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는 내게도 다시 따뜻한 크리스마스가 찾아올 수 있겠죠
새벽부터 시작된 눈은 온 세상을 하얗게 덮어 화이트 크리스마스를 만들었다. 모든 걸 뒤로 하고 새로 둥지 튼 낯선 동네가 마음에 들어서인지, 새로 마련한 침대가 편해서인지, 아니면 여동생이 크리스마스 연휴 내내 곁을 지켜준 덕분인지 악몽도 꾸지 않고 모처럼 푹 잤다. 눈을 떴을 때 머리맡에 놓인 크리스마스 선물은 없었지만, 대신 창밖에 저 멀리 산꼭대기까지 온통 하얀 데다 동네 꼬마들이 신나게 뛰노는 모습을 선물 받았다.
유년기부터 신혼집까지 거의 평생을 단독주택에만 살아봐서 아파트의 풍경은 내게 제법 낯설다. 새 보금자리는 아파트 단지 내 정원을 내려다보는 햇빛 잘 드는 집이다. 며칠 전 시어머니와 둘이 낑낑대며 옮긴 내 짐들은 아직도 작은 방에 쌓아둔 채로 방문을 꼭꼭 잠갔다. 그 이삿짐 안에 뭐가 들어있는지 제대로 확인해보지도 않았다. 내 짐의 일부는 아직 남편이 사는 나라에 남아있다. 아빠가 결혼 선물로 사준 커피머신이나 오디오도 아직 거기에 있다.
커피와 음악 없이는 사는 게 의미 없다고 말할 만큼 커피랑 음악을 좋아하던 나였는데, 나는 내가 좋아하던 모든 것을 다 빼앗기고 잃어버렸다. 커피, 음악 말고도 남편을 사랑했던 마음, 함께했던 추억, 둘이 만들어나갈 미래에 대한 꿈, 한 번도 못 가본 신혼여행, 열심히 즐기던 취미 생활, 삶에 대한 의지나 열정...
이 집에는 아직 침대 말고는 가구라고 부를 수 있는 것 하나 없고, 커피머신은 고사해도 수저 한 벌이나 그릇도 없다. 나는 침대 하나 있는 텅 빈 집에서 엄마가 해준 그 혼수 이불을 덮고 잤다. 세탁을 했어도 처음 쓰는 새 이불 특유의 리넨 향기와 바스락거리는 촉감이 내 마음을 아렸다. 그러니 새집에서 맞이하는 아침에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멍하니 창밖을 구경하는 일뿐이다.
밖에는 새하얀 눈을 밟기 위해 나온 동네 주민들로 가득했다. 설레는 마음으로 크리스마스 선물 포장을 뜯어본 아이들은 잠시 선물을 뒤로 팽개치고 아빠한테 썰매 타러 가자고 졸랐겠지. 어느 집 아빠들은 열심히 아이들의 눈썰매를 끌어준다. 두 개의 썰매를 줄줄이 엮어서 두 명 동시에 태우는 아빠도 있고, 썰매 한 개로 애들을 번갈아가며 태우는 아빠도 있다. 자기 차례를 기다리는 세 살 남짓한 아기의 뒷모습에 설렘이 가득 느껴진다.
초등학생 고학년 정도로 보이는 어떤 남자아이는 혼자 나와서 이글루를 쌓듯 열심히 눈을 뭉쳐 자신만의 성을 만들고 있다.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다 나와서 크리스마스 아침의 설경을 사진으로 남기거나 눈사람을 만든다. 오직 나만 홀로 집 밖에서 한 발자국도 나가지 않고 남들의 행복을 먼발치에서 구경한다.
새집에서 이제 겨우 두 밤 밖에 지나지 않았고 이틀 동안 집에만 있어서 몰랐는데, 창밖을 보니 이 동네에는 내 또래의 신혼부부나 어린아이 키우는 젊은 부부들이 많아 보였다. 그래서 또 슬펐다. 내가 꿈꿨던 모습이 저 멀리 있는 게 아니라 너무 코앞에 있어서. 근데 나는 남의 일인 듯 그저 구경할 수밖에 없어서.
나는 어렸을 때부터 아이들을 좋아했다. 나이 차이 많이 나는 사촌동생들을 많이 귀여워했다. 장녀라서 동생들을 잘 돌보기도 했지만, 원래부터 아이들을 너무 예뻐했다. 그래봤자 나도 고작 8살, 9살 또 다른 아이였을 뿐인데. 그래서 아무리 내 커리어가 중요해도 딩크에 대해서는 단 한 번도 고려해 본 적이 없다.
전업주부는 죽어도 싫으니 워킹맘을 하더라도 나를 닮은 아이를 한 명 정도는 꼭 갖고 싶었다.
나도 우리 엄마, 아빠처럼 알콩달콩 사는 게 소원이었다. 원래는 딸을 갖고 싶었다. 하지만 남편과 구체적인 미래를 그려가면서 그를 닮은 아들이어도 괜찮을 것 같았다. 셋이서 캠핑을 다니고 낚시를 하고 여행을 다니는 상상을 했다. 하지만 그 상상은 실현 가능한 현실이 아니라 몽환경이라는 걸 깨닫고 나니 매우 비참했다.
결혼 후 첫 크리스마스이자 이혼 후 첫 크리스마스같은 이상한 크리스마스. 동생이 아무리 옆에서 웃긴 이야기를 해줘도, 해리포터 시리즈를 틀어놔도 이 집은 복작복작하지 않고 공허하기 그지없다.
하필 이 타이밍에 아이폰은 눈치도 없이 작년 오늘이라며 과거 사진을 내게 억지로 보여준다. 남편과 함께였던 작년 크리스마스를 사진으로 마주하니 너무 애처로워서 지난날의 내가 불쌍했다. 그리고 그걸 보고 있는 지금의 나도 너무 불쌍하다.
작년 오늘, 남편은 내게 아침부터 내쉬빌 핫치킨을 만들어줬다. 남편이 좋아하는 유튜버의 레시피를 따라 해 보겠다며 새벽같이 일어나서 부지런 떨었다. 너는 좀 더 자라고, 내가 부르면 그때 일어나서 테이블 세팅만 해달라고 말한 남편은 추운 날씨에도 테라스에 나가 열심히 닭을 튀겼다. 튀김 요리는 냄새가 너무 많이 나서 어쩔 수 없다는 남편에게 감기 걸린다고 잔소리를 할 수도 없었다.
나는 그게 남편의 애정 표현 방식인 걸 알아서 그저 맛있게 먹어주고 칭찬을 많이 해주고 열심히 사진으로 남겨놨다. 실제로 남편의 치킨은 어지간한 배달 치킨보다 훨씬 맛있었다. 남편은 레시피를 정석대로 고수하는 사람이라서 평소에도 요리를 잘하는 편이었고, 무엇보다 그 치킨에는 남편이 크리스마스 아침부터 추위를 이겨 내고 튀겨낸 사랑과 정성이 들어있었다.
남편이 요리하느라 한바탕 어질러놓은 부엌을 정리하고 조금 쉰 다음, 우리는 장을 보러 갔다. 크리스마스 저녁에는 시부모님을 초대해서 내가 요리해 드리기로 했었다. 샐러드, 야채 스튜, 파스타, 스테이크. 초보 주부한테는 양식이 제일 쉬워서 양식을 차렸지만 시부모님은 맛있게 드셔주셨다.
미리 예약해서 사온 크리스마스 케이크까지 함께 나눠 먹고 나니, 진정 하루종일 아침부터 밤늦게까지 먹다가 끝난 크리스마스였다. 배부르고 따뜻한 크리스마스였다. 앞으로도 크리스마스를 계속 이렇게 함께 보내겠구나, 행복을 예고편처럼 미리 맛본 기분이었다.
나는 연휴 내내 배달 음식으로 대충 배를 채웠다. 집밥을 좋아해서 요리해 먹는 편인데 아직은 여건이 갖춰지지 않았다. 식탁도 의자도 조리도구도 식재료도 없다. 방바닥에 치킨 펼쳐놓고 해리포터만 봤다.
남편은 지금 남미에 있다. 새로 사귄 친구들과 크리스마스를 신나게 보내고 있을 게다. 그리고 우리 엄마, 아빠는 내가 없지만 아마 보통날 같은 하루를 보냈을 거다. 엄마의 트리는 올해도 어김없이 11월 말부터 꾸며졌다고 동생이 말해주었다.
나는 아직도 엄마, 아빠를 보지 못하겠다. 용기가 나지 않는다. 엄마, 아빠 앞에서 안 울 자신이 없다. 여전히 엄마라는 단어를 생각만 해도 바로 눈물부터 뚝뚝 떨어진다. 그들에게 우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지가 않다. 눈물이 마르고 닳아 없어질 때까지 엄마, 아빠를 안 보겠다고 다짐했다. 딸의 불행한 모습을 보여주는 것만으로도 내가 죄인이 된 것 같아서 차라리 거리를 두는 게 낫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올해 나의 크리스마스는 너무나도 쓸쓸하고 가련하다. 하지만 적어도 나를 뺀 모두는 행복한 크리스마스를 보냈길 진심으로 바란다. 가까운 미래의 크리스마스는 나도 다시 따뜻하게 보낼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아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