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향인이 엄마가 되어간다는 것 #13

사실 나는 엄마가 아니라 쫄보예요

by 오리별

1년 넘게 집에서 아기와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다 보니 세상과 꽤 멀어진 듯하다. 아기에게 미디어 노출을 최소화하려고 TV도 보지 않고, 한창 엄마 껌딱지 시기여서 스마트폰도 최소한으로만 본다. 나는 올여름에 그렇게 비가 많이 왔는 줄 몰랐고, 무더운 날이 그토록 많았는지도 모른 채 계절을 보냈다. 비가 오거나 너무 더울 때는 아기와 외출하는 게 쉽지 않다. 출퇴근하는 남편에게서 간간이 뉴스에 나오는 소식이나 오늘의 날씨가 어땠는지 전해 들을 뿐이었다.


안 그래도 내향적인 집순이었는데 '육아'라는 집에만 있을 기회를 만나버렸다. 그 결과 직장생활을 하며 애써 키워온 내 사회성은 이때다 싶었는지 꼭꼭 숨어버렸다. 집이라는 안전기지에서는 불편한 사람을 마주할 일도 없고, 내 의견을 매끄럽게 정리해 전달할 필요도 없다. 육아에 치여 몸은 힘들지라도 마음은 비교적 편안한 상태인 것이다. 육아라는 게 도통 마음대로 되는 일이 없어 어렵긴 하지만, 나의 경우 사회생활에서 느끼는 감정 소모가 더 힘겨운 것 같다.


백문불여일견. 디자이너에게는 많은 말 보다, 잘 Design 된 하나의 그림이 중요하다. 주로 시각언어로 소통하는 디자이너의 특성상 (모두는 아니겠지만) 나를 포함해 화술이 약한 경우가 종종 있다. 그래서 유려한 말솜씨의 마케터나 영업사원을 만나면 부러움과 함께 범접할 수 없는 포스를 느끼고는 한다. 슬슬 복직이 다가오니 나는 저만치 밀어둔 내 사회성의 안부가 궁금해졌다. 이제 쌓인 먼지를 털어내고 다시 꺼내 쓸 때가 된 것이다. 지금 내 삶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엄마'라는 정체성을 빼고 나면, 말도 잘 못하고 소심하고 내향적인 쫄보만 남는 것 같아 두렵다.


이 기분은 최근 갑자기 많아진 전화통화량으로부터 훅 밀려왔다. 돌잔치와 복직을 준비하면서 의사결정 할 일이 많아졌는데, 전화를 걸어야 해결되는 상황인데도 자꾸 주저하게 되는 것이었다. 나는 예전부터 전화공포증이 심했다. 직장생활 중에는 어쩔 수 없이 업무적인 연락을 매일 주고받으며 내성이 생기고는 했는데 휴직 좀 했다고 이렇게 되다니.. 간단한 내용의 전화도 초록색 수화기 버튼만 보면 식은땀이 나고 체한 느낌이다. 먼저 심호흡을 몇 번하고 머릿속으로 대본을 써 내려간다. 상대가 전화를 받으면 대화를 주고받기는 하는데.. (사실 쓴 약을 삼키듯 숨을 멈추고 아까 쓴 대본을 읊는다.) 통화가 끝나면 그제야 못다 쉰 숨을 몰아쉰다. 주로 '하- 끝났다. 나 쫄보인 거 안 들킨 것 같다.' 하는 종류의 안도하는 날숨이다.


딱히 꾸미거나 과시하지 않아도 아기는 나를 최고의 엄마로 봐주었는데, 사회생활은 그렇지 않겠지. 이제 출산 전과는 상황이 다르다. 회사에서 애엄마 취급받지 않으려면, 감 떨어진 디자이너가 되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복직이 다가올수록 쫄보의 그림자도 선명해지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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