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해 보상금이니 이혼 위자료니 그런 건 일단 차치하고도 그가 나한테 갚아야 할 돈이 있다. 결혼식 준비하면서 내가 먼저 결제했던 돈만 몇 천만 원이 훌쩍 넘는다. 그 내역이 정리되어 있던 페이지가 사라졌다. 정확히 말하면 남편과 결혼 준비하면서부터 함께 가계부를 공유하던 노션 팀 스페이스가 있는데 그가 말도 없이 제멋대로 데이터를 다 날려버렸다.
노션에는 과거 접속 기록이 다 뜬다. 나한테 처음 소장을 접수한 작년 11월에 마지막 접속을 했더라. 그렇게 소송을 걸고 나를 더 괴롭히겠다는 심보로 나한테 갚아야 될 돈이 얼마인지 적혀있는 가계부 페이지를 다 날린 걸까. 웃기지도 않는다. 뭐가 즐거운 일이라고 나는 1년도 다 지난 카드 내역서랑 송금 내역을 일일이 찾아서 다시 기록해야 된다.
야 길동아. 팀 페이지만 날리면 그냥 없던 일이 되니? 니가 넷플릭스, 유튜브 같은 OTT 가족 그룹에서 탈퇴하듯이 말이야. 니가 말하는 이혼은 이런 식으로 하는 거야? 관계의 시작이 있다면 끝도 있는 건데 어떻게 이리도 무책임할 수 있을까. 배울 만큼 배우고 똑똑하다는 그는 정작 인간 된 도리가 뭔지 모르는 걸까. 나는 다시 한번 그의 상위 1%라는 그 IQ가 너무 우습다.
그가 정말 착하고 순수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내가 사람 보는 눈이 이렇게 형편없었나. 사람 보는 내 눈은 여전히 제대로라고 생각한다. 단지 세상에서 제일 무서운 게 사람이고 하필 내가 남편이라고 부를 뻔한 사람이 그런 부류의 악인이었던 거겠지. 그의 밑바닥은 어디까지일까. 알면 알수록 충격의 연속이다.
나는 인간의 선함을 믿는다. 아니 믿고 싶다.
내가 틀린 걸까. 슬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