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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든 Apr 20. 2024

빈자리

계속 웃어, 지금처럼

2023년 4월, 거리에서 우연히 만난 필리핀 친구와 매주 만나는 사이가 되었다. 매주 밥 먹고, 농담을 하고, 어딘가 함께 가고, 영어예배를 드렸다. 웃는 게 어려웠던 그였지만 이젠 제법 스마일을 잘 보여준다.  그렇게 만난 지 1년이 된 오늘 아침, 그에게서 문자들이 날아들었다. 새로운 직장을 찾아 지역을 옮겨야 한다는 말들이 적혀있었다.


그는 아침 8시부터 밤 8시 30분까지 고된 일을 했다. 12시간 고된 노동을 하고 받은 금액은 믿기지 않게 적은 160만 원. 그마저도 회사 대표는 여러 명목을 들어 노동자의 돈을 갈취했다. 지금까지 받지 못한 돈을 정산해 보니 상당한 금액이었다. 대표의 동생은 부장. 부장은 필리핀 친구의 이름을 부른 적이 한 차례도 없었다. 항상 “이 새끼야.”        


필리핀 친구는 왜 당하고 있었을까. 요즘 외국인 근로자들의 법적 대응력은 상당히 올라 고용주들이 진땀을 뺀다고 들었다. 나도 그들의 입장을 모르는 바가 아니다. 아무튼 필리핀 친구는 정식 절차를 거쳐 한국에 온 합법적인 근로자다. 다만 그의 다섯 명의 친구들이 현재 불법체류자다. 대표는 친구들을 거론하며 늘 자신의 행위를 덮어왔고, 맘 착한 이 친구는 자신으로 인해 친구들이 피해를 보게 할 수 없었다.


몇 주전 일이다. 대표의 동생인 부장에게 필리핀 친구가 몇 대 얻어맞았고 그것이 기폭제가 되어 결국 떠나게 되었다.


슬픈 건 아닌데 알 수 없는 이상한 기분이다. 이런 기분이 달갑지 않다. 가끔, 정서적 빈자리를 경험할 때가 있다. 억지로 만든 게 아닌 자연히 생겨난 자리. 그런 자리를 바라보는 일은 나로선 무척이나 버거운 일이다. 모처럼 비가 내려 초록이 더 반짝였던 주말도 생기를 잃은 것만 같다. Good Bye Brother.     


계속 웃어, 지금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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