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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risa Jun 24. 2024

현지인 구별하기

거센 억양에 담긴 속초의 정(情)

언제가 속초맘카페에 재미있는 질문 하나가 올라왔다.

"현지인과 외지인 구별하는 방법이 있을까요?"라는 짧은 내용의 글이었는데 거기 달린 댓글이 재미있다.


- 과한 노출, 화려한 의상 등으로 알아봐요.

- 맛집에 줄 서요.

- 닭강정 박스요. 닭강정 박스 들고 다니면 거의 외지인 같던데요? 현지인은 사서 바로 차 타고, 외지인은 "이제 어디 가지?" 하며 검색해요.


청초호와 설악대교

뭐 이런 글들이 대부분이었는데 그중 눈에 띄는 내용이 하나 있었으니 바로 "말투"다.

식당에 들어가서 무뚝뚝하게 맞이하면 현지인이 운영하는 식당이고, 웃으면서 반갑게 인사하면 외지인이 내려와 시작한 곳이란다.

남편과 이 글에 대해 너무 공감했다.


속초살이 훨씬 이전부터 관광객으로 속초에 놀러 와 오래된 현지인 맛집이라 해서 찾아가면 '친절하다'란 느낌을 받은 곳이 많지 않다. 음식 맛은 있을지 몰라도 툭툭 내뱉는 말투와 무심한 듯 시크한 표정은 가끔은 '기분 안 좋은 일 있나?'를 생각하게 한다. 반면 인사소리부터 경쾌해 나중에 SNS를 찾아보면 우리 부부처럼 외지에서 들어와 자리 잡기 위해 으쌰으쌰 하며 자영업을 시작한 곳이다.

당시에는 그저 쌀쌀맞고 차가워 매정하게 느껴지는 말투가 손님으로서 달갑진 않았는데

이곳에서 4년을 지내보니 말투가 무뚝뚝하고 억세다고 해 나쁜 의미가 담긴 것은 아니란 걸 알게 되었다.


현재 우리가 운영하고 있는 작업실은 부동산이 아닌 직접 발품을 팔아 찾은 곳이다.

거의 2주 동안 속초 구석구석을 돌아다니다가 괜찮다고 생각했던 곳에 어제는 없었던 "임대"가 붙은 것이 아닌가. 현수막에서 안내한 곳으로 들어가 사무실을 보고 싶다고 이야기하니 위아래로 쳐다보며 다짜고짜 "둘은 무슨 사이예요?"라고 물었던 사장님(건물주)의 첫인상을 잊지 못한다. 젊은 남녀가 갑자기 들어와 가게를 보여달라하니 사장님은 그게 제일 궁금했나 보다. 당시에는 "임대가 붙어있어 건물 좀 보겠다는데 우리 관계가 왜 궁금하지?"싶었는데, 돌이켜보면 딱히 결혼반지도 안 끼고(둘 다 안 끼고 다니기로 합의함), 남편과 나 모두 다소 동안이라 궁금했을 법도 하겠다 싶다. 중간에 부동산중개인이 없었기 때문에 계약서를 작성하는 과정에서도 미묘한 신경전이 있었는데, 무사히 계약서 도장을 찍고 나니 그날 저녁 사장님은 젊은 사람들이 이곳까지 내려와 줘 고맙다며 바다 보이는 횟집에서 맛있는 회를 사주셨다.


그 후로 4년, 사장님은 젊은 부부가 타지에 내려와 애쓴다며 제철마다 강원도 산지 작물도 나눠주시고, 비 오면 비 온다고 수제비를, 추우면 춥다고 잔치국수를, 김장철에는 아기 있어 김치는 어떻게 하겠냐며 소중한 김장김치를 나눠주신다. 그럼 우리는 서울을 다녀오면서 간식거리를 사다 드리거나, 속초시에 새로운 지원 정책 소식을 알려드리거나, 인터넷 활용 등에 있어 어려움을 요청하면 이 부분에 도움을 드리면서 임대인과 임차인을 넘어 그 어느 가족보다 가까운 이웃사촌으로 지내고 있다.

사장님뿐 아니라 동네 어르신들도 우리 아이를 자신의 손주들처럼 이뻐해 주시며 마주칠 때마다 작은 사탕이라도 쥐어주신다. 다만 어르신들 대부분이 속초 토박이라 다정한 인사 속에도 강원도 특유의 억센 사투리가 있다 보니 아이는 동네 어르신들이 인사만 하면 도망가기 바쁘다.


이런 이웃 간의 정(情)은 내가 어린 시절 이후 처음이다.

당시 우리 집은 10평 남짓의 작은 공간이었지만, 사교성 좋은 엄마 덕분에 동네 방앗간도 같은 곳이었다. 맛있는 음식을 하면 동네 이웃들과 나눠먹는 것이 당연한 일상이었고, 동네 친구들과도 집을 오가며 저녁밥을 먹을 정도로 "응답하라 1988"의 쌍문동 못지않은 활기찬 곳이 내가 자라온 집이다.

그러다 한 두 명씩 동네를 떠나고, 우리도 아파트로 옮기며 이웃간의 따스한 마음들을 잊고 지냈는데 이곳에 내려와 이웃의 정(情)을 다시금 만나게 된 것이다.



나는 원래 첫인상에 대한 선입견이 큰 사람이다. 한 번 선입견이 박히면, 그것이 바뀌기까지 시간이 꽤 필요한 사람인데 속초에 내려와 현지인 이웃들을 사귀면서 이런 마음이 많이 바뀌었다. 비록 말투가 억세고 무뚝뚝할지언정 마음까지 차가운 것은 아니라는 것을 속초살이를 통해 다시금 생각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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