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 유학
대한민국에서 아이를 키우면서 교육에 관심 없는 엄마가 있을까?
도시에서 살 때는 난임으로 딩크까지 생각했던 우리에게 속초에 내려오자마자 아기가 찾아왔다. 그래서 우리는 이 아이를 '설악산이 준 선물'이라 생각하며 자연이 준 선물인 만큼 최대한 자연의 품 속에서 키우겠노라 다짐한 적이 있었다.
한때는 그랬다.
막상 대한민국의 엄마가 되어보니 이제 겨우 40개월인데도 자꾸만 사교육을 고민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어떻게 알았는지 백일 즈음부터 연락 오는 출판사 영사님들, 놀이터에 나가면 비타민과 함께 받아오는 학습 전단지, 특히 서울 사는 친구 아기들의 사교육 이야기를 들을 때면 친정엄마의 말이 자꾸 귓가에 맴돈다.
"둘이 살 때나 내려가서 살지, 왜 애까지 시골 아이 만들어?" 하는 걱정과 안쓰러움이 담긴 푸념이다.
(친정엄마는 다른 거 다 떠나 내가 분만병원도 없는 지방도시에서 임신을 한 게 일 년 내내 불만이었다 ㅎㅎ)
사실 이 고민의 시작은 엄마인 나 자신이란 것을 잘 알고 있다. 내 안에 '시골 아이'라는 단어 속에 함축된 편견이 있다는 것을, 내리 서울에서 자라 온 나로서 도시의 교육열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절대 부족하게 키우고 싶지 않은 엄마의 욕심 때문이란 것을 말이다.
그래서 나는 지금도 많은 고민을 하고 있다. 온전히 속초의 자연을 누리면서 도시의 교육환경 못지않게 배움의 환경을 제공할 방법에 대해서 말이다.
속초에 내려와 좋은 건 하늘을 보기 위해 고개를 들면 하늘보다도 푸르른 설악산이 먼저 보인다는 사실이다.
이렇게 듬직하고 우람한 설악산이 자리 잡은 곳인데도, 그 아래로 넓은 숲이 펼쳐져 있음에도 속초에는 참 신기하게 그 흔한 숲 놀이터, 숲 유치원이 아직 없다.
요즘 서울 근교에는 농장체험, 모래놀이터 카페, 숲 놀이터 등 이런저런 자연 친환경적인 어린이 공간이 많이 생긴다는데 정작 주변이 산이고 논인 속초에는 온전히 아이들을 위한 자연은 없다.
친구에게 이런 이야기를 하니 속초의 자연은 그냥 조금 가공해서 되는 정도가 아니라 '대자연'이라 선뜻 손댈 엄두를 못 내는 것 같다고 한다. 듣고 보니 일리 있는 말이다. 속초 시내에 있는 청대산도 지역카페에서는 산책 삼아 가는 뒷동산이라고 해 올라간 적 있는데 올라갔다 죽을 뻔했다. 휴가철을 피해 봄, 가을이면 아이와 해변에도 자주 나가는데 한 번씩 찾아오는 집 채 만한 너울성 파도는 너무 무섭다.
아무리 아파트가 많이 생기고 개발되었다고 해도, 여전히 속초의 자연은 날 거 그대로의 모습이다.
가까운 산이 대한민국의 명산인 설악산, 코 앞에 물이 깊고 깊은 동해바다이다 보니 아이러니하게도 나는 속초에 살면서도 늘 자연에 대한 갈증이 있다. 30여 년을 넘게 서울에서 살다 보니 이미 사람에 손을 거친 가공된 자연에만 익숙해져 정작 진짜 자연을 만나도 온전히 누리지 못하는 것 같아 안타깝기도 하다.
아이가 크면 꼭 함께 대청봉 등반은 물론, 동해바다 스킨스쿠버도 도전해 봐야지. 그땐 나도 도시의 촌티를 어느 정도 벗지 않았을까?
지난해, 우연한 계기로「도시맘은 어떻게 시골에서 영재를 키웠나」란 책을 읽었다.
이 책은 자의에 의해 서울에서 강원도 고성의 초등학교로 시골 유학을 온 후, 다시 도시로 돌아가 영재원에 합격한 학생의 엄마가 쓴 책이다. 책에 따르면 전교생이 10명도 안 되는 작은 학교에서는 승마, 수영, 오케스트라 악기 교육 등이 무상으로 지원된다고 한다. 그뿐 아니라 원어민 선생님은 물론, 주말마다 품앗이 육아 등 그야말로 낭만 가득한 시골 초등학교의 일상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속초에서 아이를 키우는 속초맘으로서 학교에 대해 한 번도 생각을 안 해본 건 아니다.
속초에서 두 번째 집을 구할 때는 이미 출산 후라 나름의 학군지가 집을 결정하는 중요한 기준이 되었다.
작은 지역이긴 하지만 대한민국의 도시답게 속초에도 학군이 존재한다. 「도시맘은 어떻게 시골에서 영재를 키웠나」처럼 시골 작은 학교에 보내기 위해 일부러 수도권에서 내려온 가정도 주변에서 봤다.
속초에서 학창 시절을 보낼 것이라면 나 역시 작은 학교도 나쁘지 않은 선택이라고 생각한다. 자연환경은 물론 보다 폭넓은 교육의 혜택을 누리기 위해 시골유학까지 온다고 하는데, 어떻게보면 작은 학교가 지방도시에 사는 특권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남편은 나와 의견이 다르다. 대한민국에 살다 보니 중ㆍ고등학교에 가면 어쨌든 입시경쟁을 할 수 밖에 없는데 초등학교 때부터 서서히 이런 분위기에 익숙해지는 것이 아이에게도 덜 부담스럽지 않겠냐는 것이다. 남편의 의견도 공감한다. 어찌되었든 여기는 대한민국이니 말이다.
「도시맘은 어떻게 시골에서 영재를 키웠나」에 보면 이때가 코로나 시국이다 보니 학교는 학교고, 사교육은 온택트 수업으로 가정에서 이뤄졌다고 한다. 이 말은 영재원에 가기 위해서는 시골 유학은 핑계고, 그저 학교와는 별개로 또 다른 교육이 어떤 방식으로든 이뤄져야 한다는 것처럼 느껴졌다. 내가 아이를 영재원에 보내겠다는 것이 아니라 이 도시맘의 온택트 수업이 내가 고민 중인 속초의 자연을 누리면서 도시의 교육환경 못지않게 배움의 환경을 제공할 방법의 대안이 될 수 있다고 본다. 결국 우리나라에서는 학교는 학교고, 공부는 공부인 것이다.
요즘들어 하는 생각은 엄마가 되니 고민의 범위가 달라진다. 앞으로 아이가 살아갈 환경이 걱정이고, 사람들과 관계할 사회가 걱정이다. 내가 이렇게 부모가 되어가나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