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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높은 곳에서 추락하면 죽을 수 있을까

그럼에도 내가 죽지 않은 이유

by 은연주

개미는 추락사할 수 없다는 이야기를 책에서 읽은 적이 있다. 개미는 질량이 너무 작아서 중력이 공기 저항력보다 크지 않다든가. 하지만 웬만한 모든 생물은 높은 곳에서 떨어지면 당연히 크게 다치거나 죽는다. 슈퍼 히어로가 아니고서야 물리적으로는 그렇다.




3X년 살면서 크고 작은 일들이 있었다. 기쁠 때도 있었고 힘들 때도 있었다. 절대적인 행복이나 불행은 존재하지 않는다. 모두 다 상대적이다. 각자 저마다의 시련을 가지고 살아간다. 그러니깐 지금 내가 말하는 고통은 나만의 힘듦인 걸 안다. 세상에서 내가 제일 불쌍하고 제일 힘들다고 말하는 게 아니다.


나는 운이 좋게 태어났다. 자상한 아빠, 헌신적인 엄마, 객관적으로 보면 좋은 대학, 이 정도면 괜찮은 직장, 모나지 않은 외모와 성격. 인생은 모두 상대적인 것인데도 어떤 사람들은 종종 나를 부러워했다. 단순히 나보다 조건이 안 좋아서 나를 부러워하는 사람도 있었고, 나보다 훨씬 나은 환경에서 자랐는데도 나를 부러워하는 사람도 있었다. 전자의 경우는 물질적인 부분을 부러워했고, 후자의 경우 나의 낙천적인 성격을 부러워했다.


굳이 나에 대해 드러내지 않아도 시기나 질투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걸 어릴 때부터 알았다. 나는 섬세하고 여린 성격이라 학창 시절에는 그게 힘들었다. 내가 딱히 자랑하거나 나대지도 않고, 일진도 아니고 왕따도 아닌데, 친구라고 생각했던 아이들에게서 느껴지는 은근한 시기와 질투. 당사자만 느끼는 아주 묘한 비밀 같은 것이었기 때문에 이걸 누구한테 토로할 수도 없었다. 그들이 티를 내려고 하지 않아도 어떻게든 티가 났고 내가 아무리 눈치가 없어도 결국엔 다 알게 되었다.




그리고 사회생활을 하면서 만나는 소위 '빌런'은 사람들 모두 속으로 비슷하게 느끼고 있겠지만, '예비 빌런'은 내가 제일 먼저 눈치챘고 최대한 조용히 그들과 엮이지 않으려고 했다. 그럼 나중에 보면 역시 그 예비 빌런은 공공의 빌런이 되어 있었다. 그래서 회사에서는 더더욱 나에 대해 절대 드러내지 않았다. 어디 사는지, 부모님은 뭐 하시는지, 그런 것들. 옛날 복덕방 어르신들이나 할 법한 질문을 아직도 하는 MZ세대들이라니. 남에게 관심이 많은 사람들을 보면서 나는 오히려 더 남한테 관심이 없어졌다. 남이 어디 살고, 뭘 입는지 하나도 궁금하지 않았다.


그것들은 나의 과거가 축적되며 만들어진 경험치일 수도 있고, 내가 타고나길 섬세하고 예민해서 감이 발달한 걸 수도 있다. 그게 뭐든지 간에 이유는 중요하지 않다. 나는 내가 사람을 꽤 잘 본다고 생각했고 늘 조심했다.

외향적이고 쾌활한 성격 덕에 모두들 나를 인싸라고 생각했지만, 사실 마음속에 내가 진심을 나누는 친구는 몇 되지 않았다. 그리고 언제나 나의 첫 번째 베프는 동생이었다. 나는 그래서 내가 정말 운이 좋다고 생각한다. 내 의지와 상관없이 엄마가 동생을 선물해 줬으니깐.




남편과 썸을 타기도 전에, 그러니깐 남편을 본 지 두세 번 밖에 안 됐고 그마저도 둘이 본적은 아직 한 번도 없었을 때. 남편이 대뜸 나한테 "너 가스라이팅 잘 당하지?"라고 물어봤다. 나중에 사귄 지 이틀째에 갑자기 사랑한다고 말했던 것처럼 또 뜬금없는 상황이었다. 가스라이팅에 대한 주제로 얘기하던 상황도 아니었고, 그렇다고 그 당시 사회적으로 떠들썩한 사건이 터졌을 때도 아니었다.


아주 가끔 어떤 사람들은 내가 잘 웃고, 좋은 게 좋은 거라고 하니깐 날 만만히 보거나 잘해주면 호구처럼 얕잡아 보는 경우가 있긴 했다. 하지만 나도 호락호락당할 성격은 아니었고, 알아서 미리 피하거나 강강약약처럼 나갔다.


그러니깐 남편이 그때 실없이 웃는 나를 보고 "너 사람들한테 당하고 사는 거 아니냐?" 이렇게 걱정 반 농담 반으로 말한 거라면 차라리 이해를 하겠다. 근데 아무리 생각해도 "너 가스라이팅 잘 당하지?"는 말이 안 된다. 그래서 그때는 그 질문의 저의가 진심으로 궁금해서 발끈하고 물어봤다. "아뇨? 그게 무슨 뜻이에요 지금?"

남편은 그냥 "아~ 내가 가스라이팅 잘 당하거든. 너도 나랑 비슷한 것 같아서" 하고 유야무야 둘러대고 마무리 됐다.


나는 또 좋은 게 좋은 거라서 그 말을 그대로 받아들이고 '어머 이 남자 바보 같이 순진한가 보네. 이 나이에 가스라이팅이나 당하고. 그걸 또 자기 입으로 다 말하네'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제야 그때를 곰곰이 생각해 보면 그건 남편이 귀신 같이 가스라이팅 할 착취 대상을 알아보고 던진 의뭉스러운 질문이 아닐까 싶다. 그렇게 생각했던 이유는 사건이 터진 후 한동안 남편이 사이코패스나 소시오패스라고 진지하게 생각했기 때문이다. 정말 그렇게 생각하지 않으면 남편의 충동적이고 공격적인 이 행동이 도무지 납득되지 않았다.


하지만 ASD, 고기능 자폐 스펙트럼에 대해 책을 읽고 영어로 된 논문도 읽고 커뮤니티도 보고 별의별 짓을 다 하고 나니, 실제로 아스피들이 가스라이팅에 취약하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아직 남편은 정식 진단을 받은 것도 아니고, 나는 남편이 아니기에 남편의 심리를 전부 알 수는 없다.


남편은 IQ가 높다. 치밀하고 계획적이다. 어떤 면에선 극단적이고 흑백논리도 심하다. 그래서 만에 하나 남편이 풀배터리 검사를 받더라도 본인이 원하는 모습의 정답을 고를 가능성도 충분히 있다. 성격장애는 진단으로 나오기 매우 어렵다고 한다. 정신과 의사도 환자를 오랫동안 봐야 하고, 환자를 제일 잘 아는 가족들의 면담도 적극적으로 필요하다.




남편이 나를 일부러 괴롭히기 위해 결혼한 건 아닐 테니, 남편이 ASD든 사이코패스든 다른 성격장애든 진단명은 중요하지 않다. 앞으로 남편의 병은 남편이 알아서 고쳐야 하는 몫이고, 나는 나에게만 집중하기로 했다. 내가 뭘 놓쳤지? 참회를 끊임없이 해본다. 내가 사람을 잘 본다고 간과해 놓고 정작 내 남편감은 제대로 보지 못했구나.


연애 시절, 그는 앞뒤가 똑같았다. 융통성이 없고 자기만의 고집이 있는 편이었지만, 오히려 그게 한결같아서 믿음직스럽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아무리 앞면과 뒷면이 같아도 남편의 내면은 내가 볼 수 없는 일.


그럼 나는 대신 그때 내 속마음을 들여다봤어야 했다. 내가 그걸 놓쳤구나. 남편에게 마음의 병이 있는 줄도 모르고 좋은 게 좋은 거라던 내 긍정적인 면이 오히려 나에게 독이 되었구나. 모든 걸 포용하던 내 성격이 오히려 나를 다치게 했구나.




그렇다고 내가 앞으로 매사 부정적으로 바라보고, 아무도 믿지 않고 염세적으로 살겠다는 다짐은 아니다.

좋은 게 있으면 나쁜 것도 있다. 나쁜 게 있으면 좋은 것도 있다. 평생 행복한 삶만 있을 수는 없다. 영원히 힘들고 괴로운 삶만 있을 수도 없는 노릇이다.


지금은 우선 다친 내 마음 치료에만 집중하다 보면 나중에 시간이 흘러 이 경험에서 뭔가를 배울 수 있다. 바람이 거셀수록 뿌리는 더 단단해진다. 내가 어떻게 받아들이냐에 따라 난 지혜로워질 수도 있고 추악해질 수도 있다. 삶은 언제나 내 선택에 달려있다는 걸 안다.




풍성한 꽃밭에 둘러싸여 결혼식을 올린 그날, 나는 내가 봐도 공주병 말기처럼 예뻤다. 모두의 축복 속에 결혼식을 마치고 새 출발에 대한 부푼 기대감으로 한창 설렘과 행복함이 하늘 끝까지 높이 솟아있을 때, 바로 거기서 순식간에 추락했다.

땅으로 곤두박질하는 건 찰나에 불과했다. 땅에 떨어지기만 하면 차라리 다행인데, 남편에 대한 배신감과 나에 대한 자책, 마르지 않는 눈물은 나를 기어이 땅 속으로 끌고 갔다.


처음 사건이 터지고 공황장애가 왔을 때는 당연히 그럴만하다고 생각했다. 급격한 충격을 받으면 공황장애가 올 수 있다는 걸 어느 정도 인지하고 있었다. 그렇지만 우울증은 달랐다.


어느덧 나도 모르게 지독한 우울증에 빠져버렸고 조용히 그리고 천천히 지구 내핵까지 침잠했다. 공황장애도 우울증도 다 처음 겪어본 병이다. 나는 우울증이 그저 우울한 기분이 드는 건 줄 알았지만 현실은 달랐다. 아무런 감정이 느껴지지 않는 공허함. 숨 쉬는 것도 버거운 무기력함. 이번 생은 실패했다는 패배주의. 나는 쓸모없는 사람이라는 죄책감.




동생은 계속 내 곁을 지키며 나랑 카페도 가며 놀아주고, 못 만날 때는 매일 전화를 했다. 이 상황을 알고 있는 몇몇의 친구들도 계속 나를 걱정해 주고 기도했다. 우리 아빠는 내게 매일 안부 문자를 넣었다. 일종의 생사확인처럼 느껴졌다.


그래서 그들 앞에서는 되도록 멀쩡한 척 웃었고, 내 기분을 설명할 때는 덤덤하게 괜찮은 척을 했다. 유튜브에 돌아다니는 웃긴 영상을 보면 하하하 따라 웃기도 했다. 억지로 웃은 게 아니라 정말 웃겨서 웃었다. 그런데 이상하게 점점 하루하루 일어나는 게 힘들었다. 일어나서 세수하고 양치하는 게 버거워서 나흘 동안 침대를 벗어나지 않기도 했다. 밥 생각도 없고 밥을 하루종일 안 먹어도 배가 고프지 않았다.


시어머니가 주말 잘 보냈냐고 안부 전화를 하셨을 때, 동생이랑 같이 재밌게 놀았다, 도서관에도 갔다고 거짓말을 했다. 사실 나는 이틀 내내 혼자였고, 몸이 움직이지 않아서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몸이 아니라 마음이 움직이지 않아서 그대로 주저앉은 거나 마찬가지였다. 그냥 이대로 죽어지면 좋겠다. 능동적으로 죽을 용기도 힘도 없으니깐 누가 수동태로 내 인생을 끝내주면 좋겠다. 참 잔인무도한 시간들이었다.




근데 왜 아직도 죽지 않았을까? 꾸역꾸역 감정을 토해내듯 매일 이렇게 글을 쓰고 있다.

또 나에게 물어보고 참회를 해본다. 나 지금 왜 살아있지. 여기는 아직 지옥인 것 같은데. 이혼이 끝난 것도 아니고, 남편이 본인 치료에 협조적인 것도 아닌데.


아무리 내가 남에게 관심이 없어도 누군가는 내 인생에 관심이 많을 수도 있고, 궁금해하겠지.

왜 결혼하자마자 이혼했대? 무슨 문제 있대?

재미를 위로와 동정으로 가장한 위선자들의 안부 연락을 받을 수도 있다. 이혼녀 꼬리표는 평생 붙는다. 상처가 희미해져도 흉터는 남고 기억을 삭제할 수는 없다. 내게 일어난 일이 그렇다. 현실이 그렇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살아있는 이유는 이제 현실을 직시했기 때문이다. 가장 높은 곳에서 추락했지만 죽지는 않았으니 다시 올라가면 된다.

탄탄한 회사의 주식이 떨어지면 이제 올라갈 일만 남았으니깐 얼른 주워 담으라는 말처럼, 나는 더 높게 올라갈 일만 남았으니 지금은 사야 될 때다.


아니 살아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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