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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소한곽 Sep 23. 2024

네가 달리기(런닝)을 한다고?

암이 생기고, 정말 싫어하던 달리기가 좋아진 까닭

  오 맙소사. 내가 달리기를 할 줄이야. 36년 평생 달리기는 내가 할 운동이 아니라고 생각해 왔다. 능력도 없었고, 취향은 더더욱 아니었다. 조금만 뛰어도 숨이 차고 버거워서 속이 답답해졌었다. 왜 뛰었었는지도 모르지만 조금이라도 뛰어야 할 일이 생기면 금방 지쳐 걸어가기 일쑤였다. 학창 시절 단거리 달리기는 친구들에 비하면 거북이 수준의 기록이었고, 출발선에 설 때부터 두려움이 앞서던 오래 달리기는 겨우 걸어서라도 종점에 들어오면 다행이었다. 그런 내가 달리기라니?

  시작은 남편의 제안이었다. 남편은 평소 건강에 많이 신경 쓰는 사람이기도 하고, 각종 운동도 잘하고 좋아하는 편이다. 내가 수술하고 나서 얼마 뒤부터 서로 건강을 챙기자며 번갈아 산책 시간을 가질 때, 내가 동네를 호젓하게 걷고 오면 남편은 아파트 한 바퀴를 달리고 오기 시작했다. 그렇게 꽤 시간이 지났을까. 어느 날 남편이 자기가 달리기를 시작한 이후로 컨디션이 무척 좋아졌으며, 취미로 하던 축구나 배구 등의 운동에서도 조금 더 두각을 나타낸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나에게도 걷기만 하지 말고 달리기를 해서 땀을 조금 내보는 것이 어떠냐고 말했다. '이게 무슨 소리? 내가 달리기를 얼마나 못하고 싫어하는데. 이런저런 책에서 봤는데 식후 1시간 이내에 10분 정도만 산책해도 좋다고 했어. 그런데 나는 그거보다 더 많이 걷는다고!' 이런 마음으로 남편이 옆에서 그러거나 말거나 꾸준히 산책하는 것만으로도 이전보다 훨씬 노력하는 거라며 나는 계속 걷기만 했다.

  그런데 처음에는 걷기만 열심히 해도 체력이 좋아지고 혈색이 좋아지는 것 같았는데 어느덧 운동 정체기가 왔던 걸까? 다시 예전처럼 조금 피곤하고 속이 더부룩해지는 것 같았다. 그날도 산책하면서 그런 생각을 하는 와 중에 문득 조금 뛰어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혹시 남편의 잔소리가 내 무의식을 장악한 걸까. 무심코 한 발 한 발 뜀박질을 시작했다. 역시나 힘들었다. 숨이 조금 가라앉을 때까지는 다시 걷는다. 그리고 다시 또 뛰어본다. 숨이 차오를 때쯤 달리기를 멈추고 다시 걸어본다. 문득 그런 생각을 한다.
'우리 집 아파트를 달리면서 매일 한 바퀴씩 돌 수 있는 사람의 몸에는 암이 생길 리 없을 것 같아!'
  그날은 그렇게 걷다가 뛰다가 하면서 아파트 한 바퀴를 돌았다. 도착해서 걸음을 멈추니 온몸에 땀이 주르륵 난다. 평소에 매일 걷던 아파트 한 바퀴인데 뛰다가 걷다가 하니 운동량이 다르다. 집에 와서 시원한 물에 샤워를 한다. 상쾌하다. 산책만 했을 때와는 차원이 다른 상쾌함이다.

  그렇게 나의 달리기가 시작됐다. 목표는 '달려서 우리 집 아파트 한 바퀴를 도는 사람이 되는 것!' 현관에서 남편이 화이팅을 외쳐준다. 여전히 걷다가 뛰다가 하는 것만으로도 몹시 숨이 차다. 그렇지만 힘들면 걸으면 된다고 생각하니 꽤 할 만하다. 뛰다가 힘들면 망설임 없이 걷는다. 대신 숨이 가라앉으면 다시 뛴다. 그리고 생각한다. '나 진짜 xx 멋있다!!!' 달리기를 스스로의 의지로 제대로 뛰어보는 것은 처음이라 달리기를 할 때 이런 기분이 드는지 몰랐다. '내가 달리고 있다니. 나 정말 너무 멋있는데?' 생각해 보니 동네를 돌아다닐 때 런닝 하는 사람들을 보며 내가 했던 생각이다. '우와 저렇게 달릴 수 있다니 진짜 멋있다' 그러니까 달리고 있는 나 스스로에게도 그런 말이 떠오른다. '나 너무 멋있어'

  달리기가 건강은 물론 자존감도 키워주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 무렵 갑자기 힘이 빠지기 시작했다. 진짜 힘이 빠진다는 게 아니고 달리던 내 몸에 불필요하게 붙어있는 힘이 빠졌다. 단거리 달리기 선수처럼 전속력으로 달리던 폼에서, 걷는 것보다 약간 빠른 수준의 뜀박질로 바뀐다. 누가 그러라고 시킨 것도 아닌데 어느 날 갑자기 그렇게 됐다. 그렇게 힘이 빠져 일정한 속도로 달릴 수 있게 된 그날 나는 마침내 아파트 한 바퀴를 다 돌게 됐다. 생각보다 빠른 목표 달성이었다. 이렇게 매일 달릴 수 있는 사람의 몸에는 암이 살 수 없을 거야라며 다짐한 목표인데, 이뤄버렸다. '와 나 진짜 이제 건강해지겠는데?'라는 생각과 함께 집에 도착하자마자 남편에게 자랑한다. "여보 나 방금 한 바퀴 뛰었어!"


  그렇게 한 바퀴가 두 바퀴가 되고, 세 바퀴가 되었다. 한 바퀴에 1km 정도니까 약 3km를 달리는 것이다. 3km를 달리는 사람이라니. 정말 멋있어. 한 바퀴를 더 돌 수 있게 될 때마다 남편과 가족들에게 자랑을 잊지 않는다. 모두들 놀라워하며 축하해 준다. 어느 날은 아기를 등원시키고 아파트를 달리는데 경비아저씨께서 말을 거신다 "아니 뺄 살도 없는데, 운동을 그리 열심히 해" 별 말 아니었는데 성취감에 벅찬 나는 '네 맞아요 저 달리기 진짜 잘하고 진짜 멋있죠'라고 속으로 대답한다. 역시 달리기는 자존감을 높여주는 운동이 맞는 것 같다.

  목표는 이제 마라톤이다. 이것도 내가 생각한 것은 아니다. 남편이 친구들과 함께 가을에 우리 지역에서 하는 마라톤에 나가기로 했는데, 이제 나도 좀 뛸 줄 알게 되었으니 나가 보는 게 어떠냐고 권유한 것이다. 찾아보니 대회에 5km 종목도 있다. 5km면 나갈 수 있을 것 같다는 자신감이 든다. 그때쯤 친오빠도 갑자기 달리기의 효능에 대해서 이야기하며 우리 집 달리기 열풍에 동참한다. 오빠가 쉬는 날 같이 한번 달려보기로 한다. 이번에는 언덕 없는 길 2.5km를 함께 달리고 2.5km는 걸어서 돌아온다. 평소에 뛰던 게 있어서 그런지 생각보다 힘들지 않게 완주했다. 그 후로 또 혼자 연습하던 어느 날 2.5km 코스를 달려본다. 다시 돌아오려는데 기운이 남아서 할 수 있는 데까지만 해보자 하고 달려온다. 달리다 보니 집 앞이다. 이런 맙소사 5km를 달렸다! 진짜 마라톤에 나가겠는데?

  비록 현재는 5km가 목표이긴 한 초보 마라토너이지만, 마라톤하면 사람들이 소위 역경과 고난을 극복하는 운동인 것처럼 묘사하지 않나. 그게 혹시 나처럼 아픈 사람들이 운동으로 달리기를 하다가 마라톤을 하기 때문일까? 하는 엉뚱한 생각을 해본다. 엉뚱하긴 하지만 사실 나에게는 정말 나의 역경을 극복하게 해 줄 것 같은 뜨거운 땀방울 같은 운동이다. 인생 첫 마라톤에 나가 작은 메달이라도 건다면 엉엉 눈물이 나올 것만 같다. 건강과 영광과 눈물이 함께하는 나의 달리기. 사람들이 왜 힘들 때 달리기를 시작하는지 조금 깨달아가는 요즘. 이제는 나의 첫 마라톤을 기대해 본다.








*개인의 고집 혹은 주관으로 자연 치유 중입니다. 치료 방법 등의 문의와 치유 방법론에 대한 시시비비는 정중히 사양합니다... 사실 뭐가 맞는지 틀린지 확언할 수 없고, 다른 사람에게 조언할 능력도 깜냥도 안됩니다. 제가 가려고 하는 길이 틀린 길이어도 가고 싶은 길을 가려는 마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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