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짜 행복하려면 불행도 껴안아줘야 하나 봐요.
사람들은 모두 진심으로 자신의 행복을 바란다. 하지만 스스로 본인 불행을 바라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생각해 보면 나부터 그랬다. 나와 내가 사랑하는 주변 사람들이 다 행복하기만을 바랐다. 아프지 않고 내내 건강하기를. 항상 즐거운 일만 벌어지기를. 그리고 그동안의 내 인생은 감히 늘 행복했다. 내게 항상 즐거운 일만 있었던 것도 아닌데 돌이켜보면 행복했다고 말할 수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내가 운이 좋아서? 하늘은 내가 빌었던 행복 소원을 다 들어줘서?
일련의 사건은 나를 강제로 지옥 끌고 갔고 내 목구멍에 불행을 마구 쑤셔 넣었다. 굳이 사건이라고 말하는 이유는 실은 사람 같지도 않은 남편 때문이라고 말하지 않으면 조금이라도 내 마음이 덜 불행할까 싶어서. 남편은 지금 자신의 잘못을 온통 내게 투사하고 있다. 그는 나를 만나기 한참 전부터 제정신이 아니었다.
그가 스스로 자신에게 ‘인간다움’이 없음을 본능적으로 느꼈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그는 항상 인간은 불완전하고 정확하지 않아서 절대 믿을 수 없다고 말했다. 기계만이 완벽하고 믿을 수 있다고.
“치. 말이 되냐? 그럼 나도 안 믿어?” 하고 물어보면 너는 꼭 쓸데없이 극단적이라고 왜 이렇게 흑백논리냐며 핀잔을 줬다. 하지만 극단적이고 흑백논리였던 건 그 사람이었다. 그마저도 투사였던 것이다.
자기는 나중에 기술이 발전하면 안구 적출하고 기계 눈을 제일 먼저 낄 거라고 말하는 그를 보면서 흔한 이과 남자의 농담은 다 저런가 보다 싶었다. 나중에 이 사건이 터지고 그의 네이버 아이디를 검색해 보고 솔직히 많이 놀랐다. 아뎁투스 메카니쿠스. 그는 정말로 자신의 불완전함을 알고 있었구나. 오랫동안 자신을 숨기고 연기하느라 많이 고달팠겠다.
한 번 제대로 불행해보니 알겠다. 행복과 불행은 정확히 동전 한 닢 차이라는 것을. 동전 양면이라는 걸 받아들이지 못해서 불행을 떨어트리려고 발버둥 치니깐 숨이 더 막혔다. 모래주머니를 차고 뻘밭을 달려 나가는 기분이었다.
예전에 어느 스님이 그런 말을 하셨다. 가문을 일으켜 세울 아이라는 말이 듣기 좋아 보이지만 준비물은 '망한 집'이라는 것을. 유년기부터 풍파를 견뎌내야 한다는 것. 목이 타서 죽을 것 같을 때 마시는 물은 꿀을 타지 않아도 꿀맛이라는 것. 삶은 그런 식으로 길흉화복이 계속 순환된다.
기꺼이 불행을 껴안아줄 수 있어야 더 크게 행복할 수 있다는 사실. 나는 예쁜 몽돌이 되기 위해 여전히 거친 파도를 맞고 있다. 진지하게 불행해봤으니 이제 이 불행 바로 뒤에 기다리고 있는 진지한 행복을 기다리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