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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혜 Mar 13. 2024

8. 엄마가 너에게 하고픈 말은


여보, 우리가 비록 농사꾼은 아닐지라도 자식 농사만큼은 대성공했지? 

풍년이야, 정말.

우리처럼 못 배우고 무식한 사람들한테 어떻게 저리도 똑똑한 놈들이 나왔는지 몰라. 

저  놈들 입에 밥 들어가는 것만 봐도 피로가 싹 가신다니까.



 



『참맛나는 두부전골』 간판은 한 번도 꺼진 적이 없었다. 안 씨와 정 씨 부부는 성실한 사람들이었다. 농부의 자식으로 태어나 농부로 살아갈 운명을 타고났다. 그 사실에 불만은 없었다. 흙은 정직했다. 뿌린 만큼 항상 거두어 주었다.


1970년대 경제 개발 붐을 타고, 농촌이 변화했다. 가난에서 벗어나 잘 살아보자는 운동이었다. 촌구석을 도시처럼 바꾼다며 나무를 베고, 산길을 깎아 콘크리트로 메웠다. 새소리만 들리던 고즈넉한 마을에 전쟁이라도 난 듯 어수선했다. 거대한 공룡 같은 포클레인이 꺼떡거리며 농촌을 부수고, 깨고, 일으켜 세웠다.


청년 안 씨와 처녀 정 씨는 농부가 되지 못했다. 농사는 구시대 유물 취급을 받았다. 결혼은 했으나 가진 게 없었던 두 사람은 고민 끝에 식당을 차렸다. 아내는 음식 솜씨가 좋았다. 식구들 먹일 밥을 짓듯 정성스레 대접하면 되리라 생각했다.


그러나 서툰 장사꾼에게 세상은 냉혹했다. 두 사람은 업종을 바꿔 식당을 차리고 망하기를 반복했다. 돈은 흙처럼 정직하지 않다는 걸 배웠다. 결코 땀 흘린 만큼 돌아오지 않았다. 뼈저린 경험을 비싸게 주고 샀다.


잘 살고 싶었다. 부부는 몸이 부서지게 일했다. 첫아들을 낳았다. 곧이어 둘째 딸이 생겼다. 셋째까지 태어나니, 불어난 책임감이 어깨를 짓눌렀다. 청춘을 바쳐 얻은 가게를 지키는 데에는 더 큰 대가가 따랐다. 별다른 요령이 없는 부부는 그저 묵묵히 일할 뿐이었다.

다행히 막내가 태어난 후엔 두부전골집이 자리를 잡았다. 그 사이 허리가 휘고 머리는 하얗게 셌다.

별로 해준 것도 없는데 자식들은 알아서 저절로 잘 자랐다. 첫째는 동네에서 손꼽히는 수재였다. 성적만큼 성격도 좋아 든든한 장남이었다. 둘째는 당차고 야무진 장녀 역할을 톡톡히 했다. 셋째는 있는 듯 없는 듯 순했고, 막내는 막내라서 보탤 것 없이 귀엽고 사랑스러웠다.


  “여보, 우리가 비록 농사꾼은 아닐지라도 자식 농사만큼은 대성공했지? 풍년이야, 정말.”

  “우리처럼 못 배우고 무식한 사람들한테 어떻게 저리도 똑똑한 놈들이 나왔는지 몰라. 저  놈들 입에 밥 들어가는 것만 봐도 피로가 싹 가신다니까.”


부부에게 네 아이들은 사랑이고 자랑이었다. 아이들 때문에 일했고, 아이들 덕분에 살았다. 하지만 마음 한구석엔 항상 죄책감이 자리했다. 집안 형편이 넉넉지 않고 연중무휴 영업하는 가게 문을 닫을 수 없어 남들 다 가는 놀이동산 한 번 데려가지 못했다. 먹여 살리느라 급급해 아이들이 무엇을 좋아하는지 궁금한 적 없었다. 그래도 되는 줄 알았다. 세세한 것까지 신경 쓰기에는 삶이 너무 퍽퍽했다.


안지원의 엄마는 오래전에 딱 한 번, 아이들의 숙제 검사를 한 적이 있었다. 대부분 첫째에게 맡겨 두는데 그날따라 손을 댄 건 아빠의 귀띔 때문이었다.

“지원이가 숙제하다 말고 막 울더라고. 왜냐고? 거기까진 모르겠고.”   

숙제는 ‘우리 가족 칭찬하기’였다.


  우리 엄마 아빠는 개미처럼 부지런히 일합니다.

  오빠는 공부를 잘합니다. 늘 1등입니다.

  언니는 노래를 가수처럼 잘합니다.

  동생은 태권도 선수입니다. 유치원에서 상을 받은 적도 있습니다.


그리고 남편의 글씨를 지우개로 고치고 삐뚤빼뚤 새로 쓴 ‘지원이는 참 착합니다’를 보니, 아이가 왜 울었는지 대강 알 것 같았다. 엄마는 그 밑에 이렇게 쓰고 싶었다. 우리 지원이는 글을 잘 씁니다. 책도 많이 읽습니다. 참 속 깊고 다정한 아이입니다. 그러나 자신의 투박한 글씨가 부끄러웠다. 행여나 아이가 창피하지나 않을까 걱정되었다. 망설인 끝에 엄마는 연필을 내려놓았다.

칭찬 대신에 엄마는 지원이의 엉덩이를 툭툭 두드렸다. 지원은 누가 업어가도 모르게 새근새근 곤한 잠을 잤다.   


*


“여기, 소주 한 병!”

두부전골집에 일찌감치 찾아온 손님들이 해장술을 찾았다. 때마침 아침밥을 먹으려던 다섯 가족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엄마가 음식을 준비하는 동안, 장녀가 밑반찬을 내왔다.  

“안씨네는 복도 많아. 요새 젊은이들이야 다 서울 가려고 난리지, 누가 이 촌구석에서 부모를 도와? 아주 효자들이야.”

얼굴이 불콰한 사내가 침을 튀겼다.


“에이, 효자는 아니지. 결혼해서 손주를 안겨줘야 효도지. 요즘 것들은 이기적이라 결혼을 안 해서 문제야.”

마주 앉은 주정뱅이가 투덜거렸다. 아들과 딸의 눈이 마주쳤다. 딸이 토하는 시늉을 하자, 아들이 살짝 웃었다.  


“어이, 큰아들! 자네는 경찰관 한다더니, 몇 년째 낙방이야? 합격하면 준다던 공짜 술은 언제 먹는 거냐고!”

주정뱅이가 식탁을 탕 쳤다. 그 바람에 술잔이 왈칵 엎어지며 소주가 쏟아졌다. 장남이 머쓱하게 뒷머리를 긁었다. 딸이 얼른 걸레를 가져와 바닥을 닦았다.


“그래도 막내는 연예인처럼 잘 생겼네. 안씨네 삼 남매는 다 인물이 좋아. 셋 낳았는데 셋 다 잘나기가 어디 쉽냐고.”

붉은 얼굴의 사내가 아빠의 눈치를 살피며 칭찬을 퍼부었다. 당황한 막내는 어찌할 바를 몰랐다.

그때였다. 주방에 있던 엄마가 벼락같이 뛰쳐나왔다.


“나가요, 당장! 돈 안 받을 테니까 나가라고!”

엄마의 시퍼런 기세에 놀란 것은 손님들뿐만이 아니었다. 가족들도 입을 떡 벌렸다. 그러거나 말거나 엄마는 두들겨 팰 것처럼 국자를 휘두르며 손님들을 쫓아냈다.

“씹다 뱉은 술떡 같은 놈들이 누구더러 삼 남매래? 얘들은 사 남매라고! 아침부터 재수가 없으려니까, 원!”

쾅! 엄마가 거칠게 가게 문을 닫았다. 가족들은 할 말을 잃은 채 엉거주춤 서 있었다.


“말리지 마. 나 서울 갈 거야.”

엄마가 앞치마를 벗어던졌다. 그리고 헝클어진 머리를 질끈 묶었다.

“여보! 장사는?”

“엄마! 우리는?”

뜯어말리는 가족들을 보면서도 엄마는 결연했다.

“죽이 되든 밥이 되든 알아서들 해. 두부가 되든 비누가 되든 모르겠어. 난 오늘 내 새끼를 보러 가야 되겠으니까.”

누구도 엄마의 고집을 꺾을 순 없었다. 엄마가 폭풍처럼 가게를 빠져나간 뒤, 아들은 흰 종이에 이렇게 썼다.


개인 사정으로 인해 오늘은 저녁 장사만 하오니, 너그러운 양해 바랍니다.

 

  *


한편, 지원은 정신없이 바빴다. 부원장이 일감을 몰아주었기 때문이다. 교재비를 정산하고, 탕비실 비용을 계산하고, 회식비 영수증까지 처리했다. 오래 근무했던 회계 담당자가 무슨 일인지 갑자기 그만두었는데 중요한 일을 맡길 사람이 지원밖에 없다는 것이었다. 평소 지원이 해왔던 업무조차 강사들 각자에게 돌아갔다.

“아니, 논술이 이렇게 잡다한 일을 많이 했었어? 나 힘들어 죽겠어. 논술, 돌아와!”

수학이 우는 시늉을 하며 복사실로 달려갔다.

정작 울고 싶은 건 지원이었다. 나는 국문학과 출신에, 논술강사인데. 어쩌다가 경리가 되었나. 산더미같이 쌓인 영수증을 보자 절로 한숨이 나왔다.


“안샘, 오늘 자기 수업은 다음 주로 내가 다 빼놨으니까 다른 생각 말고 이거나 빨리 처리해 줘.”

부원장이 한 뭉치의 영수증을 더 보탰다. 지원이 빠진 회식 영수증이었다.

“아, 이건 고등부 선생님들이랑 한 거야. 모의고사 앞두고 파이팅 하자고. 다음엔 초등부도 하자. 안샘도 꼭 와, 맛있는 거 사줄 테니까.”

지원이 빤히 쳐다보는 걸 느꼈는지, 부원장이 변명을 늘어놓았다. 지원은 말없이 영수증을 만지작거렸다.   


“요새 우리 사이가 좀… 그랬지? 나는 직책이 있는 사람이니까, 안샘이 이해해야지. 안샘만 편애한다느니 둘이 친하다느니, 뒷말이 나오면 안 되잖아. 그래도 내가 안샘 특별하게 생각하는 건 알지?”

부원장이 지원의 어깨를 꾸욱 눌렀다. 책상 위에는 부원장이 준 향수병이 놓여 있었다. 딱 두 번 뿌렸는데 향이 안 맞는다면서 억지로 떠넘기다시피 한 명품 향수였다. 지원에게도 독한 향이라 머리가 지끈거렸다. 단칼에 거절하지 못하고 어물거린 자신이 바보 같아서 견디기 힘들었다. 지금 책상 밑에는, 부원장이 준 물건들이 그대로 있었다. 혹을 떼고 싶었는데, 오히려 혹을 더 붙여 버렸다.

 

“자세히 볼 필요도 없어. 힘드니까 그냥 바로바로 결제해 줘. 내가 사기 칠 사람도 아니고, 안샘이 돈 떼먹을 것도 아니잖아.”   

부원장이 재치 있는 농담이라도 한 것처럼 지원을 찰싹 때리며 깔깔 웃었다. 그 모습을 본 원장이 분위기 좋다면서 엄치를 척 들어 보였다. 부원장이 들어온 후로 학원이 밝아졌다며 칭찬이 늘어졌다.

지원은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였다. 두 사람을 빨리 원장실로 보내고 싶었다. 혼자 집중해서 일해도 근무 시간 내에 될 것 같지 않았다. 학원강사가 야근이라니, 믿을 수 없다. 지원은 입술을 꽉 깨물었다. 비릿한 피맛이 났다.


*


9편으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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