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며칠 전 내게 이메일을 보내주신 어떤 구독자 덕분에 집 앞에 핀 벚꽃을 처음 봤다. 벚꽃을 의식하니 이제 자꾸 눈에 꽃만 들어온다. 한 발 늦게 놓쳐버린 목련, 한순간에 터져버린 개나리와 벚꽃까지. 영영 끝나지 않을 것만 같았던 겨울은 어느새 지나가고 내 옆에 조용히 봄이 와서 앉아있었다.
봄은 요란스럽게 오지도 않았고 야단법석을 떨지도 않았다. 그분이 아니었으면 눈치도 못 챘을 뻔했다. 내가 글을 쓰지 않았으면 정말 몰랐을 일이다. 다시 한번 글을 쓰기 잘했다고, 내 글을 읽어주는 것만으로도 나를 살려주는 이름 모르는 많은 분들에게 진심으로 감사했다. 그래서 오늘은 출근길에 내내 기분 좋은 이 노래를 여러 번 들었다.
작년 6월 이후로 거의 1년간 음악을 듣지 않았다. 기껏해야 죽고 싶은 마음을 모아서 떠났던 산티아고 순례길에 우연히 들은 마음이 죽은 사람들에게 라는 플레이리스트를 반복 재생할 뿐이었다. 우울증 약의 도움을 받아 시도 때도 없이 흘리던 눈물이 잡힌 뒤에는 음악 대신 자연의 소리를 많이 들었다. 들판을 지나가는 바람 소리, 창문을 두드리는 빗방울 소리, 모래알을 간지럽히는 파도 소리 같은 거 말이다.
그러다가 오늘 아침 우연히 알고리즘이 내게 들려준 노래가 마음에 박혔다. 잊고 있었던 예전의 기분이 잠시 떠올랐다. 여행을 좋아했다. 새로운 세계로 모험을 떠나는 설렘을 담아 공항에 가던 기분. 숙소에 짐을 풀자마자 일단 근처를 산책하자며 무작정 발길 닿는 대로 가는 가벼운 발걸음. 길가에 핀 이름 모르는 풀꽃에 한참을 멈춰서 카메라부터 들이미는 나. 커피 마시러 들어간 아무 카페의 배경 음악이 무척 마음에 들었을 때의 행복함. 다시 숙소로 돌아갈 때 코끝에 느껴지는 낯선 곳의 이국적인 향기. 운 좋으면 볼 수 있는 새빨간 노을의 여운.
자연스레 여행을 가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다. 10개월 동안 '-싶다'라는 열정을 잃어버렸었는데. 조용히 봄이 찾아와서 꽃망울이 터졌듯이 내 마음에도 다시 열정의 불씨가 다시 살아나고 있나 보다. 별 일 없이도 몹시 기분 좋은 하루였다. 예전의 나는 이랬는데. 원래의 내 모습으로 돌아간 것 같아서 무척 반가웠다. 오늘의 기분을 내일 다시 잃어버린다고 해도 괜찮다. 또다시 되찾으면 된다는 확신이 들었다.
곧 이 노래를 들으며 여행을 떠나야겠다. 상상만으로도 즐겁다. 언젠가 이 슬픔도 끝날 줄은 알고 있었지만 도대체 그게 언제가 될지 몰라서 내내 괴로웠다. 이제 어렴풋이 알겠다. 서막이 끝나가고 있다. 새로운 인생이 펼쳐질 것 같은 예감이다. '이혼은 어떻게 하지' 이딴 걱정은 아무렇지도 않을 만큼 뭐든지 다 할 수 있을 것 같다. 다행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