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불행해도 돼. 그래도 괜찮아.
아침에 눈을 떴을 때, 이미 창밖은 눈이 펑펑 내리고 있었다. 언제부터 내렸는지 모를 정도로 제법 많이 쌓여있었다.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천천히 팔랑팔랑 떨어지고 있는 눈을 보니 왜인지 위로받는 기분이었다.
바로 며칠 전 크리스마스에 내린 눈은 날 울렸는데. 눈 내린 크리스마스날 아침의 풍경은 내 마음의 상처를 후벼 파서 나를 더 비참하게 만들었는데, 오늘은 마치 다 괜찮다, 잘 버티고 있다고 칭찬해 주는 것 같았다.
아침부터 휴대폰 알림이 계속 울렸다. 며칠 전 쓴 글의 조회수가 계속 늘어난다는 알림이었다.
'조회수가 6000을 돌파했습니다, 7000을 돌파했습니다, 8000을 돌파했습니다.'
점점 무서워졌다. 어떤 알고리즘으로 내 글이 브런치 메인에 뜨기라도 한 걸까. 누구나 볼 수 있는 인터넷에 공개적으로 글을 써놓고 누군가 읽고 있다는 사실이 두렵다니. 브런치를 개설한 이유는 누군가 봐주길 바란 거면서. 내 아픔을 누군가 우연히 알아봐 주길 바랐다. 슬픔에 공감해 줄 수 있는 사람이라면 내 아픔에도 같이 아파해주겠지.
애초에 하드 깊숙한 곳에 저장해 놓고 나 혼자만 보는 일기를 쓴 것도 아니면서 뭐가 이렇게 불안할까.
병원에 가서 선생님께 말씀드렸다. 마침 오후에 병원 예약이 잡혀 있었다.
"제 글이 브런치 메인에 노출되었나 봐요. 혹시라도 누가 저를 알아볼까 봐 무서워요."
"OO씨가 글을 잘 썼으니깐 노출이 된 거겠죠. 누가 알아보면 뭐 어때요. 그게 왜 무서워요. 어차피 OO씨가 잘못한 것도 없는데. 왜 무섭다고 느끼는 것 같으세요?"
"그러니깐요. 저 원래 지나치게 긍정적이다 못해 '어떻게든 잘 되겠지' 마인드로 대책 없이 일단 저지르고 보는 사람이었는데 말이에요. 이젠 겁이 많아졌어요. 요즘에는 길 가다 아는 사람 만나서 '어? 너 왜 한국이야?' 물어볼까 봐, 그럼 저도 모르게 또 적당한 거짓말로 둘러댈까 봐, 이런 것들이 다 스트레스고 힘들어요.
당장 다음 주에 첫 출근하면 새로 만나는 동료들이 점심시간에 남자친구 있냐, 결혼은 했냐 물어보면 뭐라고 대답해야 되지, 이런 것들을 생각하면 자꾸 자신이 없어져요. 그리고 제일 걱정되는 건 지금의 성격이 영원히 고착될까 봐, 트라우마처럼 성격이 변해버릴까 봐 겁이 나요. 옛날의 제 성격은 절대 이렇지 않았거든요."
선생님은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와 외상 후 스트레스 성장에 대해 설명해 주셨다. 분명 지금 내가 겪은 일은 나에게 큰 트라우마로 남을 거라고, 하지만 트라우마는 치료가 가능하다고. 트라우마를 겪고 영원히 장애로 남을 수도 있지만, 누군가는 그걸 통해 오히려 성장을 한다고. 그리고 자기가 보기에 나는 성장하고 있는 쪽이라고, 나는 절대 외상 후 장애로 남을 사람이 아니라고 확언하셨다.
"제가 글들을 직접 읽어본 건 아니지만, 이미 지금 하고 계시는 모든 행동들이 다 너무 훌륭하게 나를 지켜내기 위한 일들이에요. 지금 당장은 성격이 조금 바뀌었을 수도 있죠. 하지만 기질적으로 긍정적이었던 그 모습들이 사라지지 않았어요. 지금도 보세요, 불교대학도 다니고, 이렇게 병원에 오고 또 상담도 받고 계시잖아요. 매일 글쓰기도 스스로 선택하신 거고, 여러 가지 책도 많이 읽고 계시고요. 힘들어서 혼자 여행도 가고. 다 성장에 도움 되는 행동들만 하고 계세요."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는요, 나 자신을 아예 놓아버리고 술을 엄청 마셔서 알코올중독이 된다거나, 자해를 한다거나, 실제로 자살 시도를 한다거나 그런 것들이에요. OO씨는 그런 모습과 거리가 아주 멀어요. 그래서 제가 안쓰럽다고 표현할 정도로 너무 열심히 꿋꿋하게 잘 버티고 계세요. 지금 드는 불안감이나 걱정들은 당장은 어쩔 수 없는 자연스러운 거예요. 하지만 확실한 건 이 사건 때문에 절대로 성격이 변하지는 않아요. 그건 정말 걱정 안 하셔도 돼요."
누구에게나 힘든 시간은 찾아온다. 어떤 사람은 그 힘든 시간을 버티지 못하고 포기한다. 자기 자신을 영원히 버리기도 한다. 하지만 누군가는 어떻게든 견디고 마침내 이겨낸다. 선생님은 그 힘든 시간에서 무사히 잘 빠져나오는 것, 나아가 성장을 한다는 것은 회복탄력성과 자존감에 달려있다고 하셨다.
그리고 나를 처음 만난 날부터 지금까지 쭉 느끼지만 내가 갖고 있는 자질이 무척 훌륭하다고, 회복탄력성이 높아서 더 단단한 사람이 될 거라고 하셨다. 나는 도대체 얼마나 더 단단하고 큰 사람이 되기 위해 이 시련을 맨몸으로 혼자 두들겨 맞고 있는 걸까.
내 불행을 전시하고 싶은 생각은 없다. 그래서 오늘 갑자기 브런치에서 조회수가 터졌을 때, 하루에 3만 명도 넘는 사람들이 조용히 내 글을 읽고 가서 겁이 났다. 구독자수가 폭발적으로 늘어난 것도 아니고, 댓글이 많이 달린 것도 아니어서 더 무서웠던 것 같다.
세상에 사연 없는 사람 없고, 슬픔이나 아픔 모르는 사람 없다. 아픈 남편을 팔아서 이목을 끌고 싶지도 않고, 내 사연을 통해서 동정받거나 남편을 욕보이고 싶지도 않다. 남들에게 평가받기 위해 쓴 글이 아니라서. 자랑하고 싶은 불행이 아니라서. 호소하고 싶은 억울함이 아니라서. 나는 그저 사랑을 잃어버린, 내 세상이 무너져버린 평범한 보통 사람일 뿐이다.
내 불행이 영원히 나를 가둬놓을 리 없다는 것을 머리로는 안다. 어차피 내가 그렇게 가둔다고 가만히 갇혀있을 사람도 아니다. 물론 머리 말고 가슴으로도 아는데 자꾸 불안하고 작아지는 기분은 아직은 어쩔 수 없다. 다만 그렇다고 이 불행을 애써 외면하고 싶지 않다. 잘 지내는 척, 괜찮은 척, 행복한 척하고 싶지 않다. 그래서 SNS를 없앴고 친구들에게서 잠시 멀어졌다.
더 열심히 불행해도 괜찮다고, 지금 굉장히 아주 잘 불행하고 있는 거라고. 하늘도 그런 내 마음을 지지해 주기 위해 오늘 눈이 내렸나 보다. 나는 오늘도 온전히 불행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