 있었던 부분도
그곳 사람들이 어떤 가치관을 갖고 사회가 작동하는지, 그들의 삶의 방식 속에서 그 다름을 생각하면서 많은 공부를 할 수 있었단다.
그리고 그런 생각이 바탕이 되어 지금 아빠의 생각이 정리될 수 있었고.
아마도 너 역시 그런 것을 스스로 정리해 본다면
앞으로 네가 무슨 일을 하면서 살 것인지,
무엇을 위해서 살 것인지 등의 문제를 좀 더 쉽게 찾아낼 수 있을 거야.
스무 살의 혈기는 못 이룰 게 없다.
20대 때는 뭐든지 할 수 있다. 생각과 뜻만 바로 세워진다면.
그리고 그때 받아들인 건 앞으로 네 평생의 자양분이 될 거야.
하루하루를 재미있게 살아라.
자주 소식 전하자.
사랑한다 연주야.
몇 해 전 외국으로 일하러 가는 길에 읽은 책이 있다. 장강명 작가의 '한국이 싫어서'라는 소설이었다. 공교롭게도 비행기에서 읽었는데 소설 주인공도 한국을 떠나는 내 또래 여자였다. 나는 한국이 싫어서 떠나는 길은 아니었지만 주인공의 이야기에 어느 정도 공감을 할 수밖에 없었다. 그때는 헬조선이라는 단어가 만연했던 시기였다. 패배주의가 청춘을 짓누르고 있었다. 몹시 착잡한 마음으로 읽었던 소설이었다.
그리고 나는 요즘 다시 그 책을 자주 떠올린다. 남편과의 추억이 덕지덕지 묻어있어서 락스물로 빡빡 지워버리고 싶어도 더 이상 지워지지 않는 이 땅을 버리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이렇게 생활력도 강하고 똑똑하고 영어도 능통한 내가 못할 게 뭐람. 그럼에도 아직 떠나지 못하고 있는 이유를 생각해 보지만 적절한 답을 찾지 못했다. 매일 마음속으로 꽃점을 쳐본다. 떠난다, 남는다, 떠난다, 남는다...
며칠 전 회사 점심시간에 전 직장 동료들을 우연히 마주쳤다. 내가 잘못한 것도 없는데 엄청난 비밀을 들킨 기분이었다. 마치 죄인이 된 것 같았다. 지난 주말에 있었던 친한 친구의 결혼식에 말없이 참석하지 않았다. 전 직장 사람들과 엮여있는 친구 결혼식이었다. 그 자리에서 내 이야기가 나와도 이상할 리 없다. "연주님 한국에 있던데? 회사 다니는 것 같던데? 결혼해서 외국 간 거 아니었어? 나 점심시간에 연주님 봤잖아." 그런 이야기가 오고 갔다고 해서 내가 쫄 이유도 없는데 나는 여전히 움츠려든다.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사회생활을 하기가 쉽지 않다. 자꾸 필요 없는 거짓말을 하는 기분이 들어서 불편하고 괴롭다.
이혼을 한 것도 아니고 안 한 것도 아닌 내 상황이 스스로 이해되지 않는다. 이혼하고 한국으로 돌아왔어요! 쿨하게 말이라도 할 수 있으면 몰라도. 남편이 정신병자예요! 어디 가서 당당하게 자랑할 수도 없는 이야기다. 그럴수록 한국을 잠시 떠나 있는 게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몇 년 뒤에 다시 돌아오더라도. 언제든지 다시 돌아올 수 있는 엄마품처럼 쉽게 돌아올 수 있다는 생각을 가지고 지금은 잠깐 한국을 떠나고 싶다.
몇 번의 짧은 외국 생활에서 외로움보다 더 힘들었던 건 폐쇄적이면서 동시에 편견이 가득했던 한국 교민 사회였다. 업무차 파견을 간 직원한테도 텃세를 부리는 교민들이 있었다. 그리고 나처럼 잠깐 스쳐 지나가는 외부인들 역시 교민 사회를 색안경 끼고 바라봤다. "한국에서 별 볼일 없는 사람들이니깐 오죽하면 자기 나라 버리고 이 멀리까지 나와서 사는 거 아니겠어? 한국에서 다 실패한 사람들이 도망친 거지. 안 봐도 뻔해." 그런 말을 서슴없이 하는 동료들 옆에서 나는 이민자도 아니었지만 혹시나 나중에 내가 한국을 떠난다면 한국인들과는 절대 엮이지 않아야겠다고 조용히 결심했었다.
두 발바닥에 힘 꽉 주고 버텨도 쉽지 않은 게 인생인데 굳이 아슬아슬하게 까치발로 이 땅에 서있는 이유는 과연 남편에 대한 미련인 걸까, 아무 짝에도 쓸모없는 추억에 대한 끝나지 않은 애도인 걸까. 그도 아니면 엄마 아빠 곁을 떠날 수 없는 효녀 심청인 걸까. 나는 내가 나고 자란 나의 뿌리 한국을 사랑한다. 좋아하는 시인의 시집을 읽을 때 행간을 오물오물 씹으며 음미할 만큼 우리말을 아낀다. 한국 사람들끼리 공유하는 문화나 정서가 무척 소중하다. 게다가 나이 들수록 사람들은 익숙한 걸 선호하듯 나 역시 점점 더 한국이 살기 최고라는 생각을 한다.
하지만 한국에서의 삶이 더 이상 그려지지 않는다. 남편과 연애하면서 전국을 돌아다녀서 그렇다는 단지 그런 나약한 이유 때문만이 아니다. 내가 뿌리내리고 있는 곳인데 내 뿌리가, 그러니깐 발바닥 밑동이 썩어 문드러진 기분이다. 썩으면 잘라내야지. 여기에 뿌리내린 내 두 발을 잘라내고 민들레홀씨처럼 날아가고 싶다. 그러면 조금 더 편안해질까. 나를 힘들게 하는 기억도 사람도 없는 곳에 가서 차라리 마음껏 외롭고 싶다. 외로운 게 당연한 곳에서 외로운 건 더 이상 슬픈 일이 아니니깐. 이혼이 정리되면 회사를 그만두고 강아지와 함께 어디로든 떠나야겠다고 결심을 했다. 여기는 너무 답답하다.
새롭게 낯선곳에서 출발하면 괜찮을수도 있겠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