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악산이 준 선물
한 번도 제대로 된 시골을 경험해 본 적 없는 우리 부부가 속초살이를 결심한 결정적 이유는 어쩌면 '딩크도 괜찮아'라는 암묵적 합의가 있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뜨거운 연애 후 결혼을 했지만 각자의 일도 벅차서였는지, 둘 다 아이를 그리 좋아하지 않아서인지 진지하게 앉아 자녀계획을 세우고 제대로 된 임신시도를 해본 적이 없다. 그래도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니 주변에서(특히 가족) 자꾸 아기를 기다리시길래 혹시나 싶어 병원에 갔는데, 내 뱃속에 오래전부터 자리 잡고 있던 자궁근종이 방해가 될 수도 있다는 이야기를 했다. 크기가 커서 수술치료만 가능한 사항이었는데 그때 우리는 처음으로 2세에 대해 의견을 나누며 이런 결론을 내렸다.
"난임이지 불임은 아니니까. 아이가 없어도 충분히 행복하니까 "
그렇다고 임신을 완전히 포기한 것은 아니었는데 (1%의 희망을 믿어보자는 마음이라고 해야 할까?) 사람 마음이라는 게 참 우습다. '없어도 그만'이라 생각했던 마음이 안 하는 게 아니라 못 하는 게 되어버리니 내심 조바심이 낫다. 이런 마음을 감추고 싶어서였을까? 이왕 딩크부부로 살 거라면 그 특권을 누리며 더 행복하게 살고 싶었다. 이를테면 갑자기 잘 다니던 회사를 관두고 익숙한 거리를 떠나 아무도 없는 전혀 새로운 세상에 뛰어드는 속초살이 같은 거 말이다.
세상에 오롯이 우리 둘이었기에 다른 사람들이 뭐라 해도 하고 싶었던 일을 찾아 행복만 추구하며 살아도 두려울 게 없었다. 단칸방에서 라면만 먹고살아도 괜찮다는 패기가 있었다. 우리 둘만 있었을 때는.
막상 임신이 안 되는 이유가 나에게 있다고 하니 그동안 알면서도 방치해 오던 자궁근종도 후회스럽고, 물보다 많이 마시던 커피도 마음에 걸리고, 귀찮다며 대충 먹었던 끼니까지 하나부터 열까지 내 탓이 아닌 게 없었다. 그래서 커피대신 쑥 차를 마시고, 업무차 갔던 건강박람회에서 불현듯 쑥뜸을 사 와 주말이면 누워 뜸을 올리기도 했다. 물론 아주 잠시뿐이었지만 할 수 있는 작은 노력이라도 해보고 싶었다.
그런 우리가 이곳에 내려와 부모가 되었다.
3월에 속초에 내려왔는데 두 달 만에 아기천사가 찾아왔다. 1%의 희망이 이뤄진 것이다.
기쁨도 컸지만 똑같은 크기에 두려운 마음도 있었다. 그 누구의 도움도 받을 수 없는 타지에서(그것도 코로나 시국에) 육아에 대해 전혀 무지한 우리가 아이를 잘 키울 수 있을까에 대해서 말이다. 거기에 조기출혈과 자궁근종으로 고위험 산모가 되었으니 넘어야 할 산이 또 생긴 것이다.
분만병원도, 산후조리원도 없는 시골에 내려갔다고 친정엄마는 이미 여러 번 들은 잔소리를 똑같이 또 했지만 나는 알고 있다. 만약 우리가 속초에 내려오지 않았다면 이 소중한 아기천사를 만나지 못했을 것이라는 것을. 그래서 우리 아이의 뱃속 태명은 '서락이'였다. 설악산이 준 선물, 설악산처럼 튼튼하게 자라 아름다운 풍광을 지닌 사람이 되라는 의미로 지었다.
아이가 생기니 마음가짐도 달라졌다. 내려오기 전까지만 해도 "여기서 2-3년 살다 여수에 가볼까? 경주는 어때?", "해외 여기저기서도 살아보고 싶어" 이런 이야기를 밥 먹듯 하는 나였는데 이제는 비장해지지 않을 수가 없었다. 아이의 유년시절을 떠돌이처럼 기억되게 하기는 싫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취미처럼 시작한 생업이었지만 최선을 다해 자리를 잡아야만 했다.
이제 속초는 누가 뭐래도 우리 가족의 고향이다.
속초에 살면서 도시가 그리울 때를 생각해 보면 모두 아이와 관련이 있다.
특히 주말이면 유모차 부대가 출몰한다는 쾌적한 환경에 쇼핑몰이 제일 그립다. 생후 8-10개월 즈음되면 아기도 콧바람이 들어가 세상 모든 것이 궁금하다는 반짝이는 눈으로 엄마를 바라본다. 그래서 데리고 나가야 하긴 하겠는데 해가 너무 뜨겁거나 비바람이라도 부는 날이면 쾌적한 실내 공간이 간절했다.
돌 지나 대근육이 한참 발달하던 시기에는 실내 체육관인 짐보리가 있었으면 싶었고, 나도 백화점 문화센터에 다니며 아이친구 엄마를 만나고 싶었다.
이런 나의 관점을 바꿔준 것은 다름 아닌 '몬테소리철학'이다.
몬테소리에서는 거친 자연에서의 산책을 중요시한다. 위대한 하나의 철학이기에 여기서 심오한 이야기를 다 할 수 없지만 간단히 말하면 이렇다.
아이들은 가공되지 않은 자연 그대로를 경험하면서 스스로 조절 능력을 배우고 탐구하며 세상을 알아간다는 것이다. 정작 자연 가까이에 살면서 내가 가진 이점을 잊고 있었다. 그래서 내가 몬테소리 관련 책을 읽으면서부터는 매일같이 바닷가로, 영랑호수로, 설악산 앞마당으로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산책을 나갔다.
동해바다가 모래놀이터가 되는 곳
설악산 입구가 앞마당이 되는 곳
영랑호, 청초호가 수족관이 되는 곳이 바로 속초다.
봄에는 양양 꽃시장에서 묘목을 사다 텃밭을 가꾸고, 여름에는 체리나무에서 체리를 따서 먹고, 가을에는 설악산 단풍잎을 주워 따사로운 볕에 말려 낙엽놀이를 하며, 겨울에는 진짜 숲에서 썰매를 탈 수 있는 곳이 여기 바로 이곳 속초다.
덕분인지 딸아이는 그 어렵다는 18개월도, 미운 네 살도 무탈히 지나가고 있다. ( 몬테소리에서는 자연경험으로 아이들의 일탈을 막을 수 있다고 말한다.)
그저 나의 바람은 이렇게 좋은 자연환경에서 자란 딸에게 자연이 하나의 안식처이자 위로가 되었으면 좋겠다. 마치 "나의 라임오렌지나무"의 제제와 나무처럼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