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삶에 어떤 일이 일어나길 바라는가? 원하는 삶을 창조하는 마음 활용법
크리스마스 연휴가 무탈하게 지나갔다. 눈은 금세 녹았고 혹독한 추위도 한풀 꺾였다. 긴 연휴 동안 밖에는 한 발자국도 나가지 않았고, 여동생은 나흘간 내 곁을 지켜줬다. 우리는 잠시 호그와트로 도피했고, 끼니 챙기는 것도 귀찮아서 피자나 치킨으로 대충 때웠다.
내 잘못이 없는데도 결혼식 올리자마자 한순간에 이혼녀 꼬리표를 달고 살아야 하는 앞으로의 이야기를 할 때 말고는 크게 울지도 않았다. 그때는 나도 울고 내 이야기를 조용히 듣던 동생도 따라 울었다.
누군가를 사랑하고 함께 아이를 낳고, 그 아이에게 무한한 사랑을 줄 기회를 박탈당했다는 사실은 나를 여전히 좌절케 한다. 대책 없이 긍정적인 나여도 냉정하게 생각해 보면 현실이 그렇다. 내 마음의 상처가 치유되는데 한 세월, 그리고 다시 새로운 사람을 만날 때 과거보다 훨씬 더 많은 용기가 필요하다. 그때 내 나이가 몇 살일지, 임신과 출산이 가능한 나이일지는 아무도 모른다.
아무리 요즘 사람들이 이혼을 많이 한다고 해도, 모두가 나를 위로해 주고 내 편이라고 해도, 솔직히 '이혼녀'라는 타이틀은 변하지 않는다. 이혼이 뭐 별 거야? 아무것도 아니야, 수많은 인생 선배들이 말한다. 어떻게 보면 맞고 어떻게 보면 틀린 말이다.
결혼을 후회하는 사람들에게 이혼은 해방이자 축복이고 자유일 것이다. 하지만 단란한 가정을 꿈꾸며 나의 가족을 만드는 걸 간절히 바랐던 사람들에게는 좌절이자 상처, 심리적•육체적 위축일 것이다.
만약 내가 미혼 상태였다면, 지금의 나처럼 비슷한 아픔을 가진 남자를 사랑할 수 있을까? 입장 바꿔서 생각해 보면 그건 상대방에게 정말 큰 용기가 필요한 일이다. 심신이 건강한 두 남녀가 만나도 서로의 끊임없는 노력과 희생이 필요한 게 결혼생활이다. 나라도 나처럼 상처받은 사람을 만나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니, 그 길에 얼마나 많은 고난과 역경이 있을지는 불 보듯 빤하다.
한 번 상처받았던 기억은 뇌에 강렬하게 각인되어 나 자신을 지키고자 다양한 방어기제를 야기한다. 나의 방어기제는 뭘까? 인터넷에서 찾아봐도 크게 와닿지 않는다. 분명 방어기제의 주체는 나인데 내가 모르겠다니. 이번 주 상담에 가서 이런 얘기를 해보면 앎에 좀 도움이 될까. 끝없는 생각이 꼬리를 물고 나를 괴롭힌다.
안 되겠다, 그만 생각하고 눈앞에 쌓인 짐이라도 정리하자. 방바닥에 주저앉아서 이삿짐 상자 한 개를 열었다. 제일 무거워 보이는 상자에는 책들이 들어있었다. 가장 먼저 손에 잡힌 책이 내 눈길을 사로잡았다.
<당신이 플라시보다> '내 삶에 어떤 일이 일어나길 바라는가? 원하는 삶을 창조하는 마음 활용법' 시아버지께 선물 받고 아직 읽어보지 않은 책인데, 오늘 이렇게 다시 마주하니 알 수 없는 묘함이 느껴졌다.
시아버지는 나와 남편이 비행기를 타기 직전에 우리에게 책 한 권씩 선물해 주셨다. 남편이 받은 책 제목은 뭐였는지 기억나지 않지만, 각자 다른 책을 받았다. 시아버지가 이 책을 주시면서 내게 하셨던 말씀도 생각난다. "이 책은 OO이, 너한테 도움 될 거야. 꼭 읽어봐라."
시아버지는 대구분이셔서 늘 과묵하신 편이었다. 표현을 아끼시는 분이라서 왜 이 책을 고르셨는지, 나한테 어떤 이유로 책을 선물하시는지 별다른 설명은 없었다. 그리고 나도 따로 여쭤보지 않았다. "네 감사합니다" 하고 받았을 뿐이다.
별생각 없이 책을 펼쳐봤다. 서문은 다음과 같았다.
'당신은 내면 상태를 바꿈으로써 외부 현실을 바꿀 수 있다. 조는 뇌의 전두엽에서 일어나는 우리의 의도들이 화학물 메신저인 이른바 신경 펩티드로 바뀐 다음 몸 곳곳에 신호를 보내며 유전자 스위치를 켰다 껐다 하는, 몸속에서 일어나는 여러 사건의 사슬을 더할 수 없이 능숙하게 설명한다. 육체적 접촉으로 자극을 받기 때문에 일명 '커들 호르몬(cuddle hormone)'이라고 불리는 화학 물질 옥시토신은 사랑과 신뢰의 감정과 관계한다. 당신도 연습만 한다면 당신만의 스트레스 호르몬, 치유 호르몬의 설정값을 마음대로 조정할 수 있다. 생각을 감정으로 전환하는 것(혹은 생각에 감정을 보태는 것)만으로 자가 치유가 가능하다는 생각은 언뜻 믿기 어려울 수 도 있다. (중략)
이 책을 읽는 동안 때로 불편할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계속 읽어 보기 바란다. 불편함은 불가피한 변화와 호르몬 설정값이 흔들리는 것에 저항하는 당신 과거의 자아가 느끼는 것이다. 조는 그 불편한 느낌이 과거 자아의 소멸이 야기하는 생물학적 감각일 뿐이라며 우리는 안심시킨다. (중략)
그러므로 가능성의 지평을 넓혀줄 이 황홀한 여정에 도전해서, 몸의 기능과 치유의 역량이 급격히 업그레이드되는 경험을 누려보기 바란다. 그 과정에 열정적으로 뛰어든다고 해서, 또는 과거에 당신 발목을 잡던 생각과 느낌과 생물학적 설정값을 버린다고 해서 당신이 잃을 것은 아무것도 없다. 최고의 잠재력을 깨달을 능력이 당신 안에 있음을 믿고 용기를 내 행동에 나서보기 바란다.'
우연일까? 시아버지께서 내게 이 책을 주신 다음날은 하필 우리가 한국을 떠나는 날이면서 시어머니 생신이었다. 결혼하고 처음 맞이하는 시어머니 생신이라서 직접 미역국 끓여서 생일상 차려 드리고 싶었지만 여건이 따라주지 않았다. 저녁 비행기를 타기 전까지 짐도 싸야 하고 이래저래 정신이 없었다.
그래서 어머니 생신 축하는 집 근처 호텔에서 점심 식사로 하기로 했다. 결혼식 이후에 진짜 한 가족으로서 '첫 가족 외식'이었던지라 모두가 즐거웠다. 단지 그날따라 남편의 심기만 조금 불편해 보였다. 그러고 나서 몇 시간 뒤에 사건이 벌어졌다.
당연히 우연이겠지만 지금 이 순간에 내 눈앞에 이 책이 눈에 띈 것, 그리고 하필 책의 내용이 지금 내게 하는 말처럼 느껴지는 것. 시아버지께서 혹시 앞으로 내게 벌어질 일들을 예언하신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신기하다.
이 책을 읽고 내 마음의 방향이 어떤 쪽으로 가든, 내 인생이 어떻게 펼쳐지든 시아버지는 나를 진심으로 생각해 주신 분임에 틀림없다. 표현하지 않아도 무뚝뚝함 속에 애정과 관심이 묻어있다.
부디 남편도 자기를 향한 아버지의 사랑을, 어머니의 사랑과 희생을, 나의 애통함을 제발 좀 느꼈으면 좋겠다. 네가 나한테 한 짓은 살인 행위나 마찬가지라는 것을 알았으면 좋겠다.
일기예보는 내일 맑음이다. 집에만 있기 아까운 날씨일 것 같다. 그러니 새 동네 탐방이라도 해야겠다. 시아버지가 주신 책을 챙겨 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