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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종민 Mar 03. 2024

술 취한 사람도 돌려보내는 WH

한 남자가 112로 신고했다. 그는 술에 취해 횡설수설했고, 다짜고짜 경찰이 와야 한다고 했다. 현장에 가보니 길모퉁이에 주차된 차량을 보고 "사람 다니는 길에 이렇게 차를 대면되냐"며 항의했다. 문제는 그가 술에 취해 말을 제대로 전달하지 못하고, 했던 얘기를 계속 반복하고 있다는 거였다. 함께 출동한 동료들도 그가 무슨 말을 하는지 몰라 한참을 듣다가 그에게 조치를 취할 테니 집으로 가라고 말했다. 그와 경찰관은 같은 말을 계속 반복하며 끝없이 돌아가는 다람쥐통 같은 상황이 만들어졌다. 그때, 내가 그에게 한마디를 던졌다. "선생님, 그래서 원하시는 게 뭔가요?" 그러자 그가 갑자기 공손해지더니 "저는, 그냥 차를 저렇게 주차하지 못하게 해 줬으면 좋겠습니다.", "네 알겠습니다. 앞으로 차를 이렇게 대지 못하도록 이야기하겠습니다."라고 말하니 "감사합니다"라고 인사한 후 바로 갈 길을 갔다. 왜 그랬을까? 


우리의 일상을 돌아보자. 누군가와  대화할 때, 특히 흥분한 상황에서 똑같은 말을 계속 주고받은 적은 없는지. 왜 그렇게 답도 안 나오는 같은 말을 주고받았을까? 사람은 누구나 자신이 이해받기를 원해서 그렇다. 자신의 말이 받으들여지지 않는 것 같으니 반복적으로 자신의 말만 하는 것이다. 그럴 때, WH를 써보는 거다. W는 WHAT으로 "무엇을 원하는가요?, 원하는 것이 무엇입니까?"이고, H는 HOW로 "어떻게 해드릴까요?, 어떤 걸 말하는 건가요?"다. 이 말을 들은 상대방은 당황할지도 모른다. 실제로 이렇게 물어보면 '자신이 진짜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모르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그냥 이야기를 하다 보니 내 주장을 하게 되었고, 상대가 자신의 이야기만 하는 것 같아 더 흥분한 마음에 목소리를 높였을 것이다. 그리고 저런 물음을 받았을 때, 진짜 내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생각하게 된다. 또, 상대가 내 말을 들어주려 한다는 것에 대해 마음이 풀리면서 말투 또한 마법처럼 달라지게 된다.  


질문을 던진 우리는 상대가 원하는 것을 들었을 때, 두 가지 선택권이 있다. 들어줄 수 있는 것이면 들어주면 된다. 바로 들어줄 수 없는 것이라면 들어주겠노라고 답변하면 된다. 그러면 대화의 주도권은 나에게 넘어온다. 반대로 들어줄 수 없는 것이라면, 이유를 명확하게 밝히면 된다. 안 되는 이유라도 알게 되면 생떼를 부릴 사람은 없기 때문이다. 


위 사례에서와 같이 또 다른 현장에서도 술에 취해 자신의 말만 계속하는 사람에게 물었다. "그래서, 어떤 걸 도와드리면 되겠습니까?" 그러자 그도 생각을 정리하는 듯하더니 원하는 것을 말했고, 그에게 원하는 것을 들어주겠다고 말했고, 그 자리에서 끝나지 않을 것 같던 소모전이 정리되었다. 물론 나도 할 말이 있는데, 왜 상대가 원하는 것을 들어줘야 하느냐고 반문할 수 있다. 답답한 놈이 우물판다는 옛말처럼 일단 답답한 것은 나이기 때문이다. 괜한 소모전으로 아까운 시간을 버리는 것보다 대화의 방향을 틀어서 해결하는 것이 나을 것이고, 나에 대한 호감도까지 올라갈 수 있는 일이니 잃는 것보다 얻는 것이 많으니 한 번 해볼 만하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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