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새해 소원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오늘은 한 해의 마지막날. 너무나도 말도 안 되는 일이 벌어진 끔찍한 해였다. 나는 올해 결혼을 해서 유부녀가 됐다. 이미 혼인신고까지 해버려서 법적으로도 어쩔 수 없이 유부녀. 신혼이지만 신혼생활을 해본 적 없는 새댁.
인생에서 가장 행복한 날이어야만 하는 결혼식은 나에게 영원히 끔찍한 트라우마로 남아버렸다. 차라리 남편과 결혼하고 1, 2년이라도 더 살아봤으면 덜 힘들었을까. 어느 정도 살면서 차츰차츰 그의 진짜 모습을 알게 되었으면 조금은 나았을까. 남들처럼 지지고 볶고 싸우다가 도저히 안 되겠다고, 평범하게 '성격 차이'라는 이름의 이혼 도장을 찍었으면 지금보단 충격이 덜했을까.
8,000여 장의 본식 스냅 원본 사진은 여전히 열어보지 못했다. 본식 스냅 원본을 받은 건 결혼식이 끝난 지 두 달쯤 됐을 때였다. 그때 나는 이미 남편 때문에 정신줄을 놓고 반쯤 죽어있어서 그 메일을 확인할 정신도 없었다. 그렇게 결혼식은 내게 너무 아픈 상처가 되어버렸다. 그것 하나만으로도 올해는 내게 잔인하다.
우리 사이에 벌어진 끔찍한 일은 양가 가족들에게도 힘든 일이었겠지만, 무엇보다도 나를 더 힘들게 했던 것은 가족들조차 나를 어떻게 위로해야 할지 몰라서 쩔쩔매는 모습을 보는 것. 그리고 그들 역시 나만큼은 아니어도 충분히 고통스러울 거라는 나의 유별난 공감능력.
남편이 이상해지고 난 뒤에 나와 시부모님은 셋이 어정쩡하게 마주 앉아 이 일에 대한 대화를 나눌 기회가 꽤 있었다. 당연히 남편은 그 자리에 한 번도 없었다. 나는 남편에 의해 유기되었고, 유일한 피해자가 되었다. 하지만 이혼의 당사자로서 나와 남편의 대면은 아직까지 단 한 번도 없었다. 그래서 나는 남편 대신 시부모님과 어색하고 힘든 자리를 가졌다.
그러나 종종 그 자리가 이혼에 대한 현실적인 논의인지, 나의 상실을 위로하는 자리인지, 남편의 치료 방안을 도모하는 자리인지 헷갈리곤 했다. 시부모님도 나도 우리 모두 이런 그림을 예상하지 못했다. 그래서 대화는 한 번도 제대로 해결된 적이 없고, 여전히 문제는 깔끔하게 정리되지 않았다. 내가 항상 너무 울거나 시어머니가 너무 우시거나, 또는 우리 둘 다 계속 울어서 더 이상 어쩔 수 없었다.
하루는 시부모님께서 조심스럽게 물어보셨다. "얘야, 혹시 혼인신고를 취소할 수 있는 방법은 없니?"
내가 너무 불쌍하고 안쓰러워서 그렇게라도 법적으로 무슨 방안이 없을까 고심하셨을 시부모님의 심정이 느껴졌다. 그런데 만약 혼인신고를 안 했더라면, 아님 혼인신고가 취소된다고 내 상처가 작아지는 것도 아니고 덜 아픈 것도 아닌데. 네이버에 검색할 필요도 없이 혼인신고하러 구청에 가면 대문짝만 하게 안내문이 곳곳에 붙어 있다. '혼인신고 접수 후 취소 절대 불가'
정말 기가 막힌 타이밍은 남편이 내게 이혼하자고 한 날이 바로 우리가 혼인신고한 다음 날이라는 사실.
혼인신고를 하는 것은 결혼식을 할 때랑은 또 다른 기분이었다. 이제 정말 법적으로 가족이 된다는 신선한 느낌. 혼인신고서를 작성할 때 미래의 아기에게 누구의 성을 따르게 할 건지 고르는 항목이 있었다. 갑자기 남편이 그 대목에서 "네 성으로 하면 안 돼? 네 성이 더 예쁘고 특이하잖아"라고 말했다. 의아했다. 내 남편은 홍길동이니깐 우리 아이는 홍 씨라고 생각했다. 구청 직원에게 물어봤다. "이거 꼭 지금 정해야 해요? 나중에 못 바꿔요?" 직원은 못 바꾼다고 대답했다. 나는 솔직히 성씨에 딱히 민감하지 않았다. 니 애가 내 애고 내 애가 니 애지, 성이 무슨 상관? 내가 아빠 성을 따른다고 엄마 딸이 아닌 것도 아닌데.
혼인신고의 증인으로 참석한 우리 부모님도 남편의 돌발 의견에 적잖이 당황했다. 아빠는 남편에게 자네가 홍길동이니 아이가 홍 씨인 게 아직 한국 정서상 더 보편적인 것 같다고 말했다. 나도 한 마디 보탰다. "그래 내 성을 써도 상관없는데 우리가 평소에 이런 이야기를 길고 진지하게 한 것도 아니고, 너무 갑작스러워."
그 밖에 특별한 것 없이 혼인신고를 마쳤다. 혼인신고 접수증을 들고 구청 앞에서 기념사진도 찍었다.
하지만 당장 하루 뒤, 남편이 내게 이혼하자고 말할 때 그는 태어나서 처음 본 낯선 남자처럼 말했다. 어제의 그 사람이 아니었다. 그동안 내가 알고 있던 남편이 아니었다.
"배신감이 너무 들어. 너랑 결혼한 것도 후회되는데, 내 인생에서 제일 후회되는 게 뭔 줄 알아? 어제 혼인신고 했다는 사실이야. 네가 이렇게 내 뒤통수를 때릴 줄 알았으면 혼인신고 하는 게 아니었어."
내게 진심으로 배신감이 든다며 치를 떨듯이 말하는 남편의 목소리에서 모멸감이 느껴졌다. 남편의 말 한마디에 심장이 찢어지는 것 같았다. 남편에게 그건 정말 오해라고 설명하거나, 그게 왜 이혼 사유냐고 목청 높이며 싸울 필요도 없었다. 남편은 너무 단호했고, 나는 그 모습에서 지금 뭐가 잘못돼도 단단히 잘못됐다는 걸 본능적으로 깨달았다. 평범한 싸움이 아니었다.
나는 시동생의 짐을 전달해 달라는 시어머니의 심부름을 했을 뿐이었다. 남편은 거기서 내게 신뢰가 깨지고 사랑에 상처받았다고 말했다. 내 잘못으로 이혼하는 거라고, 우리는 사실상 결혼 생활을 하지도 않아서 정리할 재산도 없으니 빨리 짐 싸서 한국으로 들어가라고 했다. 순식간에 길거리에서 모르는 사람에게 칼 맞은 기분이었다.
우리가 3년 동안 사귀면서 단 한 번도 제대로 안 싸워봤다면 차라리 내가 그 점을 두고두고 후회하며 자책이라도 할 텐데. 남들처럼 싸워봤고 남들처럼 화해를 했다. 평범한 30대 중반 남녀의 연애였다. 연애 초기 서로를 잘 몰랐을 땐 남편이 회피를 한 적도 있고, 헤어지자고 했던 적도 있다. 기분이 상하면 동굴로 들어가서 자기만의 시간을 갖던 평범한 남자였다.
나 역시도 가끔 한 달의 한 번 호르몬의 장난으로 감정적일 때가 있었고, 참다 참다 내가 우리 관계를 다시 생각해 보자고 한 적도 있다. 그러면 남편은 미안하다고 붙잡기도 했다. 결혼 준비를 하면서 코스 메뉴를 양식으로 할지 중식으로 할지 얘기하다가 싸운 적도 있다.
하지만 만남이 길어질수록 서로에 대해 잘 알게 되면서 쓸데없는 일로 싸우는 일도 없어졌다. 싸움을 잘 피하는 법을 터득했고, 만약 부딪혀도 어떻게 화해할지 알았다. 그렇게 시간과 함께 믿음이 생기고 신뢰가 쌓였다고 생각했다.
결혼식을 목전에 두고 부부 상담을 받으면서 서로에 대해 더 잘 알아가기 위해 둘 다 노력했다. 건강하게 대화하고 싸우고 화해하는 법을 배웠다. 상담 선생님은 특히 본인 감정에 서툰 남편이 더 많이 노력해야 된다고 말씀하셨다. 남편은 내면에 불안이 있어서 경직된 사고를 하기 쉽다고 했다. 나는 그런 남편의 약한 모습을 이해하며 더 기다려주고 도와줄 마음뿐이었다. 그게 부부라고, 진정한 가족이 되는 과정에 있다고 생각했다.
35년을 같이 산 우리 엄마, 아빠도 여전히 TV 소리 줄이라고, 왜 지름길로 안 가고 내비게이션대로 가냐고 별 것도 아닌 걸로 아직도 투닥투닥 싸운다. 그리고 돌아서면 바로 미안하다고 사과를 하거나, 사과 대신 반찬 하나 더 얹어주면서 화해한다. 나도 그렇게 엄마, 아빠처럼 유치하게 잘 살 줄 알았다.
"나 너무 힘들어, 이해가 하나도 안 돼. 심장이 찢어질 것 같아."
"어쩌라고. 내가 알 바 아니잖아."
"이혼한다 쳐. 그럼 우리 이혼하는 이유가 도대체 뭔데?"
"성격 차이지. 이혼 사유 1위가 성격 차이라더라."
"성격 차이라고? 이게 어떻게 성격 차이야? 오빠 혼자 이혼 주장하는 거잖아."
"그래, 그럼 너는 밖에 나가서 내가 바람 펴서 이혼했다고 해. 어쨌든 빨리 사인하고 넌 짐 싸서 한국 가."
앞으로 남편은 밖에 나가서 사람들에게 성격 차이로 이혼했다고 말하고 다니겠지. 나는 그게 억울한 게 아니다. 입장 바꿔서 생각해 보면 억울함보다는 오히려 무섭다. 성격 차이 이혼이라고 말하는 전국의 모든 이혼남들을 의심하게 될 것 같다. 내 남편은 진심으로 내가 배신을 했고 자신이 피해자이며 우리의 이혼 사유는 성격 차이라고 믿고 있기 때문이다.
작년 연말, 나와 남편은 남해의 어느 섬으로 캠핑을 갔다. 바다 위로 떠오르는 2023년의 첫 해돋이를 함께 봤다. 곧 결혼을 앞둔 예비 신랑 신부답게 유난히 큰 포부를 가지고 소원을 빌었다. 생각해 보면 남편과 연애를 하면서 매년 연말에는 함께 캠핑을 하면서 새해 일출을 같이 봤다.
지나간 한 해를 돌이켜보면 둘의 추억이 가득해서 '우리 올해 정말 재밌었다, 내년에는 이거 하자, 저거 하자' 계획도 많이 했다. 작년 말일에 우리는 부부가 될 2023년을 기다리며 설렜다. 갑작스러운 해외 발령이 결혼식과 겹쳐 정신없겠지만, 그래도 결혼식 끝나고 타국에서 둘이 의지하며 잘 살아보자 다짐했다. 애 없을 때 외국에서 둘이 살아보는 것도 좋은 경험이니깐 틈틈이 이웃 나라 여행도 많이 가자고 약속했다.
그렇게 이것저것 많은 것을 꿈꿨지만 2023년에 지켜진 건 단 하나밖에 없다. 예정대로 결혼식이 진행됐고, 혼인신고를 했다는 것. 나의 올해는 누가 드라마로 써도 이것보단 잘 쓰겠다고, 막장 드라마에 개연성이 없는 쓰레기라는 혹평을 들을 것 같은 해였다.
남편은 여전히 내게 연락 한 번 없다. 아마 본인 뜻대로 빨리 협의 이혼을 해주지 않아서, 조정 신청서를 받아주지 않아서 결국 소송까지 가게 만든 나를 원망하고 저주하고 있을 것이다. 또는 나 따위는 이미 진작에 잊고 신나게 놀고 있을 것이다.
남편의 새해 소원은 뭘까? 어서 빨리 나를 법적으로 완벽히 유기하고 해방감을 느끼는 것? 나의 새해 소원은 살아남는 것이다. 죽지 않는 것이다. 하지만 모르겠다. 더 이상 새해 소원이라는 게 무의미한 것 같기도 하다. 작년에 내가 빌었던 새해 소원은 결코 '제발 로또 1등이 되게 해 주세요!' 같은 허무맹랑한 게 아니었는데도 나를 벼랑 끝으로 몰고 갔으니 말이다. 작년 새해 소원은 그저 우리가 결혼하고 잘 지내길 바라는 거였다. 알콩달콩 소소한 신혼생활을 꿈꿨을 뿐이다.
그러므로 나의 새해 소원은 아무것도 없다.
새해 복을 간절히 빌지도 않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