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전히, 사랑
가지 잘린 떡갈나무
나무야, 얼마나 가지를 잘라댔는지
너무나 낯설고 이상한 모습이구나
어떻게 수백 번의 고통을 견뎠을까
너에게는 이제 반항과 의지만 남았구나
나도 너와 같다
가지는 잘려나가고 고통스런 삶을
차마 끝내지 못하고 야만을 견디며
매일 이마를 다시 햇빛 속으로 들이민다
내 안의 여리고 부드러운 것을
이 세상은 몹시도 경멸했지
그러나 누구도 내 존재는 파괴할 수 없다
나는 자족하고 타협하며
수백 번 가지가 잘려나가더라도
참을성 있게 새로운 잎을 낸다
그 모든 아픔에도 이 미친 세상을
여전히 사랑하기에
이 시를 여러 번 읽었다.
읽으면 읽을수록 곱씹어 읽게 되는 부분이 달랐고, 느껴지는 여운 또한 달랐다.
처음에는 수백 번의 고통을 견디며 가지를 잘라댄 낯설고 이상한 모습의 나무가 내 눈앞에 보이는 듯하였고,
그다음에는 내 안의 여리고 부드러운 것을 경멸하는 세상이 어느 정도 공감 되고 또 생채기 났던 마음들이 생각나 슬펐다.
하지만 누구도 내 존재를 파괴할 수 없다며 수백 번의 아픔에도 끊임없이 새로운 잎을 낸다는 의지를 보았을 때는 처음 떠올렸던 가지가 잘려 휑한 나무와는 너무나도 다른 모습의 나무가 떠올라 마음속에 간질간질 새 잎이 차오르는 느낌이었다.
이 슬프고도 아픈 말들 끝에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해 준 마지막 문장, ‘그 모든 아픔에도 이 미친 세상을 여전히 사랑하기에’는 내게 진한 여운을 남겨주었다.
이 시는 사람마다 각기 다른 시구가 마음에 여운을 남길 것 같다.
엄마는 이 시가 꼭 자식들을 생각하는 부모의 마음 같다고 하였다. 아무리 힘들어도 결국에는 사랑으로 버티고 일어나고 해내고야 마는 그런 사랑 말이다.
나는 이 시가 아픔에도 결국에는 또 새 잎을 내고야 마는 의지를 보여주는 것 같기도 하였고,
아프고 힘들고 상처 투성이어도 괜찮다고, 나 자체로도 괜찮다고, 그냥 묵묵히 위로해 주는 것 같기도 하였다.
결국에는 사랑인 걸까?
자의든 타의든 나의 가지가 잘려나가고 아픔만이 남아도, 이 세상이 나를 부정하고 밀어내어도, 내가 나를 잃지 않는다면 결국 사랑으로 이 세상을 견딜 수 있는 걸까?
이 미친 세상을 얼마나 사랑해야 참을성 있게 또다시 새 잎을 낼 수 있는 걸까?
어쩌면 사랑하기에 버틸 수 있는 것이고,
그저 묵묵히 살아가는, 살아내는 것 자체가 이 세상을 사랑하는 방법이자 이유일 수도 있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