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은연주 Mar 29. 2024

남편은 애초에 날 언제든지 버리고도 남을 놈이었다.

그때 그 말이 그 뜻이었구나.

요즘 명치끝이 콕콕 아프다. 원래 속이 잘 얹히는 체질인데 혹시 이 화병이 어떤 암이라도 된 걸까? 우울증 약 때문에 실비 보험조차 가입 못하는 상태라서 조금이라도 컨디션이 안 좋으면 나쁜 생각부터 든다. 만약 내가 지금 진짜 암에 걸린다면 남편은 이 소식을 알게 됐을 때 어떤 반응을 보일까. 미리 이혼하자고 말해서 다행이라고, 자기한테 귀찮은 일 엮이지 않아도 돼서 잘 됐다고 속으로 좋아할 것이다. 설마 소시오패스도 아닌데 그런 말을 할 리가 있을까. 있다. 매우 있다. 그는 충분히 그러고도 남을 사람이라는 걸 이제야 뒤늦게 알게 되었다.




몇 해 전 남편이 열사병에 걸린 적이 있다. 낮 최고 기온이 무려 35도가 넘는 살인 더위의 여름이었다. 그 정도로 뜨거운 여름날 밖에 나가면 길에 걸어 다니는 사람 하나 없었다. 아스팔트 바닥에서 올라오는 열기가 마치 삼겹살 돌판 위 같았다. 남편은 하필 그날 굳이 야외 활동을 했다. 회사 공장에 공사가 제대로 안된 것을 바로 잡겠다며 갑자기 두 발로 뛰며 현장 점검을 했다. 자기 일도 아닌데 뻘뻘 땀을 흘리며 돌을 나르고 삽질을 했다.


뭐 하나 꽂히면 본인 스스로도 막을 수 없는 사람이었다. 남편은 낮에 무리했는지 몸살기가 있다며 갑자기 퇴근 무렵부터 시름시름 아파했다. 왠지 아마도 열사병일 것 같았다. 회사 근처 병원에 빨리 가라고 해도 말을 듣지 않았다. 기어이 운전대를 잡고 집에 돌아와서 일단 침대에 누웠다고 했다.




나는 퇴근길에 남편 전화를 받았다. 그때의 날씨와 내가 탔던 버스 번호까지 기억난다. 전화 너머 남편의 목소리는 생사를 다투듯 오락가락 제정신이 아닌 목소리였다. 어버버버거렸다. 아픈 사람이 아니라 죽어가는 사람 그 자체였다. 급성 열사병은 뇌에 치명적인 손상을 끼쳐서 죽을 수도 있고 바보가 될 수도 있다는 걸 알고 있었다. 등산을 좋아하고 배낭여행을 즐기는 내게 열사병은 무서운 존재였다.


남편이 너무 걱정되는 나머지 내려야 하는 정류장 전 정거장부터 미리 서서 교통카드를 찍고 집까지 뛰어갈 준비를 했다. 전속력을 다해서 집으로 달렸다. 혀끝에서 쇠맛이 나고 숨에서 가랑가랑 소리가 났다. 너무 급하게 뛰는 바람에 멀쩡한 폐가 긁히는 것 같았다. 내가 먼저 심장마비로 죽을 것처럼 미친 듯이 뛰어갔다.




남편은 35도 한여름에 춥다고 롱패딩을 입더니 겨울 구스이불까지 둘둘 덥고 침대에서 덜덜 떨고 있었다. 눈을 제대로 뜨지도 못했다. 몸이 불덩이같이 뜨거웠다. 자꾸 앞뒤가 안 맞는 헛소리를 해댔다. 너무 무서워서 119를 부르고 싶었지만 남편이 뇌가 익어서 바보가 되는 와중에도 싫다고 고집을 부렸다. 내가 울면서 덜덜 떠는 손으로 운전해서 집 근처 대학병원 응급실까지 달려갔다. 그때는 코로나가 한창 기승이었던 해였다. 코로나 감염 위험 때문에 응급실 모든 환자는 음압격리병실에 있어야 했다.


남편은 내 예상대로 열사병이 맞았다. 이미 뇌가 익어버려서 계속 열이 내리지 않았다. 수액만 열 팩 넘게 맞았다. 약을 쓸 수도 없었다. 열이 내려야 뭐라도 검사할 수 있다고 열이 내릴 때까지 간호사는 계속 수액만 줬다. 남편은 연신 토를 하고 설사를 했다. 경련이 와서 발작을 일으켰다. 나도 보호자로 등록하고 머리부터 신발까지 파란 비닐로 뒤집어쓰고 남편 곁을 지켰다. 새벽 5시가 돼서야 남편은 퇴원할 수 있었다. 내가 퇴근하고 집에 도착한 게 7시였으니 정말 밤새 꼬박 응급실에 있었다.




그러고 나서도 이틀은 집에서 휴가를 내고 쉬었다. 정말 죽을 뻔했다. 우리는 결혼을 앞두고 동거 중이어서 남편이 그렇게 죽기 직전까지 아픈 모습을 보고 너무 무서웠다. 남편이 어느 정도 낫고 나서 왜 내 말을 안 들었냐고 한여름에 야외 활동하는 거 바보 같은 짓이라고 했다. 우리 이제 결혼하면 가족 되는 건데 서로를 위해서 건강도 더 책임감 있게 관리해야 된다고. 오빠 없으면 나는 어떻게 사냐고. 오빠 진짜 뇌 손상 입어서 바보 되고 마비되거나 그러면 어쩌지 그런 무서운 생각도 들었다고. 근데 응급실에서 밤새 간호하면서 다시 한번 내가 오빠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확실히 알았다고 말했다. 나는 오빠가 진짜 바보가 되거나 만약 사고가 나서 장애가 생기거나 큰 병이 걸려도 오빠 옆에 있을 거라고. 그러니깐 나를 생각해서라도 앞으로는 바보 같은 짓 하지 말고 건강을 더 챙기라고. 


진심이었다. 나는 제발 살라고 간절히 의식 없는 남편 옆에서 손을 계속 주무르며 눈물을 뚝뚝 흘렸다. 한여름이라 반팔티, 반바지를 입고 그 위에 파란 김장봉투 같은 비닐을 뒤집어쓰니 습기가 차서 더웠다. 병원은 한여름에도 에어컨을 빵빵하게 켜놓을 수 없었다. 아마도 적정 온도인 26도에서 28도 사이였을 것이다. 남편은 그 온도가 너무 춥다고 덜덜 떨며 게거품을 흘렸고 그 옆에 파란 비닐을 뒤집어쓴 나는 더워서 온몸이 땀으로 젖은 채 우느라 얼굴이 눈물콧물 범벅이었다.




이제 살만해진 남편의 답변은 생각보다 무심했다. "내가 행여나 불구가 되면 내 옆에 있지 마. 니 인생도 있는데 당연히 헤어져야지 굳이 내 옆에 왜 있어."

나는 그렇게 답하는 남편이 나를 배려하는 츤데레처럼 밀어내는 줄로만 알았다.

"무슨 소리야. 아파도 곁에 있어야지. 그게 가족이지. 오빠는 그럼 내가 아프면 옆에 안 있고 헤어질 거야? 에이. 난 오빠가 죽을병 걸려도 사랑하는 걸."


남편은 내 질문에 응이라고 대답하지 않았지만, 아니라고도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뜬금없이 역정을 냈다.


"너는 왜 그렇게 애가 극단적이고 흑백논리야? 왜 말을 그딴 식으로 해? 예시를 왜 그렇게 갖다 붙여? 사람 기분 나쁘게?"


너무 당당하게 화를 내서 순간 정말 내가 극단적인 예시를 들었나 싶었다. 역지사지는 사람이라면 당연히 생각할 수 있어야 하는 부분인데. 남편은 내가 유치하고 극단적인 예시로 자기를 짜증 나게 한다고 화냈다.





시간이 지나고 보니 그때 그 대답은 아마 남편의 진심이었을 것이다. 남편은 내가 조금이라도 아프거나 힘들어졌으면 당연히 가차 없이 나를 버렸을 것이다. 그게 자신의 가치관이고 세계관인데 오히려 내 반응이 익숙하지 않아서 불편했겠지. 모든 자폐 스펙트럼이 그러지 않기를 바라지만, 적절한 사회화 훈련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은 자폐 스펙트럼은 뭐가 잘못된 건지조차 이해하지 못한다. 그래서 상대방이 가장 힘들 때, 결정적인 순간에 뒤통수를 치고 배신을 한다.


물론 자기중심적인 게 디폴트값이라서 그의 기준에서는 그게 왜 상대방에게 뒷통수고 배신인지 입력되지 않을 것이다. 차라리 지금 이렇게 미리 버림받아서 몹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프고 늙고 보잘것 없어지기 전에 알아서 떠나 줘서 고맙다. 아직 젊고 예쁘고 똑똑할 때 버려져서 천만다행이라고 스스로 작은 위로를 건네본다. 짠하지만 그렇게라도 위안을 찾지 않으면 나는 도저히 견딜 수 없다.



이전 20화 쉬어가는 날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