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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작가 brisa Jun 17. 2024

속초살면 바다에 매일 갈수 있을까?

어디살든 마음먹기 나름

나에게는 바닷가 마을에 대한 로망이 있다.

어렴풋한 기억이지만 아마도 어린 시절 본 드라마 한 편이 이 로망의 시작인 듯 하다. ( 너무 오래되어 드라마 제목도 기억나지 않는다. 한지혜가 주인공이었나? ) 작품의 주인공은 바닷가 마을에 사는 여학생이었는데 여타 드라마 속 여주처럼 매일같이 시련이 찾아오면 파도치는 방파제로 달려갔다. 그리고 둘 중 하나의 장면으로 이어진다. 소리없이 울거나 , 힘껏 소리치거나...

당시 나도 질풍노도의 시기를 겪는 사춘기였던터라 바닷가 마을에 살면 누가 내 이야기를 들어줄 것만 같았다. 나에게도 이렇게 소리지를 수 있는 곳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런 내가, 바닷가 마을에 내려왔다.





#. 바다에 얼마나 자주 가요?


내가 서울에 살다 속초에 내려오니 지인들이 자주 묻는 말이다.

"OO씨는 바다 자주가지? 너무 부럽다. 우리는 2시간 겨우 달려야 보는 서해안 뻘이 전부인데..."

5월의 바다는 청량하다.

나도 바다 가까이에 살면 매일 같이 파도소리를 들으며 해안길을 따라 산책할 줄 알았다. 일출까지는 아니더라도 하루를 마치며 집으로 돌아가는 길, 석양빛에 물드는 해변은 마주할 줄 알았다. 하지만 막상 이곳이 삶의 터전이 되어보니 모두 환상이다.

심지어 우리 작업실에서 길 하나만 건너면 바로 바다인데도 바닷가에 가는 일은 한 달에 한 두번, 시간을 내어야 가능하다.

아무런 연고도 없는 낯선 땅에 내려와 자리를 잡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은 아니었다. 하나부터 열까지 우리 부부의 손을 필요로 했다. 거기에 육아까지 더해지니 하루는 24시간도 모자라 바다를 산책하느니 잠이나 더 자고 싶은 것이 근 몇 년의 현실이다.


살아보니 사람사는 것은 도시나 바닷가 마을이나 다 똑같아서 마음의 여유가 있어야 가능하다는 것을 깨닫는다.

빠르게 흘러가는 도시의 시간 속에서 하늘 한 번 올려다보기 힘든 것처럼 속초에서 바다를 매일 본다는 것도 비슷한 이치인 셈이다. 장소가 아니라 모두 마음의 문제다.


그래서 요즘은 일상을 여행처럼 매 순간 즐기기 위해 애쓰고 있다.

여행지에서는 모든 것이 새롭게 다가와 오늘은 무엇을 먹을지, 무엇을 하고 싶은지 단 1분 도 헛되이 보내지 않기 위해 고민한다. 온전히 내 마음에 주체가 되어 하루를 보낸다.

도시의 삶에 지쳐 이 곳에 내려왔는데 이전과 똑같은 삶을 살고있다면 우리가 속초살이를 위해 애쓴 시간과 마음이 너무 아깝지 않은가? 비록 매일 바다를 마주하지 못할지언정 이 곳에 있는 한 내 삶에 오롯한 주인이 되어 속초의 삶을 마음껏 누리고 싶다.







#. 현지인은 피하는 여름바다


아마도 속초 현지인이라면 진짜 바다 좋은 계절을 알지 않을까 싶다. 물론 최근에는 이상기후로 계절따라 날씨가 정확히 예측되지는 않지만 벌써 이 곳에서 네번째 해를 보내다 보니 바다의 상황을 조금은 알 것 같다.

바닷가 줍깅하는 중

요즘처럼 해는 뜨겁고, 바닷물은 머리가 맑아지게 적당히 차가운 6월은 모래놀이 하기 좋은 계절이다.

넘실대는 파도와 놀다 옷이 조금 젖어도 여름을 코 앞에 두고 하늘 높이 떠오른 태양은 축축해진 옷가지를 금새 보송하게 만들어준다.


봄과 가을의 바다도 햇살에 비추는 윤슬이 눈부시게 아름답지만 이때는 일명 *똥바람이라 부르는 바람이 한 번씩 매섭게 불어 주의가 필요하다. 해가 좋아 텐트들고 나갔다가 바닷가 집은 물론, 모래묻은 도시락을 여러번 먹은 경험에서 우러나온 조언이다.

더불어 바람이 너울성 파도라도 일으키면 새삼 자연의 위엄 앞에 작아질 수 밖에 없다.

*똥바람 : 헛바람의 강원도 방언


개인적으로 매서운 추위가 찾아오면 한없이 깊고 푸르러지는 겨울바다를 좋아한다. 이 때의 바다는 나의 언어로는 표현할 수 없는 색감인데, 미래를 알려주는 주술사의 구슬같기도 하고 그저 이것이 바다 본연의 색이구나 싶게 투명하게 느껴질 때도 있다. 여기에 눈이라도 내리면 세상과 단절된 듯 고요한 분위기가 좋다.


아이러니하게도 해수욕장 개장과 함께 사람들이 많이 찾아오는 여름 휴가철의 바다는 그늘 한점없이 해변으로 바로 내리꽂히는 태양이 뜨겁다 못해 따갑기도 하고, 관광객들도 몰리다보니 그 청량한 동해바다도 탁해진다. 그래서 이때는 잠시 바다를 양보하는 마음으로 현지인들은 휴가철에 바다에서 물놀이를 즐기지 않는다.  잠시 눈을 돌려 설악산 자락을 타고 내려오는 양양 해담마을, 공수전 계곡 등에서의 피서를 더 즐긴다.

모쪼록 속초해수욕장도 곧 개장을 앞두고 있는데 오래도록 이 바다를 지키기 위해 바다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즐겨주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언제가 한 번, 괜찮다고 여겼던 타지에서의 삶이 유난히 외롭게 느껴지던 어느 날, 나의 로망을 이루고자 속상한 마음 부둥켜 안고 바닷가 방파제에 나간 적이 있다.

모퉁이 한 곳에 서서 힘차게 치는 파도를 가만히 보고 있자니 외로운 내 마음을 들어준다기보다 오히려 큰 소리로 이야기하는 것 같았다. 그까짓것 아무것도 아니라고. 별일아니니 엄살부리지 말라며 말이다.

큰 파도와 세찬 소리로 마음 속 슬픔과 고독이 더 커지지 못하게 상념의 입구를 막아버린다. 그래서 생각처럼 그리 오래 서있지 못하고 아이스크림 하나 먹으며 돌와왔던 기억이 난다.


엄살 부리지 말자. 살아보면 별거아닌 일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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