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회의 진정한 의미를 드디어 알게 되었다.
불교 대학에 다니면서 제일 도움이 된 건 더 열심히 나에 대해 알아가고자 하는 의지가 생긴 점과 계속 깨어있으며 알아차리려고 한다는 점이다.
요가를 근 10년 간 수련한 내게 명상은 나름 익숙한 존재였어도 그다지 친숙하지는 않았다. 그동안 명상은 그냥 하니깐 하는 거지, 미천한 중생은 명상을 통해 깊은 깨달음을 얻지는 못했다.
하지만 불교 공부를 하면서 명상이 새롭게 다가왔다. 요가에서도 현존하는 것을 항상 강조해 왔기에 '지금, 여기'에 머물며 호흡하는 것을 몸으로는 익혔는데, 여기다 불교적 철학 접근까지 곁들이니 이제 안개 낀 것 같았던 머릿속이 맑아진다고 해야 되나?
내게 이런 일이 생긴 게 너무나 억울했다. 상실감은 상상 이상으로 크고 괴로웠다.
요가를 아무리 오래 수련했어도 수리야나마스카라를 몇 만 번이나 했어도, 삶이 한순간에 무너질 정도의 큰 사건에는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다.
지난여름 그날 이후로 나는 요가를 건성건성 했다. 당연히 몸을 움직일 힘조차 없었기 때문이다. 무언가에 몰입할 수 있는 건강한 심신이 아니었다. 심각한 우울증은 나를 무기력으로 밀어 넣고 바다 깊은 곳에 수장시킨 기분이었다.
그전에는 회사에서 답답한 채로 퇴근하면 요가로 때 빼고 광내서 혼란했던 마음을 샤워시키는 기분이었는데, 그건 일상적인 스트레스에만 해당이 됐나 보다. 사실 우울할 때 아무 생각 없이 몸을 움직이는 게 도움이 된다고 믿어왔고 지금도 그 말에 동의한다.
그러나 나의 경우, 죽음의 벼랑 끝 앞에서 나를 살린 건 다름 아닌 책이었다. 여러 종류의 책을 닥치는 대로 읽었다. 불교 대학을 병행하면서 읽는 불교 교과서도 여기에 힘을 더했다.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에서 쉽게 풀이한 불교 관련 서적을 읽고, 또 부처님의 생애 같은 강의 내용까지 더해지니 마음에 차곡차곡 쌓이기 시작했다. 업식, 과보 이런 단어는 띄엄띄엄 어렴풋이 이해가 됐다.
하지만 참회라는 단어는 달랐다. 처음에는 참회의 뜻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해서 법사님께 질문글까지 올렸다. 텍스트 그대로 받아들여서 죄를 뉘우친다고? 난 아무 죄가 없는데?
Q. 남편이 결혼하자마자 돌변했고, 정신이 아픈 사람임을 결혼 직후에 알게 됐습니다. 저는 그저 피해자인데 그럼 전 뭐를 어떻게 참회하라는 건가요? '앞으로 두 번 다시 남자를 믿지 않겠습니다' 이런 참회를 해야 되나요?
지금 생각해도 참 무지한 중생다운 질문이었다.
법사님의 답변은 한마디로 참회는 '내가 잘못했다'가 아니라 '내가 놓쳤구나'를 알아차리는 것이었다.
A. 참회를 할 때는 무엇에 대해서 참회를 할 것인지 기준이 있어야 해요.
그냥 ‘내가 잘못했다’ 이러는 게 아니라, 내가 다짐한 것, 내가 이러지 않겠다고 원을 세운 것을 놓쳤을 때 놓친 줄 알고 다짐하는 것을 말합니다.
연애할 때도 남편은 마음의 병이 있었을 겁니다. OO님께선 몰랐을 수 있겠다 생각이 듭니다.
남편과 결혼한 것을 후회하거나 자책하면 내 손해입니다. 지금 여기서 내가 어떻게 하면 행복하고 편안해질 수 있을까? 살펴보시길 바랍니다.
참회의 진정한 의미를 알게 되니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그렇다고 살아온 습관이 하루아침에 바뀌지는 않지만 결국 이걸 계속 수행해 나가는 게 정답이겠지.
그래서 틈날 때마다 108배를 하기 시작했다. 염주를 돌려가며 하니 내가 몇 번째 하고 있는지 숫자 세는 데에만 정신 팔리게 되어 그냥 내 마음대로 했다. 그래서 어떤 날은 100배를 했을 수도 있고 또 어떤 날은 130배를 했을 수도 있다. 그저 마음에 괴로움이 올라올 때마다 아무 생각 없이 계속 절을 했다. 그리고 저 답변을 읽고 또 읽었다.
그래 이미 일어난 일이고, 그것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은 나의 집착이고 번뇌구나.
알아차리기 시작하니 행동으로 옮길 용기도 조금씩 났다.
굉장히 오랫동안 힘들어서 현실을 외면했고, 내가 이렇게 무너져서 우울증 약을 먹는 사실도 받아들이기 싫었다. 그런데 불교 공부를 해보니 생각하는 방식이 바뀌었다고 해야 하나?
태어나서 처음 가본 정신과에 괜히 쫄아서 혹시라도 앞으로도 내가 평생 약에 의존하게 되면 어쩌나 하는 바보 같은 고민도 했었다면, 이제는 '그래, 감기 걸리면 약 먹어야지. 근데 약 먹고 감기 나았다고 앞으로도 감기 안 걸리기 위해 계속 약을 먹진 않잖아? 내가 생각하는 건 다 쓸데없는 마음의 걱정이고 불안이구나. 지금은 내 마음이 아프구나. 약의 도움을 받자.' 알아차림은 이렇게 중요하다.
알아차리자. 깨어있자. 나는 아직 살아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