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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작가 brisa Jun 10. 2024

리조트라이프

속초의 문화생활

속초에 살면서 내가 제일 그리운 것은 문화생활이다.


디자인이 업이었던 사람으로 전시회 관람이 나름의 취미였던 나는 속초에 내려와 더 이상 이 취미를 즐길 수 없게 되었다. 왜냐하면 속초에는 딱히 미술관이 없기 때문이다.

그때마다 정철의「관동별곡」을 상기시키며 '내가 살고 있는 이곳이야말로 자연의 미술관이다'라는 생각을 했다. 조금만 부지런 떨면 동해바다에서 매일 다른 빛으로 떠오르는 태양의 찬란한 색깔을 볼 수 있고, 조금만 한숨 돌려 산 위에 오르면 산 위에 구름과 봉오리들이 만나 펼치는 자연의 예술작품을 볼 수 있으니 말이다. 

지금 나는 관동별곡의 세트장에 살고 있다.


하지만 30여 년을 도시에서 살다 이제 겨우 속초에 내려온 지 4년밖에 안되었으니 도시문화는 여전히 그립다. 

이런 가려움을 조금이나 해결해 주는 것은 고개 들어 보이는 산봉우리만큼 그 수가 많은 속초의 크고 작은 리조트들이다.





#. 복합문화시설공간이 되어가는 리조트


내가 제일 먼저 리조트의 특혜를 누린 것은 아이의 걸음마가 막 시작되던 시점이다. 

걸음마를 시작한 아이가 장애물 없이 마음껏 걸어 다닐 수 있는 장소를 고민하는데 마땅한 곳이 떠오르지 않았다. 속초에는 예쁜 호수를 품은 영랑호수공원이나 청초호수공원도 있지만 이곳은 자전거나 킥보드를 타고 다니는 사람도 있기 때문에 걸음마를 연습하기에는 적절치가 않다. 그러다 떠오른 곳이 리조트의 잔디밭이다.

보고 싶을 때 볼 수 있는 양

생각해 보면 리조트의 잔디밭처럼 쓰레기도 없고, 항시 관리가 잘 되어있는 곳도 없다.

이를 시작으로 우리는 육아에 있어 리조트를 적극 활용했다. 잠이 오지 않는 여름밤이면 비눗방울 하나 들고나가 뛰놀다 오고, 아무도 손 되지 않은 하얀 눈을 밟고 싶을 때도 리조트로 향했다.

또한 속초가 관광지다 보니 대형리조트들이 꽤 있는데 리조트마다 누릴 수 있는 시설도 다양하다. 어느 곳은 뛰어놀 수 있는 잔디밭이 있고, 또 어느 곳은 양, 사슴 등의 동물이 있어 먹이체험주기도 가능해 아이에게는 자연인 듯 아닌 최고의 놀이터가 되어준다.

이미지출처 : 속초문화재단 블로그

최근에는 리조트에서 전시회와 공연도 진행되고 있다. 

특히 속초문화재단과 협업하여 지역작가의 작품들이 전시되고 판매되는 "갤러리 동행"은 딱히 전시공간이 없는 속초에 너무 좋은 아이디어 같다.

한 곳에 치우치지 않고 보다 작은 호텔도 선정하여 다양한 공간에서 전시되는 기획도 '동행'이라는 주제에 참 잘 어울린다.

비록 숙박상품이긴 하지만 종종 가수공연과 연계되어 판매되는 티켓은 공연 자체가 프라이빗하게 진행되어 언제가 나도 꼭 한 번고 누리고 싶은 문화생활이다. 







#. 리조트라이프


르네블루바이워커힐 고성 런치메뉴 - 만원의 행복

얼마 전 직장인들의 단골 점심집이 호프집이라는 기사를 봤다. 경제가 어려워지다 보니 호프집에서 가계 유지를 위해 밤에는 술을, 낮에는 점심뷔페를 운영한다는 내용이었다. 

이야기가 도시의 직장가만에 이야기는 아니다. 

아무래도 속초 역시 관광지다 보니 리조트도 주말ㆍ휴일ㆍ휴가철에만 사람이 많다. 그래서 평일, 비수기에는 지역주민들을 위한 혜택들이 많이 제공된다.


이 중 하나가 평일 런치타임의 즐길 수 있는 호텔 요리사의 고급요리다. 리조트의 특성상 아름다운 뷰를 갖고 있으니 평일에 오면 저렴하고 맛있는 식사는 물론, 예쁜 뷰는 덤으로 즐길 수 있다. 

이 외에도 리조트 내에서 운영 중인 키즈카페나 수영장, 사우나는 지역주민 할인이 가능해 여가적인 측면에서 도시생활 못지않게 누리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내가 현지인이 아닌 관광객이었던 시절에는 여행지에 오면 리조트는 단순 숙박시설에 불과했다. 그저 회사의 복지혜택 중 하나로 누리는, 비교적 깨끗하고 편안하게 잠을 자는 공간일 뿐이었는데 내가 리조트 근처에 사는 주민이 되어보니 여기만큼 내게 문화적인 측면에서 만족감을 주는 곳이 없다. 

리조트를 숙박시설이 아닌 자체를 온전히 누린다는 것은 그 지역주민만이 누릴 수 있는 특혜임이 분명하다.







나의 대학 모교는 서울 아파트 촌 사이에, 마치 학교가 아파트 단지의 일부인 것처럼 덩그러니 자리 잡고 있다.

주변은 흔히 생각하는 대학가의 모습이라기보다 주민들이 살기 좋은 상가시설들이 더 많고, 학교의 푸르른 잔디밭은 돗자리 펴고 앉아 청춘을 이야기하는 학생들보다 유아차를 끌고 산책 나온 근처 주민들의 모습이 더 눈에 띄었다. 모습이 나는 불만이었다. "비싼 등록금은 우리가 내는데 산책은 주민들이 해?"  

당시 공대 등록금은 약 팔백만 원에 달하는 수준으로 대학등록금이 하늘을 찌르던 시절이었다. 캠퍼스의 낭만보다는 수업 후 아르바이트하러 가기 바빴기에 한창 놀고 싶었던 스무 살의 나는, 못되게도 아이의 웃음소리가 들리는 푸른 잔디밭이 싫었다.


그런데 막상 내가 속초에 살면서 리조트의 여가시설을 이렇게 저렇게 누리다 보니 이것이 언제가 교과서에서 배운 지역사회의 공생의 삶이 아닌가 싶다. 그리고 내가 베푼 것은 꼭 그 대상이 아니더라도 어떤 방법으로든 다시 돌아온다는 인생의 이치에 대해서도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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