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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규민 Apr 28. 2024

샤갈의 마을에 내리는 눈, 권수를 추억하며.

231112

 제법 오랜 시간 동안 나의 택배 기본 배송지가 되어주었던 파란달. 안전 주의라고 쓰여있는 낮은 난간 너머에 자리했던 추억의 장소는 돌무더기의 형태로 나를 반겼다. 저 근방에는 커피 머신이 있었고, 로스터가 있었다. 점심을 종종 챙겨 먹던 소메랑도 그 안에 있었다.


이제는 추억이 되어버린 나의 택배 기본배송지.

 오랜만에 온 가락동을 조금 더 둘러보기로 했다. 여러 기억이 서려있는 옛 동네. 여러 아파트 단지를 지나고, 신호가 짧은 탓에 재빠르게 건너야 하는 그 횡단보도를 지나면 나타나는 미지의 동네 문정동. 그곳에 권수의 집이 있었다.


 샤갈의 눈 내리는 마을. 우리가 어른이 되면 함께 가서 밥을 먹어보자고 했던 그 가게는 옷가게가 되어있었다. 그 옆에 있었던 맥도날드와 함께. 나는 결국 그 약속을 지키지 못하게 된 것이 약간은 서운했다. 누구의 잘못도 아닌 점이 더욱 서글프기도 하고.


 우리가 함께 다녔던 학교는 그대로 있었다. 우리는 중학생이 되고, 다른 학교를 다녀도 친하게 지내자는 이야기를 했다. 손을 맞잡으며 약속하고, 도장도 찍고, 싸인에 코팅까지 했었다. 너와 나는 그 약속도 어겼다. 나는 내 자신이 싫어졌고, 네가 야속하게 느껴졌고, 함께한 모든 것들이 무섭게 느껴졌다. 


 우리는 분명 여기에 있었고, 네 향기는 여전히 남아있었다. 그 당시에 우리가 가장 많은 시간을 함께 보냈던 모래 먼지 가득한 놀이터도, 그 안에서 우렁찬 쇳소리를 내던 그네는 없어졌지만.


 나는 가끔 꿈을 꾼다. 다른 반에서 지내더라도 자주 함께 놀러 다녔다면, 너와 함께 같은 반에서 지냈다면. 그날의 사건은 일어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우리는 더욱 많은 추억을 만들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우리는 여전히 최고의 친구로 지내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나는 너의 마지막이 자리한, 옷가게가 되어버린 그곳에서 서성이지 않아도 되었을지도 모른다. 전학을 가고 싶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우리가 함께 중학생, 고등학생이 되었을지도 모른다. 너는 내게 더 많은 것을 가르쳐주었을지도 모른다.


 나는 이 학교가 참 좋았다. 언덕길 위에 서면 우리 동네를 한 번에 바라볼 수 있고, 그 정경을 너와 함께할 수 있음이 좋았다. 내 생에 최초이자 최고의 친구였던, 권수. 나는 네가 참 좋았고, 여전히 그렇다.


 이곳에는 내가 있었고, 네가 있었고, 우리가 있었다. 나는 그 사실을 잊을 수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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