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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가 그게 왜 궁금해?

새해에는 엮이지 말자, 아니 영원히!

by 은연주

어제 고등학교 후배에게 연락이 왔다. 두 학년이나 차이 나서 친할 이유가 전혀 없는데, 고등학생 때부터 지금까지 철마다 내게 안부를 묻던 그녀였다. 곁을 내주지 않아도 자꾸 연락이 와서 오히려 불편한 존재였다.


나랑 친하게 지내고 싶어 하는 후배를 불편하게 느끼는 내가 괜히 나쁜 사람인 것처럼 느껴져서 연락이 올 때마다 껄끄러웠다. 나는 그녀에 대해 아는 게 딱히 없었고 그녀가 궁금하지도 않았다. 안 친한 사이니깐 관심이 없다는 표현이 더 정확할 것 같다.




그녀는 몇 년 전 어느 날, 내게 자신의 한참 남은 결혼 소식을 전하며 부케를 받아달라고 부탁했다. 자기 친구들은 결혼하고 싶은데도 못하는 애들이라서 부탁하기 애매하다고. 언니는 결혼 생각이 없어 보이니깐 오히려 부탁한다고.


내가? 왜? 우리 그 정도로 안 친하잖아. 하마터면 마음의 소리를 그대로 내뱉을 뻔했지만 어른스럽게 대처했다. “아… 아직 시간 그래도 좀 남았으니깐 너도 생각 더 해보고, 그때 가서 진짜 사람 없으면 다시 얘기해 줘“


몇 달 뒤 남편의 갑작스러운 프러포즈 덕분에 내가 그녀보다 먼저 결혼하게 되는 소식을 전했고, 다행히 친하지도 않은 후배의 부케를 받는 불상사는 없었다.




하지만 내 결혼 소식을 알게 된 후배는 그때부터 내적 친밀감을 느꼈는지 내게 더 자주 연락하기 시작했다. 대부분 결혼 준비 관련한 내용이었다. 나는 결혼 준비에 관심이 없어서 돈으로 시간과 퀄리티를 샀고, 웨딩 플래너의 도움을 전적으로 활용했다.


내가 직접 알아보고 발품 팔 만큼 결혼식에 관심이 없었다. 그 시간에 우리는 차라리 캠핑을 한번 더 갔다. 웨딩 리허설 촬영 하루 전에도 배 타고 통영 섬으로 2박 3일 캠핑을 갔으니 더 이상 무슨 설명이 필요하겠는가.


그래서 나는 그 후배가 이해되지 않았다. 플래너를 고용하고도 믿지 못해서 따로 알아보고 자신이 찾은 싼 업체로 계약했다가 결과에 후회한다는 그런 의미 없는 하소연들이 피곤했다. 왜 돈도 시간도 더블로 쓰지? 하지만 남이니깐 굳이 참견하지 않았다.


후배의 연락은 점점 잦아졌고 내용은 지나치게 노골적으로 변해갔다. “언니 예물 뭐 받아요? 예단은 뭐뭐 해가요? 그 동네 비싸잖아요. 집값은 얼마예요? 결혼반지는 어느 브랜드 거 해요?“


내 주변에 친한 친구들 서로 아무도 그런 얘기 안 하고 안 궁금해하는데. 너는 대체 그게 왜 궁금할까.

“글쎄 우리 예물 예단 그런 건 안 하기로 해서“ 대답하고 싶지 않았다. 사실대로 말해줄 필요도 없고.




“언니 스드메는 어디서 해요? 언니 메이크업은 어디서 받아요? 저는 김청경인데 거기가 워낙 비싸잖아요. 그래서 저는 저만 김청경 가서 받고, 혼주 메이크업은 웨딩홀에 붙어있는 싼 데로 예약했어요“


“아 그래? 난 그냥 내가 받는 곳에서 온 가족 다 같이 헤어 메이크업받기로 했는데. 가격은 모르겠네“


“언니가 하는 데는 얼만지 모르겠지만, 김청경은 워낙에 비싸서 혼주 메이크업도 비싸더라고요~”


결혼식날 우리 엄마, 아빠도 주인공인데? 양가 부모님이 잘 키운 자식 시집•장가보내는 날인만큼 최고로 예쁘고 멋있는 부모님들을 보고 싶었다.


하물며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은 그녀가 그렇게 비싸다 타령했던 김청경보다 내가 받은 헤어 메이크업이 더 비쌌고, 나는 애초에 가격에 개의치 않았다. 땅을 파도 100원 하나 나오지 않지만, 나에게는 엄마, 아빠에게 쓰는 혼주 메이크업 비용이 전혀 크게 느껴지지 않았다. 그렇게 아껴봤자 10, 20만 원 차이던데?


내 결혼식이 끝날 때까지 이런 식으로 후배의 관심은 쏟아졌다. 나는 당연히 친하지도 않은 후배를 결혼식에 초대하지 않았다. 인연을 이어 나가고 싶은 생각도 없어서 어서 빨리 자연스레 인연이 끊기기만 바랐다.




그동안 한참 연락이 없던 그녀에게 어제 연락이 왔다.

“언니 잘 지내죠? 다시 한번 결혼 축하하고, 연말 잘 지내요“


그간의 과정을 알고 있으니 이 연락조차 속셈이 빤히 보였다. 내 결혼식은 봄이었는데 한참 지난 연말에 굳이 결혼 얘기를 또 꺼낸다고?

”응 너도“ 마지못해 최대한 건조하게 답장을 보냈다.


“한국에서 지내는 거예요? 언니 인스타도 없어졌길래요ㅎㅎ”


?????????

그게 너랑 무슨 상관인데??? 육성으로 욕이 나왔다.

그게 왜 궁금해? 우리 안 친하잖아.


인스타그램을 없앤 지는 이미 한참 됐다. 어차피 없애기 전에도 내가 어디에 있는지는 티 나지 않았다. 딱히 올린 게시물도 없어서.




인스타그램 없어진 거랑 한국에서 지내냐는 질문의 상관관계가 있나? 논리적으로 문맥을 따져봤다. 아니 전혀 없다. 얘는 내 안녕이 궁금한 게 아니라, 신변에 비상이 생긴 게 아닌지 궁금한 거구나. 심심한 인생에 자극적인 드라마가 필요했을 뿐.


차라리 내 소식을 건너 건너 들을 만한 사람이라도 있나 떠올려보면 꽤나 재밌었을 텐데. 애석하게도 우리 사이에는 겹치는 인맥조차 없다. 또한 내게 소중하고 가까운 친구들도 여전히 내가 외국에서 잘 지내는 줄 안다. 그래서 무례하고 속 보이는 그녀의 연락이 더 불쾌했다.




“양쪽 집 번갈아 가면서 지내“

“아하ㅎㅎ그렇구나. 아무튼 연말 잘 보내고요!”


이런 한심한 인연이 자연스레 알아서 끊어지길 기대했던 내가 순수했던 걸까. 답장 대신 차단을 꾹 눌렀다.


미안, 네가 나한테 뭘 궁금해하든 나는 너한테 돌려줄 관심조차 없어. 아마 나는 너의 연예인이었나 보구나. 새해 복 대충 받고 계속 그렇게 살렴.




연말연시가 되니 지인들의 새해 연락이 더 자주 온다. 그중 누가 소중한 인연인지 애쓰지 않아도 눈에 다 보인다. 굳이 머리 굴리지 않아도 티가 난다.


어제 받은 새해 안부 연락 4건, 골라낸 쭉정이 2건. 아마 앞으로도 당분간 이런 비슷한 일들이 계속되겠지. 아픈 남편 덕분에 뜻하지 않는 보물찾기 게임을 하고 있는 연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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