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좋아질 일만 남았다.
브런치를 개설하고 처음 쓴 글이 면접을 봤다는 내용이었다. 그리고 며칠 뒤 운 좋게 최종 합격 소식을 받았다. 회사에선 새해부터 첫 출근을 하라고 했다.
얼떨결에 하늘에서 떨어진 동아줄을 붙잡았을 뿐인데, 덕분에 심해 저 깊은 구덩이 속에서 해수면 위로 잠시 떠오른 기분이다. 뭍으로 올라가서 두 발 온전히 안착하려면 시간이 조금 더 걸리겠지만 말이다.
아직 연봉 협상의 단계가 남았지만, 가족들과 가까운 지인들은 모두 연봉 생각하지 말고 얼마를 받든 일단 무조건 가야 된다고 말한다. 그래야지 내가 더 빨리 일상으로 돌아가고 예전의 나로 돌아갈 수 있다고.
그 말에 일부 동의하지만 일부 동의하지 못하겠다. 도대체 '예전의 나로 돌아간다'는 게 무슨 뜻일까? 나는 이미 이 결혼을 통해 나를 완전히 잃어버렸는데.
좋은 의미든 나쁜 의미든 결혼은 인생의 커다란 터닝 포인트라는 말을 많이들 한다. 아무래도 내가 선택에 기여하지 않았던 원가족의 울타리를 떠나 처음 스스로 선택하는 가족이기 때문일까?
그만큼 결혼을 한다는 건 신중해야 하는 문제이고, 그런 맥락에서 영원히 결혼을 하지 않겠다는 누군가의 결심 역시 신중한 선택이라고 존중한다.
과거의 나는 부모님께 나와 뜻이 맞는 사람이 아니라면 결혼을 하지 않겠다고 확언했었다. 부모님은 그걸 마치 '비혼 선언'으로 받아들이고 화들짝 놀라셨다. 나의 부모님은 특히 엄마는 일찍이 시집 타령을 했고, 아빠 역시 재촉하진 않아도 내심 나의 결혼을 바랐다.
자식을 출가시켜야만 진정한 자식 농사가 끝난다고 믿는 옛날 부모님은 내가 바꿀 수 없는 존재였다. 그들이 자란 시대에 결혼은 당연히 해야 하는 필수적 요소였으니 나는 부모님의 마음을 충분히 이해했다. 하지만 나의 세대에게 결혼은 이미 선택적 요소에 불과해졌기 때문에 부모님도 그런 나의 마음을 내심 이해해 주길 바랐다.
영원히 결혼을 절대 안 할 거라는 게 아니라, 마음 맞는 사람이 아니라면 굳이 결혼하지 않겠다는 뜻이었다. 하지만 그걸 ‘비혼 선언'으로 오해한 뒤 마음이 급해진 엄마는 공부에도 때가 있듯이 결혼도 때가 있다며 선자리를 가져오곤 했다. 처음엔 듣기 싫은 잔소리라 짜증도 내고 많이 싸웠지만, 항생제도 계속 쓰다 보면 내성이 생기는 법. 엄마의 결혼 잔소리는 더 이상 아무렇지 않을 만큼 오지게 말 안 듣는 큰딸이었다.
그러다 우연히 좋아하는 게 비슷한 남자를 만나 사랑에 빠졌고, 나는 우리가 2년간 사랑을 주고받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건 나의 착각이었다. 사랑을 키워온 것은 사실 나의 일방적인 행위였고, 그는 나에게 사랑을 돌려줄 수 없는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그에게 사랑이란 아마도 취미 활동이나 기호 식품에 대한 선호 정도에 불과할 것이다. 내가 생각하는 인간과 인간 사이의 사랑이란 배려, 자발적 희생, 관심, 이해와 공감, 연대, 연민 등이 당연하게 요구되는 영역이다. 그러나 나의 남편은 상대방의 감정을 헤아리고 공감할 수 있는 능력이 없다.
따라서 나를 향한 배려나 공감, 관심 역시 아무리 우리가 남은 긴 세월을 함께한들 연애 이상으로 더 깊어질 순 없을 것이다. 남편도 연애 시절엔 공감이나 배려가 조금은 가능했을 것이다. 연애니깐. 남들 하듯이, TV 드라마처럼 하면 되니깐. 그러니깐 우리가 행복한 연애를 하면서 많은 추억을 쌓을 수 있었겠지.
하지만 두 사람이 결혼을 해서 하나의 가족이 된다는 것은 연애와 완전히 다른 개념이다. 두 명의 고아들끼리 결혼을 하는 게 아닌 이상, 낯선 사람들이 서로의 새로운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가족의 규모적 확대와 의미적 확대가 생기기 때문이다.
굉장히 끈끈한 친척들, 화목한 가족에서 자란 나는 남편을 만나 새로운 가족이 생기는 게 기뻤다. 세상에서 나를 가장 많이 사랑해 주는 사람은 엄마, 아빠인데 나를 그렇게 아껴줄 또 다른 엄마, 아빠가 생긴다고 생각하니 진심으로 설렜다. 그리고 가까운 미래에 남편과 아이를 낳는다면 부모님들 모시고 3대가 함께 여행을 다니는 상상을 하기도 했다.
결혼을 가까이 앞두고 남편과 미리 동거를 할 때 종종 남편이 짠하게 느껴졌다. 그리고 동시에 비슷한 감정을 우리 엄마, 아빠에게도 느끼곤 했다. 그전에는 부모님을 대상으로 짠하다는 감정을 느껴본 적이 없어서 그런 기분이 든다는 게 왠지 묘했다.
결혼을 준비하면서 엄마, 아빠의 마음을 더 잘 이해하게 되었다. 부모님이 내 결혼을 간절히 바랐던 건 단순히 세대 차이에서 오는 구닥다리 사고방식 때문만이 아니었음을 깨닫게 되었기 때문이다.
세월은 찰나이고 더 이상 본인들이 젊지 않다는 걸 알게 된 부모님. 늙은 부모 눈에는 여전히 내가 아기로 보여서 혹여나 우리 아기가 나 떠나면 홀로 외롭게 지낼까 봐 마음이 쓰였던 것이다.
그런 마음을 이해하게 되자 엄마, 아빠도 짠하게 느껴졌다. 그래서 '짠하다'는 감정 역시 내게는 사랑의 개념 중 하나이다. 그만큼 나는 남편을 진심으로 사랑했다. 하지만 그도 내가 짠할까? 아니, 아마도 그에게 이런 감정은 평생 미지의 영역일 것이다.
그래서 나의 결혼 생활은 제대로 시작해 보기도 전에 끝났다. 보름 만에 완벽하게 깨졌다. 신혼여행도 가보지 못한 채 말이다.
아직 우리는 이혼 진행 과정에 있기에 법적으로는 부부의 상태이지만, 한 번도 진정한 가족이었던 적이 없다. 남편의 행동이 쭉 그걸 증명해주고 있다. 그렇기에 나는 이혼을 해도 다시 예전의 나로 돌아가는 것도 싫고, 새 회사에 적응하며 일상으로 돌아가서 차츰차츰 예전의 나로 돌아가는 것도 싫다.
나는 예전의 나로 돌아가고 싶지 않다. 아무리 밝고 긍정적인 예전의 나였다고 한들, 예전으로 돌아간다면 껍데기는 명랑해도 속마음은 사랑의 실패로 너덜너덜해진 채 괴리감만 느낄 것 같다. 겉으로는 모두에게 웃고 있어도 속으로는 영원히 선을 긋고 마음의 벽을 높게 세워둘 것만 같다.
그러니깐 나는 다시 태어나야 한다. 홀로서기를 완벽하게 잘 해내고 싶다. 내가 완전히 새로운 나로 다시 태어난다면 그때는 누군가를 사랑하는 힘도 새로이 생기지 않을까. 안 생기면 어쩔 수 없고!
새해의 첫 출근, 새로운 나, 새로운 인생이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