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 나는 이제 앞으로 어떻게 해야 돼?
사랑하는 딸아,
3X년 전 겨울 어느 날, 수십 년 만의 폭설이라는 큰 눈과 함께 아빠 엄마에게 온 네가 오늘처럼 꽃이 흐드러진 이 계절에, 오직 한 사람에게만 가장 아름다운 꽃이 된다는 사실이 기쁘기 그지없구나.
너를 처음 만났던 그날, 서울 도심의 교통까지 마비시킨 하얀 눈세상 속, 그날의 기억도 선명하지만.
그런데 아빠에겐 그로부터 1년 후 5월의 봄, 어느 날 아파트 앞마당에서 네가 홀로 아장아장 걸어서 퇴근길 아빠를 마중하며 다가오던 그 모습이 더 또렷하게 남아있단다. 불과 생후 16개월 때인데도 아기 같지 않게 또래보다 성숙했던 너였지.
아래로 동생 둘을 둔 맏이로 자라면서 맏이라는 부담감이 은연중에 컸을 텐데도 동생들 잘 보살피는 큰누이로 자라주었고, 무엇보다 질풍노도의 시절도 별 탈 없이 잘 넘겼던 걸로 기억되는구나.
동생과 함께 두 자매가 유럽 배낭여행하던 중엔 파리 루브르에서 집시 소매치기에게 지갑을 털린 걸 뒤늦게 알고도 기어코 쫓아가 다시 찾아오는 겁 모르는 무용담을 들려주기도 했던 용감한 딸... 새삼스럽기만 하구나.
여행을 좋아해서 한 때는 비혼주의를 천명하면서까지 그렇게 씩씩하게 아프리카에서 남미까지, 히말라야까지 지구가 좁다고 구석구석 쏘다니던 네가 어느 날, 뜻이 맞는 사람이라고, 의기투합할 수 있노라고 남자친구를 아빠 엄마에게 불쑥 소개하던 그날도 아빠는 기억이 새롭다. 참 어색하고 서먹서먹하기까지 했었지.
아 우리 딸도 이제 때가 됐구나라고 생각하면서도 한동안 낯설기만 했단다.
그래도 한번 보고 두 번 보고 세 번 보고... 어느 날 집에서 더덕술 몇 잔 함께 하고 술기운을 지우기 위해 거실 소파에 누운 모습의 편안한 얼굴이 낯설지 않음을 보고 오늘의 두 사람 모습을 그려 볼 수 있게 됐지.
사랑하는 딸아,
너희 둘은 취향이 같아서 쉽게 의기투합할 수 있다고 말했지.
연애는 달콤한 꿈이고 아름다운 환상만으로도 가슴 벅차게 지낼 수 있는 거라고들 하지. 그런데 오늘 이후 너희가 맞닥뜨릴 결혼 생활은 판타지가 아니라 100% 현실이란다. 피하려 해도 피할 수 없는.
두 사람의 만남이 새롭게 두 집안의 맺어짐으로 확대되어 펼쳐지는 현실은 만만치 않을 거야.
그렇다고 현실이 쓰디쓰기만 한 채, 달콤함에서 멀리 있기만 하진 않아.
현실 속 네 삶의 가치, 아니 너희 둘이 함께 펼쳐갈 삶의 가치를 어디에 두느냐에 따라 쓴맛뿐일 것 같은 현실도 달디 단맛의 삶이 될 수 있을 거야. 그야말로 ‘苦盡甘來’의 맛을 느껴보라는 거지.
그러기 위해 두 사람은 앞으로 ‘사랑한다’는 말을 더 많이 하면서 살아야 할 거다.
그런데 아빠가 먼저 살아보니까 그보다 더 중요한 말은 ‘미안하다’라는 말이 아닐까 생각되는구나.
뜨거운 가슴, 열정적인 사랑보다 냉철한 이성의 심사숙고가 국면마다 필요한 게 결혼생활, 부부 사이의 지속가능한 건강한 삶일 거야. ‘부부싸움은 칼로 물 베기’라고들 얘기하는데... 그러려면 서로 감정이 틀어졌을 때 그냥 토라져서 지나치지 말고, 한 발 뒤로 물러서 상대방 입장에서 이해하고 배려하고, 스스럼없이 ‘미안하다’고 얘기할 수 있는 지혜가 필요하단다.
살다 보면 현실 속에서 때때로 폭풍과 큰 파도가 몰아쳐 일엽편주, 두 사람을 집어삼킬 기세로 다가올 때도 있을 거야. 그럴 때 서로 나만 앞세우다 보면 쪽배는 여지없이 바닷속으로 사라지고 말지.
하지만 나를 뒤로하고 상대를 먼저 생각하고 배려한다면 작은 배로도 큰 폭풍우를 너끈히 극복하고 평온한 항해를 지속할 수 있단다. 그게 바로 ‘부부 일심동체’가 되는 거고...
우리 딸 그리고 믿음직한 우리 사위! 오늘 이 자리를 빌려 꼭 하고 싶은 당부의 말이 있다.
사실 두 사람 모두 부모님 슬하에서 세상풍파 모르고 어려움 없이 지난 30여 년을 살아왔다고 할 수 있지. 그런 만큼 앞으로는 두 사람이 자발적으로 인생의 난관을 찾아서 가능한 한 어려운 길 선택해서, 손 맞잡고 함께 극복해 가는 삶을 살아가길 바란다. 최소한 ‘자발적 가난’ 같은 삶을 살아가길 바란다.
시간이 한참 흘러 수십 년이 지난 뒤, 아마 검은 머리가 파뿌리 된 뒤에, 두 사람이 마주 앉아, 우리 인생살이도 제법 거칠고, 화려한 여정이었노라고 얘기할 수 있는 그런 여유를 가질 수 있기를 기원한다네.
그리고 꼭 주변에 베풀면서 너그럽게 사는 지혜를 터득해, 실천해 가길 바란다.
드넓은 모래사장의 모래를 내 것으로 하겠다고 움켜쥐면 결국 내가 가진 모래는 손안에 움켜쥔 모래알갱이 한 움큼뿐이지만 손바닥 활짝 펴고 그냥 모래사장을 즐기면 모두 내 것이 될 수 있다는 역설.
그게 삶의 지혜일 거야.
아빠가
결혼식날 아빠가 내게 써준 편지가 있다. 나는 그걸 천천히 마음속으로 소리 내서 읽고 또 읽었다. 남편이랑도 같이 읽었다. 남편은 아빠의 편지 중에서 부부는 사랑한다는 말보다 미안하다는 말이 더 중요하다는 부분이 크게 와닿았다고 했다.
내가 어렸을 때부터 엄마, 아빠는 특별한 날이면 내게 편지를 써줬다. 어린 시절에는 주로 엄마가 손편지를 써줬고, 어른이 된 뒤에는 아빠가 이메일로 편지를 써줬다. 부모님은 젊은 시절부터 문학 소년, 소녀였고 특히 아빠는 일평생 엄청난 다독가로 살아왔다. 나 역시 그런 부모님의 모습을 보고 자라서 어릴 때부터 책을 가까이했다.
엄마는 어린 시절 내게 책을 사줄 때마다 항상 맨 앞장에 짧은 한 두 문장의 메시지를 남겼다. 그리고 아빠는 최근까지도 기프티콘에 짧은 메시지를 덧붙여 보내주곤 했다. 내 생일이나 크리스마스는 물론이고, 나도 안 챙기는 빼빼로데이, 화이트데이 같은 걸 챙겨주는 다정한 아빠였다. 기프티콘에 첨부할 수 있는 메시지는 글자수가 짧은데도 항상 내 마음을 울리는 글을 써주는 사람이었다.
이메일이나 카카오톡으로만 받았던 아빠의 편지를 처음으로 종이에 받은 게 바로 결혼식날 받은 편지였다. 3X년 전 아빠가 나를 처음 만났던 날의 소회부터 인생 선배로서 조언해 주는 결혼 생활이나 삶에 대한 가치관까지 들어있는 편지는 그야말로 유산 같았다. 그래서 이 편지를 PDF 파일로 보관해서 기회가 될 때마다 자주 읽었다.
공교롭게도 남편과 신혼살림을 차린 지 보름 만에 사달이 나버려서, 이 편지를 꺼내 읽을 때마다 눈물 없이 읽은 적이 없다. 아빠는 편지에 우리를 삼킬 듯이 덤벼드는 폭풍이나 파도 앞에서도 서로 함께 이겨내고자 한다면 무엇이든 극복할 수 있다고 썼다. 그런데 어째 아빠 편지를 다시 읽을수록 자꾸 마음이 흔들리고 약해진다. 나는 혼자인데. 이건 둘일 때나 해당하는 말인걸. 새해가 아무리 기쁘지 않아도 일종의 새해 다짐처럼 아빠 편지를 다시 찾아 읽었다. 아빠 편지에서 새해 덕담 같은 걸 찾아내고 싶었다. 내가 여기서 얻을 수 있는 지혜는 뭘까. 작은 힌트라도 숨어있길 바랐다.
아빠 그런데 지금 나는 어떤 상황이야? 나는 어떻게 해야 돼? 내가 남편이 치료받기를, 괜찮아지기를 바라고 기다려야 하는 거야? 아니면 애초에 전제 조건이 잘못되었으니깐 얼른 남편을 버리고 내 살길 찾아 나서는 게 맞아? 아빠가 써준 편지는 나를 자꾸 헷갈리게 만들어. 아빠 편지를 계속 읽다 보면 연락 끊긴 남편이 보고 싶어지기도 하고, 내 팔자 내가 꼰다는 말처럼 자꾸 남편에 대한 측은지심이 들기도 해.
근데 화병이 이런 거구나, 가슴이 썩어 문드러졌다는 게 무슨 말인지 알 것처럼 정말 가슴 정중앙이 쿡쿡 쑤시고 아파. 나를 이렇게 고통스럽게 한 남편을 평생 용서할 수 없을 것 같아. 근데 내가 사랑했던 사람을 이렇게 미워하는 것도 너무 힘들어. 이게 만약 남의 일이었으면 '저 모지리, 아직도 정신 못 차리고 남편이 그립다니. 지 부모 가슴에 대못 박네'라고 생각했을 것 같아. 이게 만약 여동생이나 친한 친구의 일이었다면 정신 나간 년이라고 호되게 욕해줬을 것 같아.
내 마음이 가는 대로 하는 게 정답이라는데 사실 내 마음이 뭔지 나도 모르겠어. 내가 정말 이혼을 원하는지 모르겠어. 남편이 미운지 싫은지 불쌍한지 보고 싶은지 나도 나를 모르겠어. 그래서 누가 대신 정해줬으면 좋겠어. 남편이 그렇게도 이혼을 하고 싶다면 차라리 내게 100억이라도 주고 나를 뻥 차버렸으면 좋겠어. 아니면 아빠가 대신 남편 멱살을 잡고 때려줬으면 좋겠어. 아빠는 너무 점잖고 선비라서 그렇게 할 수 없는 사람인 걸 아는데도 말이야. 아니면 엄마가 시부모님께 전화해서 울고불고 따져줬으면 좋겠어. 내 딸 살려내라고, 내 딸 인생 책임지라고.
근데 아빠가 그랬잖아. 아빠도 그렇게 하고 싶은데 그러지 않는 이유는 나를 위해서라고. 아빠가 이혼하라고 부추기면 언젠가 내 마음속 상처가 덧나서 아빠 탓을 할 거라고. 부모를 원망하고 비난할 거라고. 그러니 이혼을 해도 결국 내가 내 마음을 따르고 스스로 결정해야 한다고. 그래야만 나중에 더 힘들지 않다고, 덜 불행하다고. 아빠 엄마는 그런 마음으로 나를 키워왔다고 그랬잖아.
그래도 이번만큼은 아빠가 대신 결정해 주면 좋겠어. 그동안 나 맏딸 노릇도 잘하고 독립적으로 잘 컸다고 했으니깐 이번 한 번만 알려줘. 아니 살려줘. 내가 새해에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정답을 제발 알려줘. 어른이 되었어도 어른이 되는 건 아직도 너무 어려운 것 같아. 결혼은 내 뜻대로 결정해 놓고 이혼은 할지 말지 등 좀 떠밀어 달라고 부탁해서 미안해 아빠. 별 것도 아닌 일로 너무 오래 아파해서 미안해. 아빠 마음도 아프게 해서 미안해 아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