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둘기 사이에 소문난 명당, 우리 집
우리 동네에는 비둘기가 참 많다.
옆에는 하천이 있고 뒤에는 산이 있어서 그런가?
희한하게 비둘기가 많아서 비둘기들이 많이 모이는 철에는 비둘기 똥으로 거리가 지저분하기도 하다.
가로등을 지나갈 때는 무조건 가로등 위에 비둘기들이 앉아있는지 살펴봐야 하고,
위에서 자비 없이 싸대는 똥을 피하면 왠지 모르게 럭키걸이 된 것 같아 하루가 럭키하게 지나가는 기분도 들고...
그렇게 비며들어간 것 같다.(비둘기들에게 나름 스며든 것 같다는 뜻이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거리에서 뒤뚱거리고 가로등 위에 즐비한 비둘기를 보는 것과 나의 영역에 침입하는 것은 엄연히 다른 문제!
처음에는 비둘기가 우리 집 실외 난간에 설치된 실외기 난간대에 자주 들르는지 비둘기 똥으로 무덤을 만들어놓더니,
마침내는 실외기와 창문 사이에 둥지를 튼 것이다.
둥지에 당당히 앉아있는 비둘기와 아이컨택을 하며 한참을 눈싸움을 하다가,
두꺼운 나뭇가지를 주워와 일단 비둘기를 쫓아냈다.
그리고 미안하지만 둥지도 치워버렸다.
그 이후 비 오는 날에는 딱딱하게 산처럼 쌓인 똥도 치우고 감시도 열심히 했건만...
며칠 신경을 못 쓴 사이에 또! 둥지를 틀었다.
그리고 심지어는 알까지 품고 있는 것이었다.
하...
이번에도 휘휘 비둘기를 쫓아내고 둥지를 헤쳐놓고 알도...(엄청 미안한 마음에 두 눈 꽉 감고) 치워버렸다.
그리고는 간간이 비둘기의 동태를 살피며 창문을 열어 고개를 빼꼼 내밀고 감시를 하곤 하였다.
집안에 일이 생기고 정신이 없어 미처 비둘기까지 신경 쓰지 못하고 그렇게 시간이 꽤 흘렀다.
쉬는 날 우연히 비둘기가 있나 없나 갑자기 생각이 나서 창문을 열었는데...
비둘기 새끼 두 마리가 갑자기 틈새 사이에 뿅 하고 나타난 것이다.
둥지도 없고 어미새도 없이 참새만한 아기새 두 마리가 있어서 한참을 또 아이컨택하며 얼음이 되어있었다.
이 새들을 어떻게 할까 싶어
막대기로 부리를 툭툭 쳐보기도 하고,
꾹꾹 밀어도 보고,
휘휘 막대기를 흔들어 보기도 하였는데
뺙뺙 소리를 내며 어떻게든 버티는 것이었다.
인터넷을 찾아보니 야생동물센터에 연락을 하면 태어난 지 얼마 안 된 새들을 데리고 가준다는 이야기를 보고 바로 서울시 야생동물센터에 전화를 걸었다.
나 : 날지 못하는 아기 비둘기 두 마리가 있는데 혹시 데리고 가주시나요?
센터 : 어미새가 함께 있나요? 둥지를 틀고 있을텐데...
나 : 아니요... 새끼 비둘기 두 마리만 있고 어미새는 왔다 갔다 하는 것 같아요.
센터 : 어떤 것을 원하시나요?
나 : 새끼 비둘기들 날지도 못하는데 혹시 데리고 가주시나요?
센터 : 아니요. 보통 비둘기들은 태어난 지 한 달이 되면 비행을 시작합니다.
나 : 그러면 한 달을 기다려야 하나요...?
센터 : 네.
나 : 네?
센터 : 한 달 뒤에 날아갈 거예요.
나 : 네... 감사합니다.
이렇게 허무하게 해결 방법을 찾지 못하고 전화를 끊었다.
한 달 뒤면 비행을 시작해서 날아간다니 이걸 기다려야하나? 싶다가도...
날아다니는 것을 무서워하는 나는 비둘기가 무섭고 싫기도 하고, 또 자꾸 커튼 실루엣으로 비치는 어미새가 왔다 갔다 하는 모습이 꽤 신경이 쓰이기도 했다.
그런데 또 아기 비둘기들은 눈도 까매서 참새나 메추라기 같기도 한 것이... 날지도 못하는게 안쓰럽고 신경 쓰이고 또 보면 볼수록 귀여운 것 같기도 하였다.
더군다나 아직 외할아버지 49재를 지내고 있는 중이어서인지 더더욱 이 어린 새들을 지켜야 할 것 같았다.
그래서 비둘기와의 동거가 시작되었다.
동거를 받아들이니 아침마다 새들의 안부가 궁금해서 창문을 열고 잘 있나 살펴보게 되고,
밤새 더 안쪽으로 들어와 있는 아기 새들을 보면 또 안쓰러운 마음에 따뜻한 걸 깔아줘야 하나 이런 생각까지 하고 있다.
휴...
비둘기들이 자꾸 탐내는 우리 집.
비둘기들 커뮤니티에 명당으로 소문난 건 아닌가 싶다.
둥지도 없고 부모 새들과 함께 있지도 못하는 이 아기 비둘기들이 얼른 커서 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이게 뭐라고 자꾸 생각하고 보다 보니 며칠 사이에 정도 든 것 같다.
그들의 비행을 응원하는 마음도 들고,
막상 비행해서 날아가게 되면 벌써 한 달이 지났나 하는 마음과 또다시 겪을 이별에 벌써 마음이 헛헛하기도 하다.
인생은 정말 생각지도 못한 일들의 연속이다.
비둘기들과 함께 살게 될 줄이야.
그래도 이 비둘기들이 나에게 찾아온 운명이자 인연이라 생각하고
좋은 마음으로 새끼 비둘기들과 공생하며 그들의 비행을 응원해야겠다.
세상에 이런 일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