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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연주 Jan 22. 2024

미움에도 애정과 열정이 필요하다.

엄마를 보며 깨달은 김첨지식 며느리 시점 애정표현


내가 도대체 뭘 잘못했는지 몰라서 마음이 먹먹해질 때마다 남편을 미워하고 싶었다. 하지만 내 마음이 말처럼 쉽지 않았다. 사랑해서 결혼까지 한 남자를 미워하기만 하는 건 생각보다 어려운 일이었다. 억울함이 유독 너무너무 큰 날에는 차라리 시댁 식구들까지 같이 원망하고 싶었다. 내게 심부름을 시키신 시어머니를 탓하면, 애초에 택배를 잘못 보낸 시동생을 탓하면 내 마음이 조금은 나아질까 싶었다. 엄마의 엄마의 그 엄마 시절부터 대대로 한반도 땅에 뿌리내린 며느리들처럼 넋두리로 풀어내면 한이 좀 풀릴까 싶었다.


- 우리 엄마는 세상에서 임 씨가 제일 싫대.

- 아 너네도? 우리 엄마는 맨날 최 씨 욕하잖아.

- 웃긴다ㅋㅋ진짜 다 똑같네. 우리 엄마도 김 씨라면 치를 떨던데.

- 집집마다 국룰인가 봐. 엄마가 아빠 포함 시댁 싫어하는 거.


어느 날엔가 친구들과 우스갯소리로 했던 말이다. 실제로 우리 엄마도 가끔씩 내게 “어휴 너는 누가 은 씨 아니랄까 봐~” 하면서 은 씨 전체를 싸잡아 흉보듯이 타박했다. (참고로 은연주는 내 필명이다.)




엄마 속마음을 내가 다 아는 건 아니지만, 가끔은 이모들보다 고모들이랑 더 친해 보였다. 내가 고모들이랑 같은 성씨라서 괜히 그러는 게 아니라, 고모들은 다들 유쾌한 성격이었다. 엄마와 개인적으로 결이 잘 맞지는 않을 수 있어도 어쨌든 절대 얄미운 시누짓을 할 성격들이 아니었다. 고모들은 항상 인생을 신나고 재미있게 살기 바쁜 사람들이었다. 평소에도 긍정적이고 낙천적인 내 성격은 분명 고모들을 닮았을 거라고 확신해 왔다. 게다가 엄마는 이모들, 고모들을 다 제치고 같은 며느리 처지인 큰엄마와 제일 유대감이 깊었다.


나는 어릴 때 할머니 할아버지와 같이 살았기 때문에 객관적으로 엄마가 시집살이를 전혀 하지 않았다는 걸 누구보다도 잘 안다. 물론 나이 먹으면 자기 부모와 사는 것도 불편한데 남의 부모와 사는 게 마냥 쉬운 일은 아니었을 것이다. 하지만 내가 은 씨라서 은 씨 편을 드는 게 절대 아니었다. 그래서 나는 엄마가 종종 은 씨를 싸잡아 흉보거나 불평할 때마다 도무지 공감되지 않았다.




내게 이런 일이 생기고 나서야 마침내 나는 엄마의 엄청난 비밀을 알게 되었다. ”니네 아빠는~ 그리고 니네 친가는~“ 하고 시작하는 엄마의 모든 말들은 김첨지식 며느리 시점 애정 표현이었건 것이다. 애초에 정말 시집살이나 고부갈등으로 너무 힘들었으면 진작 이혼을 했겠지. 만약 애들 때문에 이혼을 못한 거라면 적어도 우리들이 먼저 친가라면 치를 떨었겠지. 또 우린 ‘너희 때문에 이혼 못했다’고 자식들에게 죄책감만 심어준 엄마도 미워했겠지. 하지만 우리 집은 그중 아무것도 해당이 안 된다. 나랑 이런 대화를 나눴던 다른 친구들의 집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나도 남편과 연애 시절에는 친구들에게 “내 남친은 다정함이랑은 거리가 멀어~ 완전 로봇이야. 너도 저번에 봐서 알지?”라고 말하곤 했다. 흉본 건 아니지만 남편의 성향에 대해서 가볍게 농담을 하곤 했다. 하지만 이제는 남편에 대한 언급 자체가 해리포터의 볼드모트처럼 어려워졌다.


상처가 깊은 사람은 그 상처를 왜, 어떻게 꺼내야 할지 몰라서 어색하게 가만히 있는다. 그게 내가 아무것도 못하고 있는 이유다. 미워하는 마음에도 열정이 필요한 일인데, 나는 그런 모든 감정소모의 에너지를 잃어버렸다.




오늘은 퇴근 후 병원 진료가 있는 날이었다. 선생님께 남편이 지금 한국에 있고 2월 초에 대학 병원에서 풀배터리 검사를 받을 예정이라는 소식을 전했다. 그 이야기를 들은 선생님은 내게 혹시 관계 회복에 대한 일말의 희망 같은 게 있냐고 물어보셨다. 남편이 만약 치료가 되거나, 갑자기 하늘이 두쪽이라도 나서 정신 차리고 빌면 어떤 마음이 들 것 같냐고.


“관계 회복은 감정이 남은 사람들끼리나 하는 일 아닌가요? 저는 이제 아무것도 없는걸요. 저한테는 지금 억울함 밖에 없어요. 사과라도 제대로 받고 싶은데, 진심으로 후회할 사람이었으면 애초에 일을 여기까지 키우지 않았겠죠. 사과받고 싶은 마음조차 제 집착 같아요.”


나는 미움에도 애정과 열정이 필요하다는 걸 남편을 통해서 배웠다. 사람이 사람에게 정도 이상의 상처를 계속 받다 보면 마침내 남는 감정은 아무것도 없다는 걸 알았다. 그래서 나는 할 줄 아는 게 없어서 오늘도 가만히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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